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허술하고 귀여운 것들 - 띠로리소프트 [도서/문학]

띠로리, 『허술하면 좀 어때』
글 입력 2023.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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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걸 보면 웃음이 난다.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들 속에서 나를 웃음 짓게 만드는 건, 주로 귀여운 것들이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부담스러운 건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건, ‘뽀실뽀실 눈사람’ 같이 희미한 녀석들이다.

 

뽀실뽀실 눈사람은 브랜드 ‘띠로리 소프트(tirorisoft)’의 인형이다.

 


뽀실눈새롱.png

뽀실뽀실 눈사람

 

 

["함박눈을 맞은 하얀 눈사람. 겨울이 지나도 녹지 않을게."]

 

눈사람이 녹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하고 소중한 바보 같은 마음은, 언젠가 녹을 눈사람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눈사람은 녹지 않는다. 영원하지 않은 우리의 동심을 영원히 지켜줄 것 마냥, 뽀실뽀실 희미하게 웃고 있다.

 

 

허술 표지 복사본.jpeg

 

 

『허술하면 좀 어때』는 인형 브랜드 ‘띠로리 소프트(tirorisoft)’를 만든 작가 띠로리가 낸 에세이다.

 

띠로리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며, 매일매일 가엽고도 귀여운 인형을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문득 인형을 만들어 볼까? 라는 마음에 시작한 것이 너무 즐거워서 온종일 인형만 만들고, 인형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좋아해서 시작한 만큼 띠로리 작가는 인형 제작에 진심이다.

 

띠로리 소프트의 인형들은 전부 수제작으로 만들어진다. 한땀 한땀 만들어지는 인형은, 눈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따라, 인형의 인상이 천차만별로 바뀐다는 게 신기하다. 인형들은 허술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엉성하고 허술해 보이는 인형들은, 잘못 건드렸다간 눈 하나 떨어지는 거 아냐?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띠로리 작가는 안정적이고 세심한 근본의 형태를 추구한다. 인형들은 밍숭맹숭하면서도 바보 같은 표정으로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다.

  

[“내가 만드는 인형들이 주로 하찮고 힘없는 인상을 주기에 못 믿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형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적인 구조는 아주 확실한 모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컵 모양 인형이라면 컵의 옆면, 바닥, 손잡이와 컵 받침에 이르기까지 본래의 컵의 구조를 정확하게 따라서 만든다. 무엇 하나 생략하면 그건 근본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 띠로리, 『허술하면 좀 어때』, p.80.

 

[“어째서 바보 같은 표정으로 만드는지 묻는다면, 누가 봐도 귀여운 건 싫기 때문이다. 문구점에 진열된 캐릭터 팬시상품이나 오목조목한 비율의 곰 인형 등을 보면 당연히 귀여우라고 만들었으니 귀엽긴 하지만, 가슴속 어딘가에서 심술이 솟구친다. 애써 모르는 척하고 싶달까. 그렇게 대놓고 귀여운 건 이미 세상에 많으니까 나까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 띠로리, 『허술하면 좀 어때』, p.80-82.

 

너무 대놓고 귀여운 건 별로다. 완벽한 것들에는 정이 안 가서인지, 힘 없으면서도 단단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듯한 것들이 눈에 밟힌다. 눈에 생기가 있는 캐릭터보다는, 눈이 작고 희미하고 얼굴은 여백이 많을수록 귀엽다. 그리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귀여운 공격성'이 발동해서 으깨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합법적으로 으깨 먹을 수 있는 귀여운 음식들은 너무 좋다. 예를 들어 다코야키나 라멘 속 계란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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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강아지

 

 

["그렇지, 아무래도 삶이 버거울 때는 햄버거지."] - 띠로리, 『허술하면 좀 어때』, p.212.

 

띠로리 작가는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만땅’일 때, 연례 행사처럼 햄버거를 먹는다고 한다. 그런 게 있다.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 중요시되는 것은 음식의 맛도 있지만, 식당의 분위기도 중요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패스트푸드점은 밥을 때울 때 오히려 부담감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나도 힘들 때면 싫어하는 음식인 돈까스를 먹는다. 왜 힘들 때 싫어하는 음식을 먹냐고? 그래야 지금 내 힘든 상황보다 돈까스가 괜찮다고 느껴지거나, 돈까스가 별로여서 내 힘든 상황이 괜찮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힘들 때면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 보자. 기분이 나름 좋아진다. 그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와 먹는다면 그건 더더욱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아예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 아니라, 딱 굳이 찾아 먹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음식을 말이다. 그럼 역설적으로 한층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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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물 넙떡이

 

 

이 책에서 띠로리 작가의 최애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내가 상상한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언젠간 찾아온다고 해도, 한날한시에 모두 죽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결국 그때도 나름의 사랑과 모험을 펼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망할 듯 천둥 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카페에 갇혀 시시하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실없이 웃으며.”] - 띠로리, 『허술하면 좀 어때』, p.238.

 

시시하고 실없는 이야기와 장난으로 점철된 하루가 웃음이 난다. 세상은 엄청난 혼돈으로 가득 뒤덮여 있어도,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부작거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에디터 심선용.jpeg

 

 

[심선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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