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영화가 데려다 준 북부 레바논의 풍경 [영화]

영화 <모든 길은 로마로> 후기
글 입력 2023.09.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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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영화제.jpg

   

7월 27일 목요일부터 8월 13일 일요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아우르는 제 12회 아랍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나는 그중 8월 3일부터 8월 6일까지의 일정을 담당하는 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 1관에서 레바논 영화 <모든 길은 로마로 (All Roads Lead to Rome, 라라 사바 감독)>를 보았다. 영화제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탓에 급하게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예매했는데, 운 좋게 GV가 이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영화의 감상과 GV에서 들었던 내용을 함께 서술할 것이나, 아쉽게도 통역이 원활하지 않아 통역가의 말을 본인이 재차 의역한 부분이 있음을 알린다.

 

본 글에는 영화 <모든 길은 로마로(202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재기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은 레바논의 떠오르는 배우인 하디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직업에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다. 일이 곧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하디지만, 처음으로 해외영화의 주연을 맡을 기회인 면접을 앞두고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지고 만다. 결국 하디는 자기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듯한 어머니와 말다툼하고선 ‘북부에서 며칠 쉬다 오겠다’라는 말과 함께 훌쩍 떠난다. 영화의 시작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하디가 수녀원에서 만나는 여성, 셀린이다. 셀린은 요직에 있던 회사원이지만 자신의 직업에 큰 회의를 느껴 일을 그만두고 한적인 북부의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일은 세상을 파괴하고 기업의 배를 불릴 뿐,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셀린에게 직업을 자랑스레 여기는 ‘유명인’ 하디는 상극의 인간이다.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를 암시하듯, 그들의 첫 만남은 북부 산길에서의 교통사고이다. 하디의 자동차와 셀린의 자전거가 부딪쳐 자동차의 타이어가 망가진 것을 계기로 그들이 짧은 수녀원 한집살이가 시작된다. 두 인물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수녀원이라는 엄숙한 배경 속에서도 유쾌하고 생기 있는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재치 있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셀린과 하디 간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든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따스하고 안락한 주변인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아름다운 레바논의 자연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배경엔 로맨틱 코미디의 특성도, 발랄한 인물들도 있지만 상영시간 내내 등장하는 레바논 북부의 아름다운 자연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어지럽게 돌아가던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의 도시 광경이 레바논 북부의 아름다운 자연으로 바뀌는 연출이 정말 아름다웠다. 감독은 수녀원을 비롯한 북부 지역이 ‘예산 문제로 불발될 뻔했으나 강행한’ 장소 선정이라고 언급했는데, 찍고 나서도 분명 보람찼을 법한 화면이었다. 굳이 우리나라 풍경과 비교하자면 우거진 산속 절벽이 가장 비슷한 것 같다. 그보다는 해발고도가 조금 더 높겠지만! 가파른 산지에 그림같이 어우러진 수녀원의 모습과 이질적이지 않게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의 풍경을 보고 속으로 정말 많이 감탄했다. 언젠가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광경이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관객 중 한 명이 ‘하디의 태도 변화는 사랑과 자연 둘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질문했다.

 

처음엔 전형적인 연예인처럼 굴었던 하디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녀원 사람들과 융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표정 관리조차 하지 못하고 거부감을 표했던 손으로 음식 먹기도 곧잘 하게 되었고, 수녀들이 짐을 들어주는 것을 당연히 받았던 처음관 달리 적극적으로 과수원 일을 돕는 모습에서 그의 긴장된 마음과 뻣뻣한 태도가 많이 바뀐 것이 선명히 보였다.

 

영화를 감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충북 단양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 푸르른 자연 속의 절벽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끝없는 녹색 풍경을 바라보며 <모든 길은 로마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해외영화 속 풍경을, 그것도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레바논의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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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만의 마법 양탄자


 

난 그래서 영화가 좋은 것 같다. 내가 평생 모를 일들을 눈과 귀로 경험하게 해주고, 내가 평생 생각도 못 해보았을 곳들을 보여주는 이 매체가 좋다. 나를 순식간에 새로운 지평으로 데려다주는 마법 양탄자 같다. 국제영화제에서 만나는 영화들은 특히 더 그렇다. 나를 이렇게 멀리 구경시켜주는 영화들을 보고 나올 때면, 영화 <알라딘>의 OST “A Whole New World”를 다섯 번쯤 연달아 들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감독 라라 사바는 GV 내내 ‘사람들이 레바논을 생각했을 때 테러가 아닌 다른 것들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적어도 영화를 본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그가 백 퍼센트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으로 나는 ‘레바논’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들었을 때, 레바논 사람들의 희망찬 모습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두 사람의 경쾌한 사랑 이야기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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