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한 편지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9.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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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란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마음을 쓰는 일이겠지요.

 

혼비씨가 치하철 앞에 선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그분이 소리쳐 혼비씨를 깨워주는 풍겨처럼 말이죠. 우리가 서로 편지를 보내지 않는 기간에도 분명 혼비씨는 그런 장소에서 지내고 있을 거란 믿음이 들어요.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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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나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보내는 글. 편지의 사전적인 의미다.

 

최근 보낸 편지를 떠올린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한 자씩 꾹꾹 눌러 담았던, 귤색 편지지가 선명하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그에게 안부 인사와 함께 추억을 공유한다. 마지막에는 늘 평생 보자는 귀여운 다짐으로 마무리 인사를 보낸다. 상대방을 향한 글을 쓰기 위해 과거 회상을 거쳐야 한다.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하나씩 나열하며 지난 계절에 잊지 못할 짜릿한 일화까지 꺼내온다.

 

편지를 작성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작년 가을에 한 없이 바라본 주황빛 노을, 풀 냄새가 오감을 자극했기에. 생생한 기억을 찾기 위해 핸드폰 갤러리를 뒤척인다. 작년 날짜까지 스크롤을 쭉 내려야 하는 고생이 있지만 그것마저 즐겁다. 편지를 쓰기 위한 추억 여행이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의 만남. 황선우 작가님과 김혼비 작가님이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을 담은 책이다.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 제목을 보자마자, 현재 고민에 애쓸 필요는 없겠다며 한시름을 놓았다. 현대인을 위한 위로라고 할까.

 

꼿꼿하게 선 허리를 잠시 느슨하게 한 뒤, 책 읽기에 몰입했다. 두 작가님이 주고받았던 편지는 특별한 만남이었다. 비록 얼굴을 맞대며 대화를 나누지 못하지만,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를 꺼내 친밀감을 쌓아간다. 황선우 작가님의 첫 편지는 다정한 인사였다. 김혼비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고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으며, 단단하고 때려주는듯한 문체에 매료됐다는 칭찬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아직은 낯선 첫 만남이지만 상대에게 세심한 관심을 표현한다.

 

 
“글을 통해 만나는 우리는 서로가 보여주는 서로에 대해서만 알 수 있고, 상대가 허락하는 각별함만큼만 쌓아나갈 수 있겠죠. 그건 꽤나 거리를 둔 소통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더 안전에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p.13
 
 
“왜 이렇게 오래 집중을 못하지? 왜 이렇게 일의 효율이 확 떨어졌지? 여러 의문이 가득했지만 이러다 말 줄 알고 그냥 버텼는데요. ··· 번아웃이 맞구나. 사흘이면 끝낼 일을 열흘 걸릴 때부터 이미 그랬구나.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번아웃이 안 된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는 생각에 그건 커다란 말을 저에게 갖다 붙이는 게 지나치게 비장하고 조금 유난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p.61
 


번아웃을 인지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거운 단어가 아닐까. 모두가 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어, 나 또한 그렇게 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아웃을 가벼운 것처럼 치부하기도 한다. 김혼비 작가님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는 위로가 되었다. 잦은 실수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은, 누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상기시켜줬기에.


황선우 작가님의 답장은 치유와도 같았다. 물미역처럼 한 없이 늘어질 때도 있었지만 수영하며 활력을 되찾은 이야기. 그리고 번아웃이 온 상대에게 세심한 위로를 건넨다.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길. 더 많은 오타가 나도 괜찮고, 웃어넘길 수 있기를. 이런 일들을 편지에 적어 보내주길 바라며 인사를 보낸다. 독자들에게도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누구나 번아웃을 겪을 수 있으며, 큰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완독을 한 후, 팟캐스트 <여둘톡> 듣는 걸 추천한다. 황선우 작가님의 리코더와 김하나 작가님의 우쿨렐레 그리고 김혼비 작가님의 목탁까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이색적인 합주가 펼쳐졌다. 감미로운 리코더와 우쿨렐레 속에서 통통 튀는 목탁의 리듬이 귀를 간지럽힐 것이다.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만약 당신이 공공장소에서 듣게 된다면 먼저 심호흡을 하길. 당시 만원 버스에서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을 들지 못한 채, 꺽꺽 웃느라 힘들었다. 김혼비 작가님의 목탁 분실 일화까지 들으면 하루 웃은 양을 넘길 게 분명하다. 당시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매가 코까지 올라갔을 정도였다. 눈으로만 보았던 두 작가님의 만남을 귀로 생생하게 들으면 새롭게 와닿을 것이다.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지를 않길, 함께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즐거웠던 일 또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까지. 마음속에 품어두었다가 편지로 풀어내는 건 어떨까. 나와 긴밀한 관계인 그들에게 그리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에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색한 인사로 시작해 일상 조각을 하나씩 꺼낸다. 소셜 네트워크에 게시한 사진이 마음에 든다는 시시콜콜한 농담을 건넨다. 상대가 지닌 모든 면을 다 둘러본 후, 관심을 표현한다.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사이를 가깝게 해줄지도. 나의 번아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에 애쓰지 말길. 많은 이들이 실수를 웃음으로 넘기는 여유를 갖길 바라며.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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