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화점 어떻게 가야돼요? 경성의 모던뽀-이요 [도서/문학]

그 시대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무엇을 샀나
글 입력 2023.08.3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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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백화점2.jpg

 

 

몇 년 전부터 겨울이 되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명동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모티브로 한 아름다운 미디어아트가 백화점 외벽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구경하며 겨울의 설렘도 느끼고, 예쁜 SNS 업로드용 사진을 찍기 위해 요즘 유행에 민감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인다. 성탄절 직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하다.

 

 

미쓰코시 백화점2_수정.jpg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곳은 2020년대뿐만 아니라 1930년대에도 모던뽀-이들과 모던-걸로 가득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식민지 시대 경성이란 도시에서 외국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고, 유행을 만들거나 열렬히 따르던 사람들이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는 과거 우리나라 최초 백화점인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유행을 따르고 싶어 하고, 소위 ‘세련된 사람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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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미쓰코시 백화점 그리고 주변에 위치한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서 무엇을 구경하고 구매했을까?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근대에 판매되던 물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00년 전의 그들과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것들이 근대와 현대 동시에 잘 팔리고 있을까?

 

과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장바구니에 담았고, 우리는 무슨 이유로 신나게 카드를 긁는지 한 번 살펴보자.

 

 

“녀름철 화장의 결점은 버서지기 쉬운 것과 땀을 흘녀서 얼녹이 잘 가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자연이 버서지지 안는 화장과 또 버서저도 보기 흉하지 안은 화장 이 두 가지가 제일 필요합니다.”

 

- 매일신보 1931.7.1

 


육색 백분 - 당신이 여성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일 수도 있다. “얼굴에 착 달라붙고, 예쁘게 무너져요” 동영상 플랫폼에서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피부 메이크업 제품인 쿠션팩트를 추천할 때 하는 말과 비슷하다.

 

잘 알다시피 사계절 내내 사용하는 화장품이 있는 반면 피부 메이크업 화장품은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쓴다. 특히 땀이 많이 나는 여름에는 물광을 표현해 주는 것보다 조금 매트하게 발리는 것 혹은 지워지고 무너지더라도 과하게 녹아내리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박가분 광고_수정.jpg

 


근대에도 지금과 같았다. 위 사진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행했던 백분인 박가분의 광고이다. 박가분이 대유행을 치고 난 후 사람들은 점차 단순히 밝고 하얀 분이 아니라 내 피부톤에 맞는 자연스러운 백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시된 제품인 육색 백분은 여러 색이 섞여 나의 피부에 맞는 톤이 되었다.

 

우리가 쿨톤과 웜톤, 21호와 23호를 따지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자연스러운 화장의 시작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조선 사람들은 멋대가리 업시 안경을 잘 쓰는 괴벽이 잇다. 아모리 형용이 고괴한 작자라도 한번 안경을 쓰고 나서고 보면 갑작이 점잔어진것처럼 경부보 이상으로 몸이 뻣뻣해지고 지옥(아래턱)이 올라간다.” - 별건곤 1930년 5월 발행호

 

“멀쩡한 눈임에도 불구하고 멋으로 쓰는 안경은 하이칼라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야만인에게는 근시안자가 없고 문명인에게 안경 쓰는 사람이 만타”고 할 정도로 안경은 “문명적 불구자”를 구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었다.”

 

 

안경 - 1920~30년대 안경이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기 시작했다. 지적인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거나 공부를 많이 하는, 흔히 인텔리라 불리는 사람들은 눈이 나쁘고, 안경을 많이 썼다.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에 안경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머스트해브 패션템’이다. 이제는 안경으로 똑똑함 뿐만 아니라 귀여움, 매혹적임, 카리스마 등을 꾸며낼 수 있다. 더 나아가 형태를 넘어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구매에 영향을 준다. 이전에 인텔리들의 점잖음을 따라갔다면, 지금은 브랜드 모델의 화려함을 가지려는 것이다.

 

예로 들어 국내의 한 컨템포러리 아이웨어 브랜드는 블랙핑크 제니와의 협업으로 유니크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해당 안경과 선글라스는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어 구하기 어려운 상품이 되었다.

 

근대와 현대의 안경 소비 모두 기능적인 부분이 아니라 멋스러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에서는 굳이 시, 분을 나눌 필요가 거의 없어 시계가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그 필요성이 점차 커졌다. 자연의 시간이 ‘흐른다’면 도시의 시간은 ‘쪼개진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시간을 구획하고 분할하는 데 필수적인 시계는 개항 이후 눈에 띄게 많이 수입되었다.“

 

 

시계 - 시간을 위해 사용되던 시계는 점차 소재, 디자인 등에 따라 부를 과시하는 사치품으로 변화했다.

 

이 같은 양상은 현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명품 시계의 매출이 하락하는 시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계에서 눈을 조금만 돌리면 된다. 현대인들의 새로운 필수 디지털 기기, 스마트워치다. 

 

초기에 스마트워치는 쪼개진 시간을 더 쪼개서 쓰는 현대인들의 생활을 위해 출시되었다. 업무로 인해 바로 확인해야 하는 알람들을 곧바로 처리하고, 초 단위로 나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과시 본능과 꾸미려는 욕망은 시대를 타지 않고 스마트워치에 고스란히 이어졌다.

 

스마트워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새로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스마트함을 나타내는 듯했다. 이러한 이유들에서 스마트워치는 나의 ‘현대성’을 강조하는 패션 물품으로 조금씩 분야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세 가지 물건을 통해 근현대의 소비행태를 구경해 보았다. 욕망과 소비는 현대인들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당신이 품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갈망은 단순히 욕심보다 인간의 본능에 더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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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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