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저, 사람 - 영화 '어느 멋진 아침'

사람이라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
글 입력 2023.09.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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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드라의 하루하루는 평범하다기에는 다소 힘들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겨야 할 사람이 많다. 희소병을 앓는 아버지, 아직 어린 딸, 산적한 일들. 영화는 그런 그를 안쓰럽게 보지 않는데도, 오히려 보는 나만 그의 '노동'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아침은, 전혀 멋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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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혼자서 삶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가 된 아버지는 집을 떠나 병원을 거쳐 요양원에 머무른다.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으며 한평생을 함께해 온 책, 그리고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잃게 된 아버지의 모습이 산드라를 힘들게 한다.

 

교수였던 아버지의 책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다가도, 몇 박스나 되는 책을 먼저 챙기는 산드라를 보며 느낀다. 파괴되고 또 계속 파괴되고 있는 아버지보다, 그와 함께했던 책들이 더 '아버지에 가깝다'. 산드라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위태롭게 느껴지던 산드라는 때마침 찾아온 클레망과의 사랑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클레망은 산드라가 그들의 관계에서 일정 정도 이상을 요구할 때 계속해서 물러난다. 산드라에게 속할 수 없지만, 산드라를 놓지도 못하는 클레망의 미적지근한 모습이 산드라를 또다시 힘들게 한다.


이들의 사랑이 내게 로맨스보다 자기 파괴적인 행위로 느껴지는 까닭은, 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또 나누는 곳이 대부분 '산드라의 집'에 한정되어 있어서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만, 이것이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 공허하게 만든다.

 

기껏 딸과 함께 셋이 나선 나들이에서, 클레망은 아내의 지인들을 발견하고 돌아선다. 그들의 사랑은 집 안에서는 안전하지만, 집 밖에서는 위험하다. 그리고 이것이 산드라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런데도 산드라는 사랑을 갈구한다. 정부 노릇 못 하겠다고 클레망을 내몰았으면서도, 클레망의 애정 어린 문자에 다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산드라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관계에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가? 의미 없는 것에 목을 매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나뿐인가? 답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지나치게 입체적이어서,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서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족, 연인, 일, 친구, 모든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라는 큰 축이 무너져 가는 산드라에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또 다른 축이 연인이었다면 어쩔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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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레망은 결국 산드라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이제 '산드라의 집' 밖으로, 햇빛 아래로 드러난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클레망과 산드라, 그리고 산드라의 딸은 파리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선다. 저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그들을 보며, 이제 점차 '볼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산드라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은 꺼져 가고, 누군가의 삶은 계속되겠지.


이 영화는, 영화 같지 않다. 내가 '산드라'라는 인간의 삶을 그저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레아 세이두의 출중한 연기력은 둘째치고서라도, 영화 자체가 이것을 의도하지 않았나 싶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인간을, 그리고 그 삶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상황을 그저 보여주는 것. 보는 자의 이해를 바라지도, 공감을 요구하지도 않는.


그래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특별한 카타르시스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마음속에 '사람'을 남긴다. 앞으로도 산드라는, 그리고 나는 그저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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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멋진 아침'이라는 제목은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의 영제인 'One Fine Morning'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고도 싶다. 멋지고 말고를 떠나 그냥 찾아온, 그렇지만 썩 나쁘지는 않은 아침.

 

그런 아침을 보고 싶다면 영화관을 찾아가 산드라를 만나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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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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