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1세기에 다시 읽는 '논어' [도서/문학]

고전의 현대적 이해와 가치
글 입력 2023.09.0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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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자기 PR의 시대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사회는 다재다능하고 유능한 인재를 뽑고자 하고,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통해 개인의 능력과 스펙을 보여주기를 요구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걸 드러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논어 학이편의 ‘子曰,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자왈 불안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라는 구절은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좀 생소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이 날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라니. 남이 날 알아주지 못하면 근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자신의 능력이나 장점을 잘 드러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안타깝게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드는 솔직한 생각이다.

 

 

 

공자의 '논어'란?


 

논어는 도에 관해 공자의 언행과 문답을 공자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엮은 책이다. 삶의 참된 도리를 터득하여 자신의 심성을 수양하고 더 나아가 나라와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교의 뿌리이자 동서양 통틀어 가장 많이 읽힌 고전 중 하나이다. 

 

생각해보면 몇 천년 전에 쓰여진 정말 그야말로 오래된 고전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과 사는 방식도 생각하는 방식도 참 많이 달랐을 텐데, 오늘날까지 관통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운 것 같다. 어느 시대에도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논어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무엇보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자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가 원래 ‘평소 학문을 꾸준히 갈고닦아야 함의 중요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나에게 연속적인 하루하루의 중요성으로 느껴지는 것 같이 말이다. 

 

사실 논어나 도덕경 같이 옛 고전들을 처음 접했을 때 선비들이 내용을 줄줄 읊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이미지화 되어 있어서 편협하고 고리타분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논어를 읽다 보니 오히려 방향성만 정해진 채로 해석과 적용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신기함을 느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겁지 아니한가?


 

초등학교 때부터 12년의 의무교육 기간동안 나는 여느 학생들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 왔고 대학생이 되었다.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지난 12년의 기간을 돌아보면, 즐겁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힘들고 하기 싫었던 적이 많았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수험기간을 거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쳤던 날도 많았음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내가 한 공부는 배움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의 폐해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육 방침을 개혁하고자 한다. 나도 이를 찬성한다. 어려서부터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만의 깊이 있는 생각이나 사유를 하기 힘들어진다. 애초에 배움은 지식의 획득 뿐 아니라 개인의 인격적인 성장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오히려 획일적인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본 목적을 상실할 위험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이나 자발적인 수업이 강의식 수업과 더불어서 적절히 도입되어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고 이쪽이 편하다. 정답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대답이 꺼려지고 불안해진다. 정답이 없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직 낯설다. 하지만 이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12년 동안 익숙했던 학교나 학원의 공부도 물론 배움의 일종이다. 하지만 공자가 말한 배움의 범위는 좀 더 넓은 것 같다. 그동안 한 가지 방법으로 폐쇄적인 공부만을 하다 보니 지루하고 지겨움을 느꼈던 것 같다. 처음 대학생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 보았다. 학교 동아리에 가입해 평소 관심 있었던 기타를 처음 배워보았다. 이 뿐만 아니라 매 순간 만나는 사람들, 통학하는 순간들, 경험하는 모든 것에도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배움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할 것이다.

 

 

 

군자와 소인


 

논어에는 군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나 생활의 지혜를 언급한 구절들도 많이 있지만 의외로 소소해 보이는 구절들도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공자가 유에게 앎에 대해 가르친 구절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게 아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너 자신을 알라’와 통하는 구절인 것 같다.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맥락과 통한다. 참 단순한 구절 같은데 그게 어렵다. 언제나 떠들썩한 비리나 부정 문제들도 아는 것을 모르는 척 해서 생기는 일들이라는게 새삼 생각난다. 나는 나에게 솔직하게 살고 있나 자문하게 되었다.


논어 속에서 군자와 소인은 자주 대비되곤 한다. 군자는 공자가 제시한 인격적 선의 기준에 부합하고 너그러우며 온화하다. 반면 소인은 생각이 좁고 편협하고 성질이 급하다. 수적으로 봐도 공자가 생각한 ‘군자’감은 매우 소수였을 것이다. 인격적으로 자격이 있는 지도자.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와 다르게 민주주의 시대인 지금은 왕이나 제후의 존재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군자라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군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몇 천년 전보다 전반적인 지식 수준과 문화 수준이 상당히 성장했고 상하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


이런저런 진로 고민을 가진 채로 읽었던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자왈 비여위산 미성일궤 지 오상야 비여평지 수복일궤 진오왕야)’라는 구절은 사실 많은 위안이 되었다. 산이라는 너무 큰 목표에 조바심을 내지 말고 하루하루 덤덤하고 꾸준하게 내가 갈 길을 나아가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나는 매주 한 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으며 매일 짧게나마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나름 무언가를 도전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차근차근 노력하다보면 앞길이 차례로 보일 것이라 믿게 되었다.

 

 

 

21세기에 다시 읽는 고전, 논어


 

논어에서 공자가 말하는 도와 예는 어찌 보면 참 뚜렷하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밀히 동양 그리고 한국 전통의 근간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웃어른간 예의를 지키고 친구간에 신의를 지키고 부모자식간에 효를 다하는 등의 예를 지키면서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논어의 유교적 내용을 그대로 적용시키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현재 한계가 있다. 필요한 것은 주체적인 태도이다. 논어 속 삶의 지혜를 자신의 삶 속에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해 나간다면 궁극적으로 더 행복한 삶이 가능할 것이라고, 현재 2023년을 살고 있는 나는 생각한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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