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바비! [영화]

글 입력 2023.08.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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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후회한 일이 있다.

 

인형 머리카락은 비누로 감으면 안 된다. 그걸 모르고 나의 인형에게 개운함을 선사하겠다는 의무감 하나에 낭패를 봤다.

 

예쁘고 예뻤던 나의 ‘쥬쥬’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 뒤로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쥬쥬와 비슷한 크기의 ‘바비’ 인형이 내게 생겼다. 비슷하면서 참 서로 다른 외모를 가진 둘이었다.

 

긴 금발에 적당히 태닝한 피부, 파란 눈과 핑크색 입술, 잘록한 허리와 길고 가느다란 팔 그리고 다리를 가진 바비였다.

 


[크기변환]barbie-childrens-toys-dolls.jpg

 

 

영화 <바비>(2023)는 어린 시절, 특히 여자아이들이 선망하는 그 인형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비누로 머리를 감긴 나이였을 땐 바비를 나만의 공주님이나 닮고 싶은 이상향처럼 생각했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 벗어날 때쯤엔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느새 욕실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던 쥬쥬와 바비가 사라졌다. 좀더 커서는 바비 자체에 내재한 획일화된 외모나 매끈하게 다듬어진 인상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아예 관심을 꺼두었다.

 

그런데 영화의 도입을 보고 나니 바비에 대한 의심은 좀 접어두기로 했다.

 

아기 인형을 가지고 엄마의 역할에 그쳤던 아주 옛날, 여자아이들에게 독립적이고 당당한 바비가 등장했다. 그간 바비의 탄생 배경이나 지금은 어떤 바비가 생산되고 있는지 알 턱이 없었기에 내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


바비 세계(Barbie World)는 모든 것이 알맞게 들어서 있다. 딸기우유 같은 색감에 둘러싸여 어디 흠 하나 없는 그곳엔 바비, 켄, 앨런, 밋지가 산다. 압도적으로 바비의 수가 많고, 켄은 그 옆에 서사가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있고, 또 그 옆에는 앨런이 소심하게 걸쳐져 있고, 밋지는 생뚱맞게 외딴곳에 서 있다.

 

사건은 전형적인 바비(우리가 익히 아는 그 인형이자 영화 주인공)의 해선 안 될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한창 Girl’s Night Out을 즐기던 밤에 바비는 문득 ‘끝’에 대해 떠올린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바비의 세계가 조금씩 틀어지는가 싶더니, 끝내 늘 구두를 신어야 하기에 들린 바비의 뒤꿈치가 땅에 붙어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실 세계로 향하는 바비와 지독히도 그의 마음을 얻고 싶은 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캐릭터를 빌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백하게 전달하지만 상징도 적지 않다.

 

바비를 돋보일 조연이던 켄, 또 그를 돋보일 앨런. 이렇듯 존재의 이유가 온전한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 기대어 이야기를 만들고, 또 주인공은 그 관심을 당연하게 여김에서 문제는 비롯한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존중이 필요하다. 저마다 존중받으면서 각자의 역할을 맡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바비에게 주목해 보자. 현실 세계와 바비 세계, 양쪽의 문제를 해결하려 동분서주한 바비는 혼란스럽다. 벤치에서 마주친 주름지고 몸이 굽은 노인, 길을 걷다 당한 성희롱, ‘맨’ 파워가 그득한 세계. 뭐든 다 가능한 꾸며지고 매끄러운 바비 세계와 달리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은 냉혹하다.

 

그러나 바비는 인간이 되기로 결정한다. 왜? 서 있는 곳마다 무대가 되는 주인공이라면 그곳이 아쉬울 만도 한데.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반란 무리의 모피어스가 주인공 네오에게 건넨 파란 약과 빨간 약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네오는 빨간 약을 골랐고, 바비는 인간이 되기로 했다. 모순되고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에 거주하며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용기를 가졌다.

 

 

[크기변환]movie-theater.jpg

 

 

한편, 영화를 보고 나서 뒷맛이 씁쓸한 건 우리는 ‘진짜’ 현실에 살고 있으며 처리할 문제는 심지어 매 순간 갱신 중이라는 점 때문이다.

 

대신에 특정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 사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진실을 직시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고질적인 문제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면 복잡다단한 이 세계의 해답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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