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의 전통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음악]

힙합이 확산되며 생긴 전통과 소비의 차이
글 입력 2023.09.1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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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현재 대중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이다. 청년의 반항심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 되어주는 락(Rock)과 함께 큰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힙합 자체가 가지는 반항심도 있지만, 이 장르는 음악을 하는 이들을 우러러 보도록 만든다. 래퍼들이 외치는 가사 속에서 과거 겪었던 불행과 고난이 드러난다. 그리고 현재는 떳떳하게 잘 살고 있다 정도가 청중에게 전달된다.


힙합의 정통성은 미국 본토로 부터 찾을 수 있다. 흑인이 차별받던 시절부터 그들의 음악을 발전해왔다. 흑인 영가나 가스펠, 블루스, 재즈 등 흑인이 음악과 교육에서 차별받으며 자라왔기에 펼칠 수 있는 음악이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의 원리를 따르기 보다 본연적으로 내재된 흥과 소울을 표현하는 데 특화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힙합 또한 그 연장선에 위치한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공식적으로 철폐되었음에도 그들의 상황은 아직 동일한 선상까지 위치하진 못하고 있다. 가난의 되물림은 많은 흑인들을 여전히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놓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 처지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풀어내고자 했다. 바로 힙합이다.

 

 

 

힙합의 출처와 즐기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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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 가지는 매력은 솔직한 고백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동시에 성공할 것이라는 야망을 담는다. 그 어떤 음악보다 개인적이고 공격적이다. 본인 외의 등장인물은 나와 같이 고난을 겪는 동료(homie)나 자신이 가지고 노는 대상들이다.


그러나 음악이 고해성사의 장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사실만 담기지 않는다. 과거의 힙합은 그들의 상황을 담고자 했던 이들이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성공 스토리에 매료된 이들이 그들을 따라하고 있다. 힘든 상황이 아님에도 나는 힘들고 힘든 상황을 겪어왔다고 주장한다. 혹은 그런 상황을 겪고 얻는 성공을 지금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중 진실로 그런 상황에 놓였던 이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정통성을 따지자면 끝도 없다. 지금 힙합을 하는 이들은 힙합이 가진 음악성을 본다. 힙합이 탄생한 배경은 별개의 문제이다. 음악성이 부각되기 위해 고난의 인물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분위기를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다. 현재의 힙합은 실제 고난을 표출하는 이들과 그들의 음악성에 매료된 이들로 나뉜다고 보인다.

 

 

 

힙합은 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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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예시를 보자. 한국에서 하는 힙합을 '국힙'이라 한다. '국힙'의 가사를 본다면 이들이 힘든 시절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고난은 어디로 갔는가? 힙합의 정신이 없다며 서로를 욕하다가 자신의 성공을 예찬한다. 힙합의 정통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듣는 이들은 많다. 국힙을 하는 사람들과 국힙을 듣는 사람들 모두 힙합 자체의 음악성에 집중한다. 베이스가 박자에 맞춰 울리는 리듬감, 그 위에 랩을 뱉는 쾌감 등이 랩을 듣는 이유가 된다.


혹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힙합을 좋아하는 경우를 보자. 이들은 아직 힘든 시기를 겪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이 힘들다고 말한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만든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힙합을 즐길 자격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힙합이 가진 음악성이 좋다면 누구나 음악을 하고 들을 수 있다. 음악이 가지는 솔직함은 그들만의 힘듦을 해소하는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힙합이 국내로 들여오면서 변화된 점으로 생각된다.

 

 

 

경계에 선 자들이 펼치는 음악


 

외국 사례를 보자면, 래퍼 'Logic'의 경우 흑인 혼혈임에도 피부가 검지 않아 흑인임이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그가 겪은 생활은 흑인이 겪을 수 있던 게토의 생활이었고, 이와 동시에 백인이 흑인으로 부터 받을 수 있는 혐오와 경멸의 표시를 모두 받았다. 그는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위치에서 고난을 겪었다. 그런 이가 외치는 음악 역시 힙합이 되었다.


오직 본토의 음악이 힙합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위 사례는 ‘힙합은 어떤 음악인지’를 상당히 모호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을 Logic을 흑인 래퍼로 볼 수도 있지만, 겉으로 그렇지 생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를 흑인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외부인이 인종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가장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자가 하는 음악을 힙합이라 부를 수 있느지는 그의 인종에 달려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리스너 입장에서 눈여겨 봐야 하는 점은 '그가 하는 음악이 힙합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지녔는가'로 보인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그의 고난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의 모호한 정체성이 그를 여느 흑인들처럼 힘들게 했음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나온 그의 음악, 힙합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힙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음악이 잘났다며 구분짓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국악, 락, 발라드,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하 음악을 구분지어 분류하려는 시도는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알아본다면 끝이 없다. 한 음악가가 만든 음악이 여러 장르의 성격을 띈다면서 분석하려는 시도는 듣는 것보다 음악을 해체하는 시도이다. 음악을 들으려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 과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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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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