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몇 백 년이 흘러도 사랑받을 수 있는 명작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글 입력 2023.09.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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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쓰기 위한 첫 번째 룰!

...

그리고 마지막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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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쓰기 딱 좋은 날씨네!", "근데 그게 어떤 날씨죠?"


윌리엄 셰익스피어,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바다를 건너 전 세계에 그의 작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유명한 작품들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그는 당연 명작 제조기가 아니었을까?

 

본 공연은 그런 그가 신인이었던 시절의 집필실로 관객을 초대하며 시작한다. 아직 그의 명작인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이 완성되기 이전 신인 작가의 모습이다. 신인이었어도 그의 작품은 유명했었는데, 그런 그에게 평론가들은 평한다. '모든 작품이 비슷한 셰익스피어, 광대 셰익스피어, 깊이가 없는 셰익스피어, 한계가 보이는 셰익스피어!' 그러한 평론가들의 평을 들으며 셰익스피어는 다짐한다! 진짜 몇 백 년이 흘러도 사랑받을 수 있는 명작을 쓰겠다고!

 

 

"어설픈 대본을 쓰던 초짜 작가의 1막은 끝!

진짜 나의 실력을 보여줄 시간!

조명이 꺼져도 계속 살아있을 수 있는 그런 작품, 명작을 남겨야 해!"

 

 

그럼 명작은 어떤 것일까? 이제 신인 작가였던 셰익스피어는 명작을 쓰기 위해 작법서를 꺼내 명작을 만드는 규칙들을 하나하나 지켜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딜레마를 가진 덴마크의 왕자 햄릿을 탄생시키고, 사랑으로 금기를 깨고자 하는 연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하나하나 법칙에 따라 설계해둔 이야기들, 그런데 셰익스피어에게 난관이 들이닥친다.

 

그것은 바로 캐릭터의 자유의지다. 그로 인해 셰익스피어가 이야기가 막혔던 순간, 집필실에 타고 들어온 바람이 그의 모든 원고를 뒤섞어 버린다. 자, 이제부터 진짜 명작의 시작이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던 것과 다른 변화 지점에 도달한 순간, 살아난 캐릭터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살아난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고, 그것은 셰익스피어가 작법서에서 배운 명작을 만드는 규칙과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면, 셰익스피어가 겪게 되는 이 상황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이가 있을까 싶다. 이야기에는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 작법서라는 기본이 있고, 그 기본으로 공부했던 사람에게 작법은 꽤나 중요하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달려갈 지도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가장 보고 싶은 장면, 캐릭터 간의 관계성, 그리고 어쩌면 하나의 문장처럼 아주 작은 단위의 것이 그 이야기의 방향점일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일 잘 표현하기 위해 작법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후가 바뀌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작가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명작이 아닐까 싶은 그런 질문. 명작을 쓰는 작법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작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명작의 작법을 따라 하게 되는 상황에 도달한다.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들의 조건들은 선명하니까. 그것이 먼저가 아닐까.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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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ommilkovic, 출처 Unsplash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동일한 작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대체로 그것은 너무나도 운에 달렸다. 운이 좋지 않아, 대중과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가 다르다면, 작가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내가 사랑하는 것, 대중이 사랑하는 것, 그 가운데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여기서 최종 결정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내가 직접 이야기를 쓰기도, 또 이야기의 창작을 옆에서 함께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느낀 것은, 창작의 기본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에 있고, 그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떠한 작가도 결말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면 자신의 글을 완성하기 쉽지 않다. 마치 최종 종착지가 어딘지 모르고 달리는 것과 같다. 목표 없이 마냥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언제 이 달리기를 멈춰야 할지를, 어디서 쉬어야 종착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음을 모르기에 쉴 수도 없고, 계속 의미 없이 달리기만 해야 하니까.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명작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과, 고뇌하는 모습은,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작가는 그저 하나의 직업적 표상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니까. 그렇게 신인 시절의 셰익스피어가 고민하고 결정을 쉽사리 못 내리는 것은 자연스레 우리의 삶으로 다가와 묻는다.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명작으로 남기기 위해 다른 이가 쓴 명작 작법서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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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데이라 배우분들의 커튼콜 인사를 담을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극과 관련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가!


본 공연에서 셰익스피어의 명작 속 인물들은 자유의지를 갖게 되고,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칼이 보석보다 반짝거린다는 것을 깨닫는 줄리엣, 자신이 복수보다는 용서를 하고 싶고 시를 쓰고 싶어 함을 깨닫는 햄릿, 그리고 여전히 주인공이 되고 싶은 로미오까지. 더불어 그 인물들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 셰익스피어, '나는 진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지?'라고 물으며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찾아간다. 굉장히 따뜻하고 교훈이 가득한 본 공연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부분은 바로 로미오다. 어쩌면 가장 변화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본 공연의 미덕은 로미오의 존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명작의 법칙이란 인생의 굴곡을 그리기 위해, 위협과 크나큰 결핍으로 시작하여 그것을 채우거나, 채우지 못하는 선택을 하면서 명작으로서의 재미를 만든다. 그리고 그 법칙에서 벗어난 줄리엣과 햄릿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파트를 읽으며 이야기한다. 재미가 없다고. 늘 그렇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의 순간, 작은 조각들이니까.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찾기 위해 평범한 엑스트라를 자처하게 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각자 조연이든, 어쩌면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순간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에서 가져가는 큰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명작의 법칙에 따라가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 대체로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져가는 작품 중에서 집중 받지 못하는 역할이, 계속 명작의 법칙을 따라 주인공이 되겠다고 선택한 로미오일 것이다. 그렇지만, 본 공연에서는 그렇지 않다. 로미오의 선택도 선택. 그것 역시 틀린 선택이 아니라 다른 선택임을 보여주는 것이 본 공연의 미덕이다. 삶 속에서 다가올 여러 선택지 중에 옳고 그름이 딱 정해진 선택지만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그저 다른 선택지가 있고, 그 선택지를 택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는 것일 뿐이니까.

 

 

"조명이 꺼져도 계속 살아있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냐

몇 백 년이 흘러도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냐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될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닌

세상 모두가 아는 독백이 있는 언젠가 음악극으로 태어날 그런 작품이 아니야

그런 작품, 명작이 아니야!"

 

 

본 공연의 오프닝을 열었던 <그런 작품, 명작>의 리프라이즈 넘버가 후반부에 등장한다. 이전과 달라진 셰익스피어를 볼 수 있는데, 그의 넘버를 들으며 생각해 본다. 그는 그렇게 명작이 되지 못할 작품을 썼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명작으로 남았다. 그렇다. 명작이 되는 최우선의 조건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였는가'일 것이다. 명작이 되지 못하더라도 전달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았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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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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