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희로애락의 속뜻을 아시나요? [영화]

글 입력 2023.08.10 18: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감정에도 이분법은 존재한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교실에서, 가정에서, 매체에서 ’기쁨’, ‘감사’, ‘사랑’ 같은 단어를 강조해오는 동안, 자연스레 ‘슬픔’, ‘우울’ 같은 단어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부정적인 꼬리표도 붙었다. 때문에 슬픔과 우울은 속히 극복해야 할 혹은 통제해야 할 것으로 자연스레 각인되었다.

 

그러나 감정은 잘못이 없다. 오히려 당면할 수밖에 없는 생리를 애써 부정하는 행위가 더한 생채기를 내기 마련이다.


고무적인 것은 점차 ‘슬픔’, ‘우울’ 같은 감정들도 용인되어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언할 수는 없으나, 세상이 진보하며 이전에는 소외 혹은 배척되었던 대상을 무대에 올리는 서사들이 틈입하면서 현실에, 일상에 존재했지만 부러 소거되었거나 외면되었던 '감정'에 대한 사안도 하나의 테마로 서게 된 것 아닐까.

 

 

[크기변환][포맷변환]인사이드 아웃.jpg

 

 

비교적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직관적인 메시지가 그 일례다. 작품의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다섯 가지 감정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단연 대비를 이루는 것은 ‘기쁨’과 ‘슬픔’이다.

 

우리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오인해온 것처럼 극중 감정 컨트롤 본부 내에서도 슬픔이는 하찮고 무용한 존재로 재단된다. 급기야 기쁨이는 슬픔이가 라일리의 기억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항시 감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종국에 이르러 기쁨이는 깨닫는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 역시 삶의 한 일부이며, 양극단이 아닌 삶의 연장선 상에 같이 놓인 감각이라는 것을. 극중 기쁨이의 머리색이 슬픔이의 상징이기도 한 파란색인 연유도 여기에 있다.

 

 

[크기변환][포맷변환]벌새.jpg

 

 

이렇듯 동화적인 상상력을 보태 슬픔의 가치를 바로 새겼던 <인사이드 아웃>이 비교적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면, <벌새>는 마치 일기 같은 톤 앤 매너로 각자의 상흔을 관조하는 작품이다.

 

극중 도무지 스스로를 사랑할 만한 명분이 없는 주인공 ‘은희’의 물음 “선생님도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어요?”에 영지 선생님은 이렇게 답한다. “…많아. 아주 많아. 난 내가 싫어질 때 그 마음을 들여다봐. 아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그러한 감정은 묻어 두거나, 회피하기보다 찬찬히 응시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멘토 격이던 선생님의 담담한 고백에 은희는 처음으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크기변환][포맷변환]나의 해방일지.jpg

 

  

한편 이러한 정서에 관한 테마는 대중적 공감이 필수적인 드라마 분야에서도 유효한 소재가 되어가고 있다. 낭창한 기운 대신 소시민적 일상에 잔재한 음울한 정서, 무력감을 큰 축으로 에피소드를 꾸려가는 <나의 해방일지>가 그렇다. 

 

극중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자기혐오를 겪는다. 그중 유독 부각되는 것은 세 남매 중 막내 ‘염미정’의 자기혐오다. 그녀는 스스로를 짓누르는 모든 것들과 작별하고자 용기 내어 ‘나의 해방일지’라는 사내 동아리를 기획해 마음이 맞는 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회포를 푼다. 

 

그러나 장기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성원들은 고백한다. 시작은 했는데 해방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고. 그러자 그녀는 전보다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내 문제점을 짚었다는 것”이라 답한다. 진정한 해방은 슬픔에서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 봉인되었던 혹은 형체 없이 부유했던 슬픔들을 적확히 들여다보는 단계로의 진입이라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상영 혹은 방영되었던 작품들을 위주로 논지를 풀었지만, 실은 이러한 외침은 ‘희로애락’이라는 익숙한 명명으로도 충분히 치환 가능하다. 이는 인생사의 다양한 감정을 일컫는 용어로 풀이되곤 했지만, 주지할 것은 각 획의 나열이다. 

 

왜 굳이 ‘희’와 ‘락’ 사이에 ‘로’와 ‘애’를 삽입한 것일까. 노여움과 슬픔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정확히는 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겪어내지 않고서는 ‘락’에 당도할 수 없음을 견지한 것이 아닐까. 행복은 비집고 좇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찾아오는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수용할 때 절로 얻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김민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