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 어느 멋진 아침 [영화]

삶을 붙잡는 사랑의 힘을 그리다
글 입력 2023.09.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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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생에 대한 어떠한 답도 내리지 않은 채 담백한 시선으로 주인공의 일상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끝이 나고 마는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

 

2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 프리미어 상영작으로 전석 매진의 기록을 쓰며 9월 6일 국내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영화 <어느 멋진 아침>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소멸의 시간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으로 사랑을 읊는 미아 한센-로브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레아 세이두와 파스칼 그레고리, 멜빌 푸포를 비롯한 출연진의 섬세한 연기로 한층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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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남편과 사별한 산드라의 하루는 일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통역가이기도 하지만 엄마와 딸이기도 한 그는 갖은 행사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시간이 되면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데리러 달려가고, 그 와중에 병으로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까지 돌보아야 한다.

 

이렇게 바삐 흘러가는 삶 앞에서 산드라는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며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오랜 친구인 클레망과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동안 환풍구가 없었던 산드라의 일상에는 숨 쉴 틈이 생긴다.

 

사랑은 산드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는 존경받는 철학 교수였지만 지금은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잘 걷지도, 보지도, 쓰지도 못하는 그의 아버지 게오르그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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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겪고 있는 병세에 대하여 ‘뜻밖의 신체 상태에 갇힌 죄수’, ‘카프카의 변신’ 등의 메모를 남겼던 게오르그는 요양원에 입원하고 나서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한다. 정착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서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질병과 노화, 죽음에 대한 사유와 두려움이 엿보인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 불안이 사라지는 순간, 그가 잠시나마 미소를 띠는 순간은 그의 애인 레일라가 옆에 있을 때다. 그는 언제나 레일라를 기다린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마저도 레일라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애타게 찾는 아버지의 모습은 딸 산드라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매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는 이 모든 인생의 소용돌이를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철학 교수의 능력을 상실하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누렸던 것마저 당연하지 않게 된 지금, 머리로 생각할 필요도,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감정인 사랑은 그가 삶의 끝자락에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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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랑에 기대어 다가오는 죽음을 버티고 있듯이, 산드라도 사랑에 기대어 고단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낸다.

 

요양원에서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빨리 이곳을 떠나자 했던 산드라는 그 길로 클레망, 린과 함께 높은 광장에 올라가 탁 트인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웃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눈물과 웃음은 서로 잘 조응하지 않는다. 방금까지 아버지를 바라보며 서럽게 울던 산드라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상반된 것들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한다.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장례식장에서도 사람들은 자기 삶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것처럼, 슬픔과 기쁨은 동시에 일어나고 삶과 죽음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공존한다. 비록 사랑하는 아버지가 점차 늙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가슴 아프더라도, 아버지의 투병과는 별개로 산드라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찾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의 아이러니와 그것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담아낸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은 9월 6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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