[Review] 공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공장에서 -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공장이되 공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공간, 대형 병원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9.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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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대형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개인병원보다는 대형 종합 병원이 의료의 질과 서비스 측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다녀보니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앉을 자리도 없이 넘쳐나는 환자들, 질문하면 무뚝뚝하게 반응하는 간호사, 3분은커녕 1분 만에 끝나기도 하는 진료, 불안하고 간절한 마음에 의사의 눈을 이리저리 쫓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의사.


화나고 속상했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마음의 상처까지 받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의사가 환자를 귀찮아하거나 자본을 목적으로 그리 행동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풀고 싶었다. 3분 진료 공장에서 생산하는 진료만 받을 게 아니라 공장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는 반드시 필요한 책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로 있는 김선영 의사가 쓴 이 책은 의사의 입장을 서술해 놓았다. 의사들이 진료 외에도 무슨 일을 하는지, 진료와 치료를 하는 동안 의사들의 감정은 어떤지 등 환자의 입장에서는 알기 어려운 지점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대형 병원에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환자를 위한 팁과 현시대의 의료 제대의 문제점 및 해결 방안을 쉽게 풀어놓아 의료 쪽으로는 문외한인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의료가 당장 바뀔 순 없지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은 함께 공유해야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해요.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중


 

저자의 말처럼 인식은 함께 공유해야 바뀔 수 있다. 내가 쓰는 이 글도 그중 하나이길 바라며 내가 여태 착각했거나 알지 못했던 대형 병원에 대한 사실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의사들은 앉아서 진료만 본다는 착각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거나 진료를 받고 나오면 드는 생각이 있다. 의사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진료만 보는데도 저렇게 무뚝뚝하고 짧게 진료하나? 나를 포함한 일부 환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진료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병원에 없는 동안 의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게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의사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바쁜 직업이라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종양내과 의사들이 ‘예습’ 또는 ‘프리뷰(preview)’라고 부르는 과정은 외래 진료 전 예약된 환자들의 검사 결과를 미리 확인하고 이제까지의 치료 과정을 복기해 이번 진료에서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정해놓는 일이다. 그것이 실제 진료보다 오래 걸리는 경우가 꽤 많다. (……) 백조가 물 위에서는 유유자적해 보여도 물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을 휘적이고 있듯이, 의사들 역시 진료실이라는 무대 뒤에서는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중


 

이 대목을 읽고 조금 놀랐다. 물론 의학 드라마와 대강의 예상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백조에 비유하니 확 와닿았다. 3분 진료라고 할지라도 사실상 그 질은 30분, 1시간이 걸리는 프리뷰를 밑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이 수업 발표 전 자료 조사를 하고 피피티를 만드는 것처럼, 직장인이 프로젝트 시행 전 회의하고 기획하는 것처럼 의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치료 방식은 한정되면서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중에서 환자마다 최적의 치료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일은 의사에게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형 병원을 3분 진료 공장으로 만들고 의사를 무뚝뚝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진료실 과밀화 문제이다. 대한민국은 한 대형 병원 의사당 선진국에 비해 3배 이상의 환자를 받고 있다. 거기에 암 같은 질병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환자들의 뿌리 깊은 인식, 진료실 과밀화 문제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나 몰라라 하는 정부와 병원, 오히려 환자 수를 늘리라는 채찍질이 있다고 한다. 적은 수의 환자를 받는 의사는 질 높은 치료를 했다는 생각 대신 혼자 놀고 있다는 걱정에 빠진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제와 부족한 의료 관련 제도로 대형 병원은 3분 진료 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형 병원이 공장이라는 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굉장한 분업화와 효율성, 정확성은 분야별 진료와 처방을 고도화한다. 이런 지점을 고려했을 때 대형 병원은 여전히 공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도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이 온다. 


 

물론 공장 방식의 철저한 분업화와 관리가 진료의 수준을 올려놓는 데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과연 맞는 방식일까, 하는 의문은 늘 가지고 있어요. (……) 그들이 동시에 개별적인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거죠. 병원은 그 두 가지 소망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공장이되 공장이어서는 안 되는 공간인 겁니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중


 

저자는 병원을 공장이되 공장이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장식 의료는 파괴가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며 “공장이라는 골격은 유지하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소망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자 최선책, 이해와 대화



병원이 공장이되 공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 환자, 병원, 정부 중 누가 변화하고 노력해야 할까? 3분 진료 공장 사태 속 환자는 그저 진료받기만 하면 되는 걸까? 저자의 말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의사는 물론 환자 또한 의료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과잉 진료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이 환자에게 더 유익하고 의학적 근거가 있는 치료인지 환자 자신이 이해해야 의사도 처방을 줄일 수 있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중


 

‘과잉 진료는 왜 일어날까?’ 파트의 일부이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환자인 내가 무슨 노력을 하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잉 진료를 포함한 대형 병원의 여러 문제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고, 병원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함께하는 공간이므로 서로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는 죽도록 애쓰고 누군가는 무신경해서는 안 된다. 의사도 환자도 함께 살자고, 살아보자고 하는 곳이 병원 아닌가.


 

치료의 목표에 대해 의료진과 환자가 일종의 ‘합의’를 이루려면 환자가 궁금한 점에 대해 묻고 답하는 지난한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게 바쁜 진료실에서 이 과정은 생략되고 만다. (……) 아니, 비용보다도, 대화의 부족으로 인해 유발되는 과잉 진료로 인해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위기에 처하고 그의 소망과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료의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그 결과 치료의 한계와 결과에 대해 치료 초기에 환자와 충분히 상의하는 것이 가성비 좋은 의료 기관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 논문에 의하면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소위 과잉 진료, 즉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줄일 수 있어서 전체 치료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중

 


서로에 대한 이해 중에서도 상담, 즉 대화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대화를 통해 환자는 본인의 질병을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불안함을 덜고,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함으로써 진료에 거품이 끼는 일 없이 최선의 치료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상담의 전문적인 부분은 의사가 담당해야겠지만, 함께 의논하고 상의하는 것만으로도 치료와 의료 기관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무슨 일에서든 의사소통이 필수적이고,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말이다. 시대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아무리 좋은 기술이 도입되어도 본질은 여전하다. 새로운 의료 기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늘 그렇듯 사소한 것이 가져오는 효과가 크다.

 

나 역시 대형 병원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사람으로서 이제 의료진들에게 마냥 상처받지는 않을 것 같다. 책 하나를 읽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생긴다. 이 글이 저자의 바람처럼 변화에 도모하는 인식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 

 

 

[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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