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어둠을 뒤로하고 빛 속에 서다 - 서울세계무용축제, 홍신자의 '이불 위에서'

글 입력 2023.09.1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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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으로 고찰하는 삶과 죽음


 

지금껏 예술 분야에 대해 스스로는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트인사이트 덕분에 연극이나 콘서트 같은 무대예술은 거의 일상처럼 접하고 있고, 시각예술도 내가 이미 몸담고 있던 분야다. 미술 전시는 미술 이론을 전공했던 학생 시절에는 과제와도, 지금 현재는 취미와도 같은 존재다. 비록 전문가들이나 수준 높은 애호가들에겐 견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공연이나 미술 분야의 ‘언어’에는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다고 자신한다. 감정을 대사로 표현하는 무대예술, 맥락을 설명하는 텍스트와 늘 함께하는 시각예술을 감상할 때 언어란 거의 필수적인 요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언어적인 기반보다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순간의 호흡이 중요해 보였던 무용 장르라 하면 어딘지 모르게 벽이 느껴졌다. 언어보다 직관에 의존해야 할 무대를 다시금 언어의 형식으로 지면 위에 옮기는 과정이 결코 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SIDance·시댄스) 역시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축제를 택한 이유는 올해의 주제 덕분이었다. 


올해부터 시댄스에서는 2년 동안 ‘죽음과 노화’ 특집이 준비된다. 주최측에 따르면 ‘인간 생애주기에 대한 깊은 고찰을 무용으로 해석’하기 위한 기획이다.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심오한 주제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흥미가 생겼다. 아직은 깊게 고민해본 적 없는 죽음과 나이듦을 논하는 무대라면 기존에 내가 예술을 바라봤던 방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새로운 시각을 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당 주제로 총 5팀이 해당 주제로 축제에 참가하는 가운데, 나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단연 홍신자(1940~)의 무대였다. 그는 세계적인 현대무용가이자 국내 최초의 아방가르드 무용가로, 명상가나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축제에서 무대에 오르는 ‘이불 위에서’는 홍신자와 연출 민경언, 설치미술가 신소연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홍신자의 '이불 위에서'



 

“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이불이라는 상징적 오브제의 시공간 위에서 펼쳐낸다. 1막 이불 위의 죽음, 2막 이불 위의 탄생으로 직조된 공연은 삶의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의 욕망과 집착이 없는 숭고한 자연상태의 인간을 직면하게 한다. 차원과 차원이 만나는 경계에서,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 눈물의 고향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 삶은 자유를 꿈꾸는 이불 위에서 깨어난다.”

 

(출처-서울세계무용축제)

 

 

9월 6일 수요일, 대학로극장 쿼드로 향했다. 로비에서도 일반적인 공연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이불 위에서’가 발표된 2021년 이후로 처음 공개되는, 그것도 단 하루로 끝나버리는 공연이기 때문였을까. 팔순을 훌쩍 넘은 원로 무용가가 펼쳐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앞에서 나 또한 평소와는 다른 자세로 관람을 준비하게 됐다.


객석에 앉아 무대의 전경을 바라보자 높은 층고에 매달린 흰 천자락들이 먼저 눈길을 빼앗았다. 바닥에는 마찬가지로 새하얀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천자락과 이불의 백색은 한국적이고 고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연은 1막과 2막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이불 위의 죽음’과 ‘이불 위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각각의 소제목이 이부자리라는 오브제가 상징하는 바를 모든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거두는 장소로 짐작케 했다.

 

 

[홍신자-이불 위에서]@더 휴리 @스튜디오 나(8).jpg


 

막이 오르자 무용가는 이부자리 위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느리고 절제된 동작으로 발을 딛고 일어서 상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위로 늘어뜨려진 천조각들은 조명빛을 반사하며 일렁였다. 그는 그 자락들을 그러쥐어 당기고, 몸에 감고 싸안는 행위를 거듭했다. 느슨히 걸린 천자락은 그가 손으로 쥐고 당기면 매끄럽게 끌려오다가도 한순간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이불 위의 죽음’, 생명의 마지막 불씨가 꺼트려지기 직전의 순간에서 애달프게 움켜쥐는 천자락은 마치 삶의 미련과도 같았다. 때로는 시대의 암흑기를 이겨내고 일어선 한국 여성의 옷고름이, 쏴 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곤두박질치는 빗줄기가, 통곡 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에는 애환이 가득한 농도 짙은 눈물방울이 떠올랐다.


배경음악에서는 흐느끼는 신음소리나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가 귀를 찌르다가도 어느 순간 비웃는 듯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돌연 환호성 소리가 쏟아지기도, 툭툭 끊어지는 숨소리와 빗소리가 이어지기도 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소리들의 연속은 자유와는 상반된 속박의 상태를 연상시켰다. 아무리 기쁨보다야 혼란이 가득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강렬해지는 삶을 향한 집착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검은 복장을 하고 얼굴을 가린 미지의 존재가 흰색의 가면을 든 채 그를 향해 다가왔고, 1막은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로 막을 내렸다. 

 

 

[홍신자-이불 위에서]@더 휴리 @스튜디오 나(10).jpg

 

 

2막이 공연되기 전, 관객 앞에 바다로 수장되는 꽃상여에 몸을 실은 무용가의 퍼포먼스 장면이 상영됐다. 그가 팔순을 맞은 해에 스스로 치른 장례식으로, 장례 행렬 끝에 그가 몸을 실은 배가 파도에 휩싸이는 장면을 담았다. 관에 누워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그의 모습은 직전의 무대에 감돌았던 정서와는 사뭇 달랐다. 바로 죽음의 발자취를 앞질러 주체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자유의 형상이었다.


2막 ‘이불 위의 탄생’의 무대에는 천장의 천자락 없이, 1막에 비해 더 넓은 이부자리 하나만 깔려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웅크려 누운 채 갓난아기를 닮은 태고의 움직임을 시작했다. 아주 느리고 긴 호흡으로, 얇은 천으로 감싸인 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신체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배경음악 또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듯 호기심 어린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꼭 갓난아기가 어린아이로 성장하듯 그는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던 상태에서 엎드렸다가 마침내 두 발로 일어섰다. 그리고는 두 다리로 바닥을 굳게 지탱한 채로 팔을 움직이며 확신에 찬 동작들을 이어갔다. 음악 역시도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극적으로 치솟아 갔다. 몇 차례 눈부시고 새하얀 섬광이 벼락 치듯 무대를 덮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고요하고 정적인 호흡으로 되돌아왔는데, 이 격동하는 흐름만으로도 삶의 무한한 생동을 찬미하는 듯했다.

 

 

[홍신자-이불 위에서]@더 휴리 @스튜디오 나(3).jpg

 

 

1막과 2막은 죽음과 탄생을 대변했지만, 내 눈에는 그보다도 삶의 어둠과 빛처럼 다가왔다. 1막에서 고통에 몸부림친 것은 삶이 평생 혼돈에 흔들렸던 탓에 임박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이다. 그저 죽음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던 삶의 태도를 논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2막에서 느껴지는 희망의 에너지 역시도 그저 생명의 잉태와 출발 그 이상의 의미로 느껴졌다. 

 

일평생 예술혼에 몸을 내던진 그는, 1973년 뉴욕에서 발표한 '제례'로 세계적인 무용가의 반열에 오른르자마자 1976년 돌연 돌연 인도로 떠나 명상의 길을 걸었다. 사회적인 인정이 외려 춤을 향한 순수한 열망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해방을 이루기까지, 그리고 그 자유의 상태를 얻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했을까. 물론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향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자 몸부림친 흔적은 고스란히 쌓여 그의 몸동작에서, 또 우리가 지켜본 무대 위에서 빛을 발했다. 

 

예술에는 어떤 정답도 길도 없다. 방법이나 결과가 어떻든 모든 결정은 예술가에게 속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용이라면 결코 그의 몸과 분리될 수 없다. 홍신자의 무대 또한 삶을 향한 신중한 사색으로 탄생한 영감이 체화되고 다시금 터져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날의 공연을 두고 주제와 형식이 맞물린 무대였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든 죽음이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순간이다. 그 가운데 삶을 빛으로 누릴 것인가, 스스로 어둠으로 내몰 것인가를 가르는 것은 마음가짐의 방법에 달렸다. 나의 몸이 진정 원하는 곳으로 가닿았는지를 끝없이 질문한 끝에 터득한 자유가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출된 무대였기에, 그의 모든 동작과 호흡은 관객석에 앉아있었던 나의 뇌리에도 깊숙히 새겨졌다.

 

**

 

일상의 순간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새로운 기류를 체험하고 싶다면, 그중에서도 무용이 아직 낯선 나와 같은 이들이라면 서울세계무용축제로 향해보길 권한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오는 9월 17일(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대학로극장 쿼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울남산국악당 등 서울시내 주요 공연장에서 개최된다. 한국 포함 9개국(무용단 23개, 무용가 196명)이 참가해 26편의 작품을 공연한다. 죽음과 노화 특집 외에도 국제합작, 호주 포커스, 해외초청, 국내초청, 기획제작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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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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