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덧없는 생의 끝까지 더없이 채우며 : 앙리 마티스, LOVE & JAZZ

글 입력 2023.08.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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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그에 관한 것이라면 남들이 흔히 아는 정도만 알았다. 빨간색 몸뚱이의 사람 형체가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는 이름 모를 그림과 야수파의 창시자라는 사실. 호와 불호의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만 알던 어떤 화가. 덕분에 전시회를 찾는 데에 부담이 적었다. 모든 일화가 새롭고 신기할 테니까.


전시 장소는 생각보다 찾아가기 어려웠다. 건대 롯데시네마가 있는 건물이라서 입구까지는 쉬웠다. 그런데 3층이라니. 영화관이 최상층인 줄 알았는데 그 위에 하나 더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2층까지만 운영하기에 지도 앱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헤매다가 얼결에 앙리 마티스 표지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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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이 눈에 띄었다. 색종이를 투박하게 잘라 붙인 모양새. 막연히 콜라주 기법을 떠올렸다가 멈칫했다. 이 사람은 회화를 주로 그리지 않았던가?

 

확신은 없었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생을 마친 예술가라면 으레 그러하듯 붓과 유화 물감을 손에 쥐고 그렸을 듯한 느낌이다. 시작부터 그의 연대기가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겹쳐서 나열되어 있길래 점과 선을 따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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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출근 전에 미술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맹장염이 생기는 바람에 입원을 하고, 썩 좋지 않은 일처럼 보일 이 염증 덕분에 그의 삶은 단박에 미술로 뒤바뀐다. 입원 기간 동안 심심해할 마티스를 위해 어머니가 유화 물감을 사다 주었고 흥미를 느낀다. 그 느낌은 단순한 재미 이상이었던 걸까. 하던 일을 관두고 파리로 향한다.


그곳에서 정식으로 미술을 공부하며 영국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독특한 표현방식과 색채에 깊이 감명받는다. 긴 세월 동안 미술을 그려가면서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겠지만, 그가 분명하고 단적인 화풍을 지니게 된 배경이지 않았을까. 강렬한 색채 표현으로 또렷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야수파가 탄생한 것도 그렇고.


어떤 한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 같은데, 단 하나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관심이 군데군데 넓게 퍼져있다. 마티스는 생계를 유지해 가며 조각을 공부하고 판화를 만들고 아티스트북을 제작하는 데에 이른다. 일평생 미술에 골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말년엔 건강이 악화되어 원래의 방식대로는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는 포기 대신 다른 방법을 물색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컷아웃'. 말 그대로 종이를 가위로 잘라 만든 콜라주 형식이다. 전시 초입에 보였던 다소 알록달록한 색종이들의 정체가 바로 이거였다.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종이를 벽면에 떼었다 붙였다 반복했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말이다.

 

자신의 한계를 순순히 수용하기보단 다른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 참으로도 열성적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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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는 회화와 조각을 결합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캔버스 위에서 선을 그어 안과 밖을 구분하는 연필. 선이 아닌 면을 통째로 들어내는 가위. 그리고 가위로 세심하게 끝모양을 정리해 가며 조각을 만들고, 그 조각을 이어 붙이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일. 이건 회화인가 조각인가.

 

"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난 눈으로 생각한다."

 

 

3-3.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jpg

 

 

전시 팸플릿은 대개 가이드 역할을 하지만, 이번 건 체험의 영역과도 맞닿는다.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이 있던 섹션 앞에 테이블 두 개가 놓였고 그 위엔 각각 도장들과 가위, 테이프가 있다. 팸플릿을 열어 맨 뒷장을 보면 핑크, 노랑, 초록, 파랑, 검정 등 색색의 종이가 양면으로 한 장, 그 옆엔 스탬프를 하나씩 찍어가며 컷 아웃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종이도 주어진다.


야트막한 그 공간은 모두에게 열렸다. 선과 명암 등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누구에게나'라는 주석을 달기엔 조금 겸언쩍다. 별 수 없이 뛰어남과 그렇지 못함을 구분하고 차등을 두게 된다. 하지만 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벽면에 붙이는 행위, 이건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마티스의 말대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 눈으로 생각해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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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하는 사람, 즉 방문 당시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나 자신을 표현했다

 

 

병상 위에서의 생활이 길어지자 작은 사이즈의 판화 드로잉을 해가며 마티스는 또 다른 방식으로 뻗어나갔다. 그 섹션을 지나고서는 그의 4대손이 설립한 라이프스타일 부티크 '메종 마티스'의 작품이 이어진다. 강렬한 색채 대비가 눈에 띄던 물건들.


마지막 섹션은 그의 마지막, 프랑스 남부의 로사리오 성당에 남긴 흔적들이다.

 

 

사진자료 08 앙리 마티스 특별전 전시 전경.jpg

 
 

이곳에서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들이 있는데, 그 위에 전시 도록 샘플이 몇몇 놓였다. 그의 작품 사진들보다 눈에 띄었던 건 그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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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손에 들었던 붓이 펜으로, 조각칼로, 가위로 바뀌어가는 동안 한결같이 자신의 미술을 이어간 사람. 병상에 누워있든 생의 끝에 다다랐든. 짧은 전시였지만 그가 추구한 삶을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어 좋았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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