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학을 묻힌 예술 [문화 전반]

과학과 관련 소재가 사용된 예술의 낮은 접근성
글 입력 2023.08.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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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가 나오는 플라스크, 머리가 삐죽하게 되어있고 까맣게 그을음이 옷 곳곳에 묻어있는 모습. 전형적인 과학자의 모습이다. 과학은 예술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예술에서 과학을 찾으려는 자는 산통을 깨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인간의 마음으로 느껴야 할 부분을 머리로 차갑게 분석하려는 점이 무용해 보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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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공대생이나 소위 '아싸'가 보여주는 낮은 사회성과 공감능력은 상호 관계에서 불편함을 자아낸다. 비슷한 특징이 과학에서도 발현된다 보는 모양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끼리의 대화에 끼어드는 과학은 흥미를 떨어뜨리는 지루한 시각에 불과할 수 있다. 특히나 더 자세한 과정을 다루고자 할 때, 머리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과학적 지식이 제공되는 순간을 꺼려한다.

 

 

 

과학이 소재가 된 예술



최근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하면서 과학자의 전기적 특성을 가진 작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모습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베스트셀러에 놓인 책은 훌륭한 문학 작품이나 자기계발서이다. 고전의 반열에 과학이 발을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최근 연속적으로 발표한 영화들에서 과학이 소재가 되고 있음이 더욱 뜻깊어 보인다. 영화 《인터스텔라》 또한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받아 촬영했으며, 과학적 배경이 훌륭하게 영화를 지지해 주었다.


과학 자체가 예술의 소재가 되는 상황은 흔치 않다. 반복적으로 '과학은 예술과 가깝지 않다'와 비슷한 어구가 나오지만 이를 멈추기 어렵다. 명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부 사례를 볼 수있는데,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초입방체의 십자가의 처형'이나 'Galacidalacidesoxiribunucleicacid' 에서 과학적 요소가 포함된 것을 볼 수 있다.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 에서도 비슷한 요소가 사용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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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예술은 직관적인 이해에 효과적이지 않다. 배경 지식이 있는 자는 예술에 담긴 지식을 꺼내고 논의점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그저 어떤 요소나 의미 없는 말로 보일 것이다. 이런 점이 과학의 적용을 막고 있다. 이 점 자체가 잘못되었기보다 사람들이 이 점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 소재의 평등함



하지만 이런 특징이 과학이 적용되는 순간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철학, 인문학, 역사 등 모든 분야가 예술과 결합되면서 발생한다. 더 강력하게 말하면, 예술에 직관적 인식 후에 느껴지는 모든 주석은 그저 부차적 요소일 뿐이다.


예술가가 사용하는 소재는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비범한 능력과 섞여 만들어진다. 소재가 예술가를 향해 날아가야지만 가능하다. 그러나 예술가는 학문적인 사람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점을 경험으로 표현해야 하는 세상의 통역을 맡는다. 예술의 영역은 그들만 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예술을 제외한 모든 영역은 예술로 표현할 가치로 비춰진다.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다시 현실로 꺼내는 일은 쉽디 않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최대한 많은 배경지식을 동원해 합리적으로 추론한다. 원작자의 의도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심지어 무의식적인 영향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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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과학만 유달리 말이 길다 하기 어렵다. 그저 다른 분야에 비해 무지의 대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원리따위야 몰라도 충전과 터치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역사를 모르는 이는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철학을 모르는 이는 철학적 가치를 임에 담기는 커녕 이해하지 못해 머릿속에 담기지 않는다. 과학이 가지는 공익적, 완성된 상품성은 오히려 대중에게 과학을 강요하지 않는다.

 

 

 

과학이 묻은 예술이냐, 예술에 감히 손댄 과학이냐



그러나 놀란 감독의 영화의 성공은 과학이 소재임에도 대중의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마치 영화를 보지 않던 관객에게 과학을 권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과학은 크리스토퍼 놀란 정도의 거물이 건드리지 않는다면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예술들이 담고 있던 과학이 그다지 좋은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명한 자는 앞으로 그 지위를 내려놓을 수 없다. 자신이 그 지위를 부수고 싶더라도 절대 부수지 못하는 사회적 명성은 개인의 손을 떠난지 오래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예술작품, 그것이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 정신세계는 각지의 팬들에게 찬미받는다. 그렇게 보자면 그런 사람의 작품에 과학이 있던 말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지지를 보내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과학이 가미된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거장이 다룬 과학을 제외하곤 수준 높은 예술이 없다면 그들은 다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던 과학의 주목이 세상에 골고루 퍼져나가지 못한 까닭이다.


과학이 예술과 결합하며 소재로 사용된다면 극단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과학자가 다룬 예술은 과학에 치중되어 예술의 본질을 놓친다. 누구도 직관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것을 예술로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반대로 예술가가 다루는 과학은 깊이가 얕아 과학의 진보성을 설명할 수 없다. 가정용 세탁기의 설명서만도 못한 설명은 예술에 가미되어도 그 향이 과학의 본연의 향이 아님은 확실하다.

 

*


언제까지 SF장르라 하면 우주를 배경으로 전투를 벌이는 스타트렉, 스타워즈, 스페이스 오디세이 가 떠오르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이미 직관을 넘어선 세상을 탐구하고 있다. 그 세상에 대해 한 치의 이해도 없이 예술을 하겠다는 건 아집에 불과하다.

 

이를 꺾지 못한 시도는 후대에 평가를 위한 단상 조차 마련 받지 못할 것이 뻔하다. 이에 대해 감히 생각해보자면, 모두가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단 '과학'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대해서,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깊은 학문적 탐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성과는 제 가치를 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과학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길 바란다. 어느 분야보다도 예술과 동떨어졌다고 여겨지기에, 다른 무엇과 비슷히 가까워 질 수 있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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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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