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호하면서도 독창적인 - 가정교사들 [도서]

글 입력 2023.09.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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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가정교사들

LES GOUVERNAN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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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적이고 선정적이며 기이하고 뛰어난, 진정으로 독창적인 소설"

 

- 뉴욕타임스

 

 

책 제목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소설 [제인 에어]이다. '가정교사'라는 직업을 보여준 소설이기도 했고, [제인 에어]에서 다뤄지는 가정교사의 이미지가 뚜렷했기 때문에 이 소설도 그런 모습을 담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무채색의 옷을 입고 얼굴에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넓은 저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그런 모습들.

 

하지만 안 세르의 소설 [가정교사들] 속 3명의 가정교사들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울타리로 막힌 정원에 둘러싸인 저택에서 어린 남자아이들을 가르치는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는 자신들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랑, 초록, 파랑, 빨간색의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가정교사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자유분방한 나날들을 보내는데 이들의 주요 일과는 정원 앞을 지나가는 낯선 남성들을 유혹하는 일이다.



그들이 그 남자가 그렇게 가버리도록 둘 리가 없다. 그는 그들이 쳐놓은 광대하고 황량하고 내밀한 덫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그물을 꺼내어 그를 잡으러, 가두러 간다. 파란색과 갈색 드레스를 입고 이제 그들이 숲속으로 들어간다. 성큼성큼 걸으며 뾰족한 부츠로 덤불숲을 헤쳐나간다. 아직 멀리 갔을 리 없다. 저쪽에 녹색 점이 나무들 사이로 나아간다. 그 남자다. 사냥이 시작된다. (p.29)

 

 

금빛 철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성. 가정교사들의 타깃이 되는 순간 그는 사냥감에 불과하다. 마치 두 마리 야수에 쫓기는 것 같았던 남성은 결국 붙잡히고 가정교사들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섹슈얼한 성적 긴장감보다는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그야말로 '사냥'인 셈이다.

 

이들의 기행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저택의 주인인 오스퇴르와 맞은편 집에서 망원경으로 가정교사들을 관음 하는 한 노인이다. 



오스퇴르 씨는 이 집의 주인이다. 밤 12시, 모두가 잠들었다. 집의 중심에서 그는 감시를 한다. 잠들어 있는 집의 박동이 그로부터 나오고 그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p.44)

 

 

오스퇴르와 가정교사들의 관계는 어딘가 기묘하다. 오스퇴르는 가정교사들의 '사냥'과 같은 기행을 다 지켜보면서도 묵인한다. 가정교사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딱히 숨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정교사들은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연극을 벌인다. 이 집에서 나가겠다며 짐을 싸고 문밖으로 나가는 시늉을 한다. 저택의 구성원들은 모두 이들을 말리고, 연극이 끝나고 나서는 가정교사들이 원하는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가정교사들의 기행은 저택 내에서만 가능하다. 어느 날, 그들은 초대를 받아 이웃의 정원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한다. 호의적인 이웃들 사이에 있었지만 엘레오노르와 로라, 이네스는 그 사이에서 이질적인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모욕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가련한 패배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그는 맞은편에 사는 가정교사들을 관찰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쓰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가정교사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즐긴다. 깊은 밤 정원에 고립되어 있는 그들을 적어도 누군가 봐준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p.64)

 

노인과 가정교사들의 관계는 더더욱 요상하다. 망원경으로 가정교사들을 훔쳐보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노인, 불쾌할 법도 하건만 가정교사들은 오히려 노인의 망원경에 화답하는 모습이다. 렌즈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했을 때, 기꺼이 그 앞에서 옷을 벗고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은 오히려 노인을 농락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노인이 저택을 향하던 망원경을 거두고 창문에 커튼을 내리게 되면서 가정교사들의 존재는 위기에 처한다. 자신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시선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이 자신들을 덮쳐오는 것을 느낀다.

 


가정교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으며, 서로에게 어던 질문을 던져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눈빛으로 서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작아지고 있어." (p.144)


 

안 세르의 [가정교사들]은 읽는 내내 모호하다. 시공간을 알 수 없는 어느 저택에서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가정교사들의 모습은 환상 동화 속 인물들 같기도 하다. 안 세르의 작품은 대개 다양한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진, '분류가 불가능한' 성격을 띠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데뷔작인 [가정교사들]에서 이러한 특징이 제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문체는 간결하고 경쾌하며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 세 가정교사들은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들의 자세한 과거사나 정보는 드러나지 않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머나먼 유럽 어딘가의 저택에 인물들이 숲속을 달리고 있을 것만 같다.

 

소설의 이러한 매력 때문인지 [가정교사들]은 미국에서 영화화된다고 한다. 숲과 정원의 모습들, 거대한 저택과 그 주인 오스퇴르, 멀리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노인,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욕망에 가장 솔직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세 명의 가정교사. 이 기이하면서도 매혹적인 인물과 이야기가 스크린에 어떻게 담길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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