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장 속에서 자유를 찾다 [영화]

글 입력 2023.08.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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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많은 사람들을 넷플릭스로 유입시킨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버드 박스>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본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는 아포칼립스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남은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살아남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버드 박스>를 다양한 측면에서 톺아보고자 한다.

 

 

 

흔한 재난영화 속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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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를 보면, ‘빌런’이라고 칭할만한 인물들이 꼭 나온다. 지나치게 이기적인데 말솜씨는 좋아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캐릭터들 말이다. 대표적으로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부산행>에서 김의성 배우가 연기했던 ‘용석’,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미스트> 속 ‘광신도(카모디 부인)’ 등의 캐릭터들이 있다.


이 빌런들은 매 순간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다, 결국 의기투합한 주인공 무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클리셰 속에서 사라지곤 한다. <버드 박스>는 여타 재난물들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더글라스’ 캐릭터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더글라스는 얼핏 보면 앞서 말한 빌런과 같은 존재이다. (자기 집도 아니면서) 새로운 외부인이 집 안에 들어올 때마다 극심하게 반대하고, 다 떨어져 가는 식음료를 구하기 위해 겨우겨우 진입한 슈퍼마켓에서도 “남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살자”는 발언을 한다. 당연하게도 더글라스의 모든 주장은 의리 넘치는 인물들에 의해 묵살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매 순간 무시당하면서도 더글라스는 ‘그냥 있을’ 뿐이다. ‘보복성으로 다른 인물들에게 무슨 짓을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글라스가 경계했던 외부인 중 한 명은 ‘사이코*’였고, 더글라스는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다 죽음을 맞는다.


* 사이코 : 정체 모를 무언가를 쳐다봐도 죽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그것’과 마주하게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영화 속 표현.


이기적인 인물로 비치긴 했으나, 앞뒤 상황을 살펴보면 그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에서 신선함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오히려 정의로워야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문제였다. 경찰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이 의사로 추정되는 인물과 함께 몰래 차를 가지고 도주하며 모두를 배신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여러 캐릭터와 상황들을 통해 영화는 클리셰를 여러 차례 비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악’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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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사이코’라 불리는 인물들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형체 없는 미지의 존재를 봐도 죽지 않는 사람들이다. 영화의 중간마다 등장하는 이 인물들은, 사람들을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미지의 존재를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눈을 가리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억지로 그것과 마주하게 하는 그들을 보면, 마치 악의 하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 속에서 사이코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눈을 가리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왜 다른 이들의 눈을 억지로 뜨게 하려는지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묘사한 대사 속 표현들이 있다. ‘전과자’,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범죄자들’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악령과도 같은 존재는 실체 없이 그저 사람들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해를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은 사이코들이었다. 강제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붙잡고, 자신들에게 반격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정체 모를 존재보다 더 잔혹한 것은 사이코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해 왔던 존재 앞에서도 결국 살아남는 ‘더한 악’들이 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덧대어 볼 법한 영화 속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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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인공 일행이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장소이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될 정도의 장소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시각장애인들이었다. 그리고 ‘안전한 곳’은 시각장애인 학교였다.


주인공 일행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눈을 가리기만 하면 산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 눈을 가린 채 위험천만한 모든 상황을 겪어왔던 주인공을 생각하니, 평상시에도 매 순간이 조심해야 할 것투성이였을 시각장애인들의 고충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중간마다 눈을 가린 주인공의 시점을 일인칭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끝까지 ‘어떤 존재’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 모든 연출에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다.

 

*


영화 속 시각장애인 학교를 보며 ‘디스토피아 속 유토피아 같다’는 매우 역설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심지어는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한 최후의 피난처 같았다.


바깥엔 아직 미지의 존재가 있고 심지어 사이코들까지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피난처가 끝까지 안전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곳에 남은 이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내용이나 교훈과 별개로 영화 자체를 보자면, 영화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 장르의 분위기를 끝까지 잘 가져가고 있다. 과거,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과 뻔하지 않은 전개가 2시간가량의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재난물 특유의 답답한 전개도 별로 없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한 번쯤 시청해 볼 만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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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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