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뒤틀린 모성애의 말로 [드라마/예능]

고현정, 염혜란, 문숙의 <마스크걸>
글 입력 2023.09.11 13: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코스타리카 정글의 딱정벌레는 개미 떼에게 공격을 당하면 새끼들을 포기하고 도망을 간다. 사실 야생에서 이러한 양상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하이에나에게 공격받는 초식동물들 역시 이따금 새끼를 포기하고 도망친다.

 

이에 비하면 인간들의 모성애는 헌신적인 면이 있다. 특히나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몹시 남다르다. 모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숭고한 것으로 다뤄지곤 한다. 슈룹의 임화령(김혜수 분)이 그랬고, 말아톤의 경숙(이미숙 분)이 그랬다.

 

반면 마스크걸의 어머니들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비교해서 알아채기 어렵다. 드라마의 소재는 '모성애'가 아닌 '외모지상주의'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들은 극을 주도하다가도 한발 물러서서 단역처럼 스쳐 지나간다.


「마스크걸」은 마치 학부모 참관수업 같다. 아이들이 열심히 발표하면 뒤에서 에바 캐처도리언(케빈에 대하여 母)과 이금자(마더 母)가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창가에는 코스타리카의 딱정벌레도 앉아 있다.

 

 

 

엄마보다는 사람이 어울리는, 김모미



드라마 '마스크걸'은 김모미라는 여자의 일생을 1인 3역으로 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모미는 신인 배우 이한별이 연기했다. 아름답지 않은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수라는 꿈을 포기하고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모미. 하지만 재능을 숨길 수 없었던 그녀는 가면을 쓰고 인터넷 방송 BJ 마스크걸로 활약한다. 그리고 한 남자를 죽이게 된다.

 

끝내주게 못생기고

끝내주게 몸매 좋은 여자, 김모미

 

원작인 웹툰의 소개 글에 나와 있듯이 모미는 '끝내주게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런 모미에게 사심을 가진 애청자 '핸섬스님'이 다가오며 불행이 시작된다. 모텔의 물침대 위에서 둘은 욕을 주고받으며 대치하고, 모미에게 밀쳐진 핸섬스님은 그대로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다.

 

쓰러진 핸섬스님을 보고 혼란에 빠진 모미는 직장 동료인 '주오남'을 불러서 시신의 은폐를 맡긴다. 신고하려던 모미를 그가 설득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주오남은 보상심리라도 생긴 것인지 잠적한 모미를 찾아와 언성을 높이다가 결국은 강간한다. 그렇게 모미는 두 번째 살인을 한다.

 

이후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거치고 바라던 외모를 갖게 되는 모미는 배우 나나가 연기했다. 그녀는 이제 얼굴을 가리지 않고도 조명 아래에 선다. 바에서 쇼걸로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조차 갈 수 없는 범죄자 신분인 데다, 주오남의 모친이 끈질기게 추적해 왔기 때문에 한계를 느끼고 경찰에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모미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주오남의 아이였다. 강간범의 자식이 보기 싫을 법도 한데, 모미는 아이에게 예쁘다는 말만 해주겠다며 이름을 '김미모'로 짓는다. 그리고 연을 끊었던 친모 '신영희'를 찾아가서 자신의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김모미.jpg

 

 

그렇게 1047이라는 죄수 번호를 가지게 되는 모미는 배우 고현정이 맡았다. 수감 생활은 쉽지 않았으나 모미 역시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를 셋이나 죽이고 들어온 마스크걸은 금세 평온한 나날을 되찾는다. 김모미의 일상을 뒤엎어 놓은 것은 편지 한 통이었다.

 

「니년도 느껴봐

자식이 망가지는 기분을」

 

죽은 줄 알았던 김경자가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분노는 모미의 딸인 미모를 향하고 있었다. 모미는 결국 탈옥을 감행하고, 경자의 총구가 향해 있는 미모의 앞을 막아서며 험난했던 인생을 마무리한다.

 

죄가 많은 생애를 보낸 여자가 자식을 위해 진정한 희생을 하게 된다는 전개였다.

 

감동을 자아내는 결말이다. 하지만 하품을 했을 때보다도 눈이 건조했다. 납득이 가는 마무리였지만 감흥은 없었다. 어쩌면 자식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직접 키우지도 않은 자식을, 그것도 강간당해서 임신한 아이를 위해 탈옥은 물론 죽음까지 결심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모의 '엄마'인 모미보다는 춘애의 '친구'인 모미에게 더 반응했다. 둘의 서사는 시대상에 맞게 각색되며 '보니 앤 클라이드'를 연상시켰다. 모미를 대신한 춘애의 죽음이야말로 극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이처럼 모미는 누군가의 엄마보다는 한 사람으로서의 색이 뚜렷한 캐릭터였다. 가지고 있는 결핍이 선명했고, 일으키고 다니는 사건들이 커다랬다. '희생정신을 가진 어머니'는 그녀의 타이틀이 되기에 부족했다.

 

 


뒤틀린 모성애를 가진 김경자


 

김경자.jpg

 

 

반면 경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머니'라는 단어는 적합하고도 남았다. 그녀는 보통의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 따위는 없던 여자가 자식을 잃고 광기에 휩싸이는 모습이었다.

 

경자는 남편을 중매로 만났다. 없이 자라서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자격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결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 초장부터 다른 집에 살림을 차려버렸다. 어린 아들 오남만이 남은 채로 3년의 결혼이 끝났다.

 

남의 집 식모살이부터 설거지, 화장실 청소, 배달, 택시 운전.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자에게 오남은 삶의 원동력이자 전부였다. 양날의 검이었다. 경자는 자기 아들에 한해서는 객관성을 잃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다지만 경자는 정도가 심했다.

 

아들의 자취방 냉장고에서 토막 난 시체가 나왔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마스크걸에게 죄를 미룬다. 우리 아들은 벌레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애라며 소리를 치는 경자의 모습과, 의식을 찾은 핸섬스님을 칼로 난자하는 오남의 모습은 극렬한 대비를 이룬다.

 

그렇기에 모미의 딸인 미모가 자신의 손녀라는 사실도 상상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들 오남은 리얼돌을 구매하는 방구석의 오타쿠 따위가 절대 아니고, 지적이며 사교성이 좋은 번듯한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미를 강간했을 리도 없다.

 

경자는 결국 손녀의 학창 시절을 소문으로 망쳐놓고, 더 나아가서 유독 가스에 죽어가는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고자 한다. 계획이 모두 실패하자 총을 들고 나섰다가 또 다른 총에 제압당한다.

 

이런 경자의 모습에서 최근의 사건 사고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극성 학부모 때문에 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부모들을 감당할 수 없는 식당 주인들이 '노키즈존'을 내세우기도 한다.

 

세상의 많은 경자들이 뒤틀린 모성애는 자기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마스크걸의 경자 역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이유로 남을 해하려다 본인마저 죽어버렸다.

 

 

 

어떤 모성은 방관의 모양이다, 신영희



신영희.jpg

 

 

그런 경자와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캐릭터도 있다. 바로 모미의 친모인 신영희이다.

 

영희와 모미 사이의 사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커다란 저택에 남편은 보이지 않으며 어머니는 딸에게 매우 무심하다. 오히려 매정하기까지 하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딸에게 '니 그 얼굴로 가수를 한다고? 꿈 깨라'며 혼을 낸다.

 

EBS 다큐 프라임 「마더쇼크-나는 엄마다」에서는 사실 모성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엄마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아기가 사랑스러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힘들기만 합니다. 아기가 보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쁜 엄마가 된 거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한 출연진의 말이었다. 신영희도 위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모종의 이유로 어머니는 딸과의 연결고리를 생성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범죄자가 된 딸을 숨겨주는 대신 연을 끊고 매몰차게 군다. 아들의 살인 혐의조차 부정하는 경자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런 영희를 보고 있으면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 나오는 에바가 생각난다. 그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유모차를 들고 공사장 한가운데로 간다.

 

영희가 손녀인 미모를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모습 역시 '에바'를 투영하며 이해할 수 있었다. 친딸인 모미는 그렇게 홀대했으면서 미모는 아끼던 이유가 대체 뭘까. 일관성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에바도 안정된 상태에서 낳은 두 번째 자식 실비아는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하고 귀여워했다. 반면 케빈은 원치 않은 아이였다. 극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첫 번째 아이에게는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영희도 비슷한 심리상태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영희의 캐릭터가 제일 신선했다. 신영희는 전형적인 모성애를 부정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마스크걸'의 감상을 마무리하며


 

모미의 모성애는 가득 찼고, 경자의 모성애는 넘쳐흘렀으며, 영희의 모성애는 메말랐다. 이러한 차이가 「마스크걸」의 숨겨진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어머니들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와도 연관 지을 수 있었다. 극성 학부모들과 경자, 산후 우울증을 겪는 엄마들과 영희. 결국 오남과 모미가 어떻게 자라났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 사회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크걸」은 인상적인 드라마였다. 한 사람의 세상에 어머니가 차지하는 영향과, 어머니의 세상에 자식만이 가득 차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6.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