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에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언젠가부터 내게 그 말은 너무 가벼워졌다. 껍데기뿐인 말로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랜드 스탠딩(grandstanding)이 만연한 사회에 아주 걸맞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 년 전쯤 겪은 경험은 이런 행동을 반성하게 했다.
당시 종각의 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 마감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했다. 종업원은 가게 마감에 바빠 뒷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그때 목소리를 높여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를 외치는 나의 일행을 보았다. 무의식적으로 뱉는 말이 아닌 듯했다. 눈을 맞추고 있지 않더라도 음성으로 크게 전달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껍데기만 남은 나의 습관이 부끄러워졌다.
돈을 지불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항상 최선의 것을 준다. 그렇다면 나는 진심을 담은 고마움을 몇 번이나 제대로 돌려주었을까? 고민을 한 다음 날 오후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아웃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 기간 정신없는 대학가 카페의 혼잡함 속에서도 종업원은 ‘빨대는 옆에서 챙겨주세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오랜만에 진심의 감사합니다를 말했다. 자동으로 나오는 문장이 아닌 어디에선가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모든 일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오랫동안 오글거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따뜻함과 그 온도를 마음껏 나누는 당당한 사람. 무례하지 않고 무해하지 않은, 함부로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는 존재이고 싶다.
누리는 것에 대해 감사함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더 큰 시대인 것 같다. 나조차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일보다 부족한 것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누구는 대기업에 취업했네, 집을 상속받았네, 주식으로 이득을 봤네 성공들이 가득한 세상 틈에서 나는 어떤 꿈을 가지고 무엇을 이뤄내야 할까 초조함과 다투던 시기도 길었다.
하지만 진심의 감사합니다를 뱉었던 순간 나의 불안은 줄어들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숱하게 고민하던 질문에 어떤 것으로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닌 ‘감사함을 느끼고 진심의 자세로 살자’로 답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진심이며 감사하는 것. 지금의 우리가 가장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