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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요즈음 2달은 힘들게 택시를 잡아 달을 보며 퇴근하고 떠지지 않는 눈을 치켜들고 화장할 새도 없이 병든 닭처럼 생활했다.

 

그 와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치지 말자고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실천은 마냥 쉬운 게 아니었다. 나의 시간과 몸도 한계가 있기에 워라밸은 바라지도 않고 라이프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시간은 시간대로 쏟아부어도 유의미하지 않은 업무 결과와 진전없는 상황에 지쳤고, 9월 첫째 주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간 새벽엔 택시도 잡히지 않아 터덜터덜 광화문으로 걸어갔다. 겨우 야간 버스를 타고 내린 광화문에선 슈퍼 블루문인지 달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혼자 저 멀리 달을 흘깃 쳐다보고 걸어가고 있으니 답답한 업무와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아 속상함을 감출 수 없었다.

 

버거웠다. 이 짓을 얼마나 더 하면 끝날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 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는지,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는 것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큰 변화의 결단을 내릴 만큼 용기도 없었다. 더 이런 상황에 왜 놓인 건지 이해하기 힘들고 괜히 남 탓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선택과 마음가짐만 남았다.


주중엔 퇴근이 늦으니 주말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삶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몰아넣었는데, 주말까지 빼앗겨 버리니 더 큰 무력감이 느껴졌지만, 나의 마음가짐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주말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감정을 해소하고 1년 반 만에 내가 가슴 떨려 하던 연극을 마주하니 좀 정리가 되었다.

 

잘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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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가 고비라고 느끼고 나름대로 잘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몸이 아팠다. 근래 주말에도 일정이 꽉 차 살짝 피곤해 몸이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수영 첫 수업을 다녀오고 급격히 몸이 안 좋아졌다.

 

일은 몸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 계속 택시 퇴근을 반복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더 심해졌다. 코로나 걸렸을 때보다 더 아팠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걸릴 수 있는 모든 병에는 다 걸린 것 같다. 회사는 꾸역꾸역 출근하는데 식은땀이 계속 나고 몸과 머리가 모두 쳐졌다. 20만 원짜리 수액을 맞아도 별 효과가 없었다.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으니 낫지 않는다. 여기저기 병원 진료를 돌고 응급실까지 들리면서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부닥쳤는지, 그저 억울하기만 했다. 돈도 깨지고 건강도 사라지고 마음이 다치고, 열정도 사라졌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부담으로만 느껴져 버린 게 너무 속상하다.


지금 아프든 후회하든 간에 어쨌든 본인이 선택한 일이고 직장이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이 너무 쓰라리게 박혔다. 약하거나 힘든 티를 내기 싫어하기에 묵묵히 버티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항상 정답은 아니었다. 이 업이 나에게 맞는지도 모르겠는, 커리어에 대한 확신 없이 지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일의 결과가 뿌듯한 것도 아니고 삽질만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간다. 꾸역꾸역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그다음 과정엔 내가 웃으면서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버거운 상황이 머릿속에 가득 찰 때면, 내가 꼭 일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까짓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데 지금 하는 일이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냅다 해보고 있는 나 자신에 깊은 의구심과 불안함이 동시에 든다.

 

전문성을 쌓으면 해결될 문제인지, 조직의 문제인지 혹은 나의 특징과 맞지 않은 분야로 온 것인지 생각하다 보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불분명해 정확한 진단과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든 게 다 복잡하게 뒤섞여 본질을 못 찾고 있다.


외부의 조건과 상황이 바뀌면 나도 달라질까? 단기적으로 이 업무가 아니라 모든 일에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솔직히 무섭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능성이 너무나 흐려 다른 일을 자꾸만 찾아보게 된다. 주먹구구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일에 접근하고 실천하기 위해선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골똘히 생각해 본다.

 

어떤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지는 않을까. 내가 무작정 커리어를 시작해서 그런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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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고 제한된 카운트 다운에 목숨이 달린 듯 허겁지겁 넘어질 듯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사실은 어영부영 질질 흘리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게 빈 깡통일까 봐, 그 결과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올해 참 어렵다. 해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니, 어른들이 말하는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 것 같다.

 

불행한 날이 기본이고 옵션으로 행복이 껴있다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젠 이해가 간다. 그 짧은 행복을 위해 어렵게 굽이굽이 살아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는 거겠지 지레짐작하며 또 어리석지만, 희망을, 좋은 것들을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남들보다 2배 빨리 가기를 원한다면, 4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지만, 막상 견디려니 점점 나에게는 버겁다는 약한 모습이 늘어간다. 다시 정제하자. 아니다. 나는 나만의 강한 힘을 유연하게 적용해 내기 위한 방법과 태도를 깨우치고자, 내가 바라던 것을 조금 더 명확히 그려내는 중이라는 걸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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