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에게 받은 천 번 중 한 번의 입맞춤을 돌려보내며, 도서 '모차르트 평전'

글 입력 2023.08.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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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뜨거운 사랑으로 쓰인 책


 

사랑은 언어와 맞닿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를 설명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열렬한 방법은 그로부터 발생한 언어를 끝없이 생성하고 전달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편지와 평전이야말로 그 사람에게 보내는 가장 깊은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종이를 빼곡하게 채우는 텍스트는 한때의 감상이 아니라, 쓰이고 읽히고 다시 읽히는 순간까지 끝없이 양 책 껍데기 속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거칠게 감성을 전달하는 것이 때로 더 아름다운 편지와 달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관해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평전은 좀 더 고려할 것이 많다. 내가 생각했을 때 좋은 평전은 두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다. 첫 번째, 저자의 명확한 관점과 감상이 책 전체를 꿰뚫어야 한다. 평전은 역사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 한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감상문이다. 두꺼운 평전을 써내려갈 만큼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을 한마디로 고백할 수 없다면, 그 대상이 보여준 환상을 정신없이 좇는 비참한 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 특성과 부딪치는 것 같지만, 감정의 파도에 사랑하는 사람이 휩쓸려 손가락마저 잠겨버린다면, 그것은 더이상 그 사람에 관한 글이 아니게 될 것이다. 애당초 평전이란 기본적으로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면서 완성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두 가지 관점에서 오늘 리뷰할 도서 <모차르트 평전>은 더없이 훌륭한 평전이다. 이 책은 진정으로 고귀한 정신을 가진 모차르트에게 바치는 열렬한 사랑의 시이면서, 사랑의 언어 속에서 잘 갖춰진 운율과 리듬처럼 설득력 있고 객관적인 표현을 지키고 있다. 도서 리뷰 글에서 되도록 저자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이 책을 리뷰하면서 저자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애정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저자의 이름을 발견한 부분이 상당 부분 차지했기 때문이다.

 

3년 전, 나는 같은 저자가 쓴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을 읽었다. 이 책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텍스트와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되는 QR코드로 구성되어있는 클래식 입문서다. 기본적으로 교양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감상 자체에 초점을 맞춘 책의 기획도 좋았지만, 내가 당시에 주목했던 것은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었다. 저자는 가독성 좋은 문체로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과 경험들을 곡과 부드럽게 연결하는데, 그 텍스트에 담긴 감성이 그 제목처럼 '소설처럼' 느껴져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때 저자가 모차르트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부분을 기억해두고 있다가 만난 책이 <모차르트 평전>인 것이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과 비교해서 저자는 좀 더 객관적인 묘사와 설명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내가 이전 저작에서 느낀 부드러운 감성은 책을 읽는 내내 발견할 수 있다. 저자에 대해 나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두 책에서 느낀 저자의 그림자-비록 그가 그 스스로를 위한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왜 그가 모차르트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이전에 책의 제목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모차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로 '천 번의 입맞춤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모차르트가 - 죄와 벌의 라스콜리노프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아름답고 비참한 땅에 입 맞추는 장면이 상상이 된다. 라스콜리노프가 진심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하고 사랑을 주었던 대지에 기쁨과 사랑을 전했던 것처럼, 그도 필시 그랬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입맞춤을 보낸 것이 그의 아내하나 뿐이 아니라, 이 비옥하고 황량한 세상 전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보낸 수많은 키스의 움켜쥔 몇 조각이, 그의 위대한 작품이다.

 

모차르트는 그 짧은 삶에서 아이처럼 행동했지만, 그의 정신이 마냥 해맑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삶은 때로 소박하고 세속적인 환상을 정신없이 좇는 약간 바보 같은 모습으로 귀여운 종을 울려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깊은 속에는 위대한 아버지 부딪치는 시련을 이겨낸 고결한 타미노가 있다. 이번 모차르트 평전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 중 하나는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인데, 정말로 이 교향곡은 그의 고결함에 경도되게 만드는 곡이다.

 

이 긴 교향악에서 1악장의 주제는 슬픔이고, 끝없는 탄원과 탄식 같은 주제가 여러 층위의 멜로디와 악기에서 반복된다. 하지만 멜로디는 탄식에 머무르지 않고 작게 아름답고 일렁이는 주제가 끼어든다. 하지만 안식 속에서 앞서 반복된 슬픔과 탄식이 더 크게 변주되어 울려 퍼진다. 하지만 다음 악장에서 더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을 통해 슬픔을 보상해나간다. 아버지가 죽고, 사랑하는 딸아이가 죽었을 때 작곡한 이 교향악을 듣다 보면, 정말로 시대와 공간에 얽매인 인간이라는 육체와 조각나고 분산된 한 인간의 정신에서 끝없이 끌어 오르는 사랑의 힘에 감탄하게 된다.

 

말이 길어졌는데, 이런 모차르트의 감수성이 모차르트와 맞닿는 면이 있었다. 저자는 이전 책에서 스스로 언급했던 것처럼, 클래식을 사랑하는 누나를 잃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도, 잃어버렸을 때도, 그에게 클래식은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색채로 빛나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콘서트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저 너머에서 들었던 클래식처럼 삶과 맞닿은 듯 맞닿지 않은 듯 그에게 흘러들어왔다. 그런 그가 묘사한 모차르트는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모차르트는 레퀴엠과 마술피리를 비슷한 시기에 작곡해나갔던 기인이었으니까.

 

 

 

2. 마술피리를 연주하면 맹수도 잠재울 수 있을거야


 

저자에 대한 긴 이야기를 접어놓고, 내가 읽은 모차르트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모차르트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보물 같은 아이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보호를 만끽하면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교육자이자 사업가로서 모차르트의 재능을 키워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아버지가 발굴해낸 모차르트의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것이었고, 모차르트는 대중과 귀족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만끽하면서 살았다. 그의 가족부터 주변인까지 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왔으니, 그가 겁 없이 공주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갑작스럽게 뛰어올라 여왕에게 키스하는 아이로 자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을 받았지만, 동시에 귀족 사회의 변덕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라왔다. 그가 청소년 시절 작곡한 오페라는 왕의 변덕과 기성 오페라 작곡가들의 방해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사랑스러운 신동 취급을 받긴 했지만 당대 음악가는 여전히 시종에 불과했다. 특히 대주교는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모차르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했다.

 

어린 나이부터 방랑생활을 하면서 또래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기질을 발달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누군가의 시종이자 사랑받는 음악 시동의 구실을 해왔고, 아버지와 귀족들과 같이 나이나 신분 면에서 차이가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편하게 교류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불일치가 그의 '반골기질'을 키웠다고 본다. 그는 방귀나 똥에 대한 농담을 많이 하고, 거의 조증적으로 보일 만큼 가볍게 행동했다. 그가 평생 사랑과 찬사 속에서 묘한 계급적 긴장감을 느끼면서 살아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가 왜 그토록 계몽주의적 집단에 들어가고 악기들이 대화하는 듯한 음악을 작곡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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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페라 <마술피리>의 타미노와 파파게노를 모차르트의 분신이라고 묘사하는데,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나는 좀 더 나아가서 자라스트로가 그의 아버지를 상징한다고 본다. 그는 파파게노처럼 자유롭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귀족들을 공격하면서, 종을 가볍게 흔들어대면서 음악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삶에서 보인 다소 방정맞아 보이는 부분은 파파게노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그의 삶을 거대하게 차지하는 것은 타미노다. 타미노라는 인물은 사랑을 쟁취하는 진지하고 강한 성인 남성이면서, 엄격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자라스트로의 잔인한 시험을 통과하는 인물이다.

 

아버지 레오폴트와 모차르트의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 아래에서 실컷 응석 부리면서 챙겨줘야 하는 아이이자 그의 보물로서 살아왔다.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결혼에 반대하고 번듯한 돈벌이를 하는 성인남성의 역할을 하는 것에는 늘 반항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인정을 깊게 갈구했다.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음악적 아버지이자 영원한 지원가였고,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그에게 깊게 기댔다.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 그가 '음악에 관한 농담'을 작곡하면서 철부지 아이로 남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것도, 그의 사랑과 보호가 그에게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짐작게 한다.

 

사랑과 법의 총체적 상징인 자라스트로은 그런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그는 잔혹한 시련을 주지만, 복수하지 않고 모두를 감싸 안는 어머니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모차르트는, 그런 아버지를 깊게 내면화했기 때문에 행복을 노래하는 파파게노도 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사랑'의 주제와 아내와 아들에게 끝없는 사랑은 분명 이런 배경들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의 음악은 진정으로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달콤한 각설탕 같은 키스로 이루어져 있다.

 
 
 

3. 나가며


 

이런 삶을 살아온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나도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끌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 내가 발견한 모차르트의 조각들을 조금 공유하고자 한다. 교향곡 G단조 K.183은 젊은 모차르트가 귀족들의 어린 음악 시동을 벗어나 계몽주의와 평등정신에 눈뜬 생생한 열기가 느껴지는 곡이다. 흔히 모차르트를 하이든 시대에 살면서 베토벤을 꿈꾸었던 음악가라고 표현하는데, 이 곡을 듣다 보면 그 싹이 이때부터 꿈틀거리는 것같이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스무 살이 된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Eb장도 K.271은 대화하는 듯한 악기의 구성 방식 자체가 모차르트의 자유로운 정신이 드러나는 것 같다. 피아노오중주족 K.452와 두 개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448 마찬가지로, 왠지 내가 나열한 음악을 듣다 보면 모차르트가 다가와 함께 즐겁게 노래하는 것이 그가 사랑한 음악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술피리를 불어대면서 짐승과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처럼, 누구를 해칠 필요도 없이 즐거운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흐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모차르트가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를 좋아한다. 그는 클라리넷을 사랑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클라리넷의 꽉 차고 울리는듯한 소리가 각 악장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이 음악을 듣다 보면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의 이야기와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들었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장례도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지만, 그는 평생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사랑을 음악을 통해 표현했고, 그는 진심으로 그의 음악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사치스럽게 살았지만, 그의 음악과 언어는 소박하고 평등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이 글을 쓰는 요즘, 뉴스 면을 보다 보면 사람들의 말과 표정이 점점 더 진지해지고 딱딱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점점 더 인간적인 활기를 잃어가는 사회의 원천에 흐르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그때 내게 찾아온 모차르트는 끝없이 솟아오르는 사랑과 영감의 힘으로 그가 그렸던 세상이 그토록 부드럽고 탄력적이며, 생생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그래, 이 세상의 어느 편에서는 입맞춤을 보낼 수 있는 이의 입맞춤에 화답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복잡하고 딱딱한 세상에 어색한 입맞춤을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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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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