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도서/문학]

[소설] 편혜영, 『저녁의 구애』
글 입력 2023.09.30 07: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편혜영의 단편 소설 저녁의 구애. 이 소설을 읽을 때면 어딘가로 가라 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글을 읽을 수록 침착해지고 집중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담담하게 일상을 담아내면서도 건조하고 버석한 묘사와 현장감이 느껴지는 소설 '저녁의 구애'는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은 누구나 이기적이므로 누구에게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40쪽)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순간들이 차고 넘친다. 화환을 부탁하는 김의 친구도, 김에게 구애를 열열하게 펼치는 여자도, 무관심함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순간 다가와서야 여자에게 구애를 시작한 김도. 소설 속 모두가 이기적이다. 그리고 타인을 향한 구애라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은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안 본 지 10년도 더 된 김의 친구는 전화를 걸어 병상에 누운 사람의 용태를 설명했고 김은 그 전화를 꽤 듣고 나서야 그가 자신의 오래된 친구라는 것을,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 오래전에 자주 찾아뵙던 어르신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소설의 중심 사건은 어르신의 죽음은 아니다. 그저 이야기의 시작일 뿐. 그 죽음으로 인해 먼 장례식장을 차로 가며 김은 여자와의 전화를 하고, 도착한 후에도 어르신의 죽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는 또 어르신의 죽음이 아닌, 다른 죽음을 마주한다. 평화롭게 보이는 그 찰나의, 차가 사고 나는 찰나를 목격한 그는 급하게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구애한다.

 

무심하고 지루하게 살아가던 김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였다. 구애는 김이 아닌 여자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그가 트럭이 불타오르는 것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여자만이 김에게 구애를 했다. 무미건조하게 그녀를 받아들이던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고,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것일까?

 

[모두 무사한데 자신에게만 불운이 닥치는 것. 김이 생각하는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 (50쪽)


우리는 모두 안전한 사회에 속하기를 바란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면서 모두 평범하기를 추구한다. 크게 문제없이, 고난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의지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힘든 순간에 함께해줄 사람을 늘 찾는다.

 

김은 죽음을 기다린다. 장례식장에 화환을 전달하기 위해, 죽음을 기다리던 김은 여자에게 전화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기다리던 그에게 갑작스러운 또 다른 죽음으로 김은 여자에게 기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구애한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은 커다랗게 보이고, 타인에게 다친 불행 역시 자신에게 대입해서 보게 된다. 그의 이기적임이 이상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누구나 이기적이며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작가는 담백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김지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