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념을 좇는 청춘들의 이야기, 연극 '어나더 컨트리' [공연]

유토피아가 없다는 말이 절망적이지 않을 수 있는 마음
글 입력 2023.08.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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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관한 정보는

연극 <어나더 컨트리>의 프로그램북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어나더컨트리 포스터1.jpg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1982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연극으로 초연됐고, 1984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었던 작품이다. 2019년, 무려 37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어나더 컨트리>는 신예들을 연극 등용문이 되었다. 2019년의 초연 이후 1년 만인 2020년에 재연 무대로 되돌아오며 높은 화제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9년 여름 냄새가 찾아오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뮤지컬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어나더 컨트리>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관람한 뮤지컬이 재밌었고 마침 또 다른 공연을 보러 가고 싶었다. 찾아보니 마침 할인 기간이었고 때마침 가능한 시간대에 아는 배우가 있었다. 우연의 연속이었다.


19명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오디션을 통해 기용된 ‘신예’였다. 신인 배우와 국내 초연,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작품이었다. 티켓값을 부담할 통장이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에 검증되지 않은 작품은 어쩌면 도박이었다. 그런데도 <어나더 컨트리>를 관람했던 것은 운명이 아닐까. 운명이 아니라면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할 수는 없다. 여전히 <어나더 컨트리>의 프로그램북을 펼치면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그 떨림의 이유를 적어 보고자 한다.

 

 

SYNOPSIS

 

1930년대, 상류층 자제들만 모인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 계급 체제의 권위적인 이곳 기숙사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토미 저드는 이단아 같은 존재다.


특히 학교의 명예와 기숙사의 규율에 맹목적인 기숙사의 선도부 파울러는 이 둘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다음 차기 학생회 자리를 놓고 가이 베넷이 거론되던 중, 가이 베넷은 제임스 하코트와의 밀회가 탄로나며 후보에서 제외된다. 이 모든 사건은 결국 베넷의 가치관을 바꾸고 국가란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체제와 싸우는 이, 체제에 순응하는 이



‘체제와 싸우는 이들’.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에게 붙이고 싶은 이름이다. 두 사람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인 듯 보이지만 같은 목표를 갖고 이야기를 이끈다.


자유로운 가이 베넷은 주어진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 『자본론』을 끼고 살며 레닌을 존경하는 토미 저드는 학교 규율에는 큰 관심을 두는 듯하지 않다. 그저 규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수반되는 체벌이 귀찮은 듯 보인다. 전체 소등 시간이 지난 후 손전등에 의지하여 책을 읽는 토미 저드와 군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는 가이 베넷. 그 양상이 조금 다를 뿐 그들은 규율을 어긴다. 원리원칙을 목숨만큼 중요시하는 파울러에게 두 사람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틀림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들이 속한 사회 내에서 이단아가 분명하다. 단지 규율을 지키지 않기 때문일까? 동성을 사랑하는 가이 베넷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토미 저드는 당시 그들을 둘러싼 ‘일반적인’ 이념에 반하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간다. 가이 베넷은 울분을 터트리고 나는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결국 가이 베넷은 소련의 스파이가 되었고 그곳으로 망명한다. 토미 저드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지만 전사한다. 그들은 ‘이념의 조국’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들이 ‘체제와 싸우는 자’인 이유다. 그들은 체제의 이단아였고 강직한 혁명가였다.


당대 상황을 온전히 알 수 없으니, 감정의 동요는 그 어딘가에 익숙함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이념에 따른 행동’. 살아가며 이상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 이상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도 익숙했다. 1930년대 영국의 청년이든, 2023년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청춘이든 이상을 향해가는 열정은 같았다. 대략 90년이라는 세월이 존재하지만 그 마음이 닮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눈물이 흘리며 그들에게 나 자신을 투영했다.


과연 나는 가이 베넷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과연 나는 토미 저드처럼 확신할 수 있는가? 나는 이념에 따라 조국을 택한 그들과 같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나의 꿈도 지키지 못했으며 내가 싸우고 싶은 체제에 관해 그 어떤 외침도 보태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학교 시험 방식이 불만이었다. 수학조차도 암기 같다고 느껴지는 공부가 과연 정말 유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방식을 고안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바라기에는 한국 사회는 단순한 숫자로 이루어진 성적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국가다.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이들은 ‘신혼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름으로 이행하는 제도의 혜택을 바랄 수조차 없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사랑하는 일에 차별받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벽장에 숨어야 하고 나오더라도 사회의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진학하고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해야 한다. 취업 후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결혼해야 하고 이후에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인데 다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나는 주입식 교육 체제부터 LGBT를 둘러싼 사회적 관념, 획일화된 삶의 모습 등 많은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주입식 교육 체제에 따라 무작정 공부하기 바빴고, 정해진 절차인 양 대학을 향해 달렸다. 성소수자 차별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그 어떤 것도 발언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나는 체제에 순응한 사람이었다.


 

 

“지상의 지상. 그냥 지상.”



“체제에 순응하든지 바꾸려고 노력하든지 둘 중에 하나야. 대안은 없어.”


체제가 싫다면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토미 저드 역시 그렇게 말한다. 나는 체제를 바꾸고 싶었다.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렇다면 순응하지 않고 노력해야 했다.


“그게 가능할까? 지상의 천국?”

“아니. 지상의 지상. 그냥 지상.”


이념을 좇았던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는 그들의 염원을 이루었을까? 본인이 아닌 이상 확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소련으로 망명한 가이 베넷도, 스페인 내전에서 전사한 토미 저드도 이상적인 사회를 찾았음을 단언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지상의 천국은 없다. 절대적인 이상은 없다. 원칙주의자 파울러는 소령으로 퇴역했고, 하코트는 결혼 후 세 자녀를 두었다. 파울러의 원리원칙과 그 옛날의 사랑은 없다. 만인에게 영원히 이상적인 국가는 없다.


‘지상의 지상. 그냥 지상.’이라고 답한 토미 저드의 말뜻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말은 지상에 천국은 없다고, 그 자유로움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지상의 지상,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 최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순응하는 자에게는 이상적인 사회가 찾아올 기회조차 없다. 체제를 바꾸려는 자에게는 ‘노력’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하여 표현하기 시작했다. 숫자에 연연하는 삶이, 벽장에 갇혀 사는 삶이, 모두와 닮은 생애를 사는 삶이 그리 행복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바뀌는 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나를 동요하게 했던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의 희망, 열정, 울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그들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유토피아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지상’. 여전히 그 지상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날들이 쌓여 나의 자유와 정의를 만들고 있다.


나를 이토록 강직하게 만들고 자유를 선사한 작품, <어나더 컨트리>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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