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칼을 겨눈다고?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공연]

글 입력 2023.09.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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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2023]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작품 포스터.jpg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칼을 겨누고 있다? 두 남녀 주인공의 순애를 담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장면이지 않은가. 그러나 창작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에서는 가능하다. 여기서 둘의 사랑은 단순히 작가가 만들어 낸 설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창작한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가 인격을 가진 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어떨까?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작가라면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질문에 대한 답을 ‘셰익스피어 명작 탄생 비화’라는 주제로 코믹하게 풀어놓는다. 여기서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속하는 「햄릿」과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꽉 닫힌 결말은 캐릭터의 정체성 변화로 인해 열린 결말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죽음을 각오하고 원고 밖으로 뛰쳐나온 '햄릿'과 '줄리엣'에 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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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2 8시


 

시작은 평범했다. 셰익스피어는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은 죄다 비슷하다는 혹평이 끊이질 않았고, 고뇌하던 그는 「명작, 이대로만 따라 하면 쓸 수 있다」라는 작법서를 손에 넣는다. 그 후에는 책에 나와 있는 규칙을 따라 원고를 집필한다. 그러던 중 그의 작업실에 거센 돌풍이 불어 사방이 난리가 난다. 결국, 이 때문에 원고 더미가 뒤섞이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난다.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집필하던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고가 합쳐지며 ‘햄릿’과 ‘줄리엣’의 정체성이 뒤바뀐다. 두 주인공은 처음에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반전된 설정을 통해 작가가 아닌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게 된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악공이 되고 싶은 ‘햄릿’과 검을 쓰는 경비대가 되고 싶은 ‘줄리엣’의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이때 원고를 정리하던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쓰지 않은 원고, 즉 ‘햄릿’과 ‘줄리엣’이 쓴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들로 인해 이야기가 꼬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원고 밖의 공간인 파라다이스로 다다른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과 만나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고자 한다. 그러나 ‘햄릿’과 ‘줄리엣’은 이미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었기에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쓴 이야기를 찢지 않으면 잊히게 된다는 말에도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며 끝내 거부한다.

 

그렇게 설정값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햄릿’과 ‘줄리엣’은 파라다이스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한다. 비록 이제는 이름 없는 엑스트라로 존재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두 인물과 달리 주인공으로 남길 희망한 인물도 있다. 바로 시종일관 줄리엣에 대한 사랑의 구애를 보냈던 ‘로미오’다. 그는 자유의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에게 자기를 원톱 주인공으로 써달라고 간청한다. 그에게는 모두가 나를 주목하지만 나만 그걸 모르는 세계에 있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 인물의 능동적인 변화로 재정립된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우선 주인공이 모두 죽는 결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로미오’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곁에 선 엑스트라, 그러니까 원래의 ‘햄릿’과 ‘줄리엣’은 그들만의 열린 결말 속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마주한 인물들이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을 성격임을 알았다. 따라서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의미로 이러한 결말을 설정한 듯 보인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내면 역시 단단해진 덕분에 더 이상 남들의 평가에 겁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인기가 없는 비극에 또다시 도전하며 「멕베스」를 펼쳐내고자 한다.

 

이러한 작가와 인물의 이야기는 세 갈래로 구분된 무대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먼저 좌측은 덴마크 배경의 「햄릿」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으슥한 분위기를 더하는 해골과 왕좌가 있다. 다음으로 우측은 베로나 배경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하는 장미 넝쿨과 발코니가 있다. 

 

이때 좌측의 문과 우측의 구멍을 통로로 사용하며 서로의 원고를 드나들도록 한다. 중앙은 작가의 작업실로, 그의 책상이 앞뒤로 움직이며 원고의 진척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 다양한 조명 효과를 활용함으로써 인물을 구분하고 장면을 전환하며 책이 펼쳐지는 듯한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꾸려진 3인조 라이브 밴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세 악기만 사용하니 오히려 한 음 한 음이 선명하게 울려 퍼짐에 따라 감정선이 세세하게 전달되었다. 중간중간 그들의 연주를 멈추거나 웃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장면 등 배우와의 호흡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서로 간에 주고받는 대사나 넘버가 많기에 배우들의 케미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캐스트를 정하지 않고 관람했기에 살짝 걱정했지만, 처음 합류한 배우들로 구성된 캐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어 만족스러웠다.


전체적인 줄거리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배경으로 하기에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의 활자 속에서 지나치게 진지해 보였던 인물들에 현대의 감성을 입힌 덕분에 거리감 역시 준 듯하다.

 

창작 뮤지컬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맘 놓고 웃었던 건 처음이다. ‘햄릿’이 연기하는 가냘프고 청순한 ‘줄리엣’과 ‘줄리엣’이 연기하는 과격하고 거침없는 ‘햄릿’부터 시작해서 재치 있는 말솜씨로 무대를 장악한 ‘셰익스피어’,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로미오’까지 작정하고 웃기려는 듯한 대사와 몸짓에 웃음이 끊길 새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가볍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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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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