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큐멘터리 촬영분이 살인 사건 증거물로 [영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투 더 딥: 어느 발명가의 살인>
글 입력 2023.08.0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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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m 길이의 검은색 민간 잠수함 'UC3 노틸러스호'가 침몰했다. 거기에는 잠수함을 제작한 페테르 마센과 기자인 킴 발이 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페테르는 성공하여 많은 신임을 받는 발명가였다. 따라서 소식을 기다리며 모여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페테르의 동료였다. 잠수함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근심하던 이들은 서로를 안으며 안도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 왔다.

 

"문제가 생겼어요. 구조선에는 페테르 한 사람뿐이래요."

 

킴 발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범인을 암시한 뒤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인투 더 딥의 부제는 '어느 발명가의 살인'이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발명가는 페테르 마센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범인을 추리해야 하는 마피아 게임이나 추리 소설보다는 이미 마무리된 사건을 설명하는 뉴스와 더 가깝다.

 

결국 시청자는 '누구' 보다는 '왜, 어떻게'에 집중하게 된다. 페테르 마센의 말과 행동을 눈여겨보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귀담아듣는다. 덕분에 영화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이상한 점을 포착할 수 있다.

 

"밸러스트 탱크에 문제가 생겼어요. 30초 만에 배가 가라앉아서 해치를 닫지도 못했어요."

"동승자는요?"

"배에는 저뿐이었어요.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인투더딥 2.jpg
UC3를 타고 있는 페테르와 킴

 

 

그는 잠수함에 문제가 생겨서 항해를 취소하고 할반데트 식당 근처에 킴 발을 내려주었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 킴이 왜 사라진 것일까? 그녀의 남자친구는 잠수함에 타고 난 뒤에도 이어지던 킴 발의 연락이 어느 순간부터 끊겼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잠수부는 잠수함에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바보가 와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양쪽 밸브가 고의적으로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잠수함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미심쩍은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경찰은 페테르를 살해 혐의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에마 설리번이 담기 시작한 괴짜 발명가의 다큐멘터리는 실종 사건의 중요한 단서로 쓰이게 된다.

 

 

 

발명가의 얼굴과 살인자의 민낯, 절묘한 교차편집


 

영화 제작자인 에마는 잠수함을 세 척이나 제작한 덴마크의 발명가에 대해 촬영하고 싶었을 뿐이다. 온라인에서 페테르 마센의 테드 강연 영상을 본 그녀는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로켓 발사 계획에 관한 다큐를 찍고 싶다고 편지했다. 곧이어 긍정적인 답신이 돌아왔다.

 

따라서 다큐멘터리에는 잘 꾸며진 살인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구소의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존경받는 페테르 마센의 모습이다. 제작 중인 유인 우주선에 관해 설명하는 그는 비전과 야망이 가득한 건강한 사업가처럼 보인다.

 

"고양이는 너무 아프고 트럭 운전사는 너무 바빠요. 크리스마스는 취소됐죠. 곧 겨울이에요."

 

페테르는 노래와도 같은 소리를 쾌활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에마에게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냐고 물으며 웃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난 숟가락으로 살인할 지경이죠. 사고사할 사람을 뽑을 거예요. 어른이 되면 '배신'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적응해야만 해요. 누군가 당신을 배신하고 짓밟고 집어삼킬 거예요."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적당히 편집되었을 혼잣말이 섬뜩하게 들린다.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인지, 에마 역시 페테르에게 질문했다.

 

"내 얘기 해요?"

"네, 에마 얘기에요. 죽도록 포옹해 줄 거예요."

"포옹(hug)이랬어요?"

"네?"

"죽도록 팬다(hack)는 줄 알고 놀랐어요."

"죽도록 패다뇨!"


"페테르가 저한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내용이 노틸러스호가 잘 나간다면서 내일 여행을 가자는 거였죠. 기자가 실종되기 전날에요."

 

연구소에서 일을 하는 사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페테르 마센이 살해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킴을 찾으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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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종 11일 후, 페테르는 '킴 발은 선체 내에서 사고로 사망했으며 시신을 수장했다'고 말을 바꿨고, 코펜하겐에서 킴의 절단된 몸통이 발견되었다. 사라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낌새를 느꼈는데 간과했던 걸지도 모른다며 죄책감을 느꼈다.

 

사라는 페테르에게 받은 나머지 문자들을 자세하게 공개했다. 일이 빨리 끝나지 않으니 협박 문자를 보내주면 능률이 오를 것 같다는 취지의 장난스러운 발신에 조금 오싹한 답장이 돌아왔다.

 

[일 안 하면 잠수함에 묶어버린다]

[묶어서 꼬챙이를 찔러 넣겠어!]

[그다음 주머니칼을 들이밀고...]

 

그는 살인 계획을 다 세워 놨다며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고 했다. 사라를 데리고 영화를 찍을 것이며 싫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라는 그게 전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페테르의 컴퓨터에서는 스너프 필름이 발견된다. 여성을 고문, 참수하고 산 채로 불태우는 패티시 영화였다.


 


증거로 쓰인 다큐멘터리 영상



오후에 페테르가 톱을 들고 가는 걸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 강철 잠수함에 목공용 톱을 가져갈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주황색 손잡이가 달린 톱이었다.



인투더딥 3.jpg


 

그리고 에마가 촬영한 영상에 문제의 톱이 담겨 있었다. 사건 당일, 이야기하는 페테르의 뒤쪽 벽에 주황색 손잡이가 달린 톱이 걸려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엔 같은 자리가 텅 비어있다. 단순한 증언을 눈으로 확인받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페테르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법정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인투더딥 1.jpg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물어볼 게 있는데요. 혹시 이 사실 알고 있어요? 사이코패스는 우리 사회에 존재해요. (...)

 

 

마지막의 5분은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한다. 직접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페테르의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사람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타겟을 설정하는 중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얼굴과 말투, 목소리가 같은 인간임을 의심하게 만든다.

 

결국 페테르 마센은 종신형을 받는다.

 

 

 

사이코패스의 주변에 있는 '우리'


 

페테르 마센은 법정에서 크게 웃으며 이미 죽은 사람인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정신 감정 결과 마센은 병적인 거짓말쟁이이며 공감 능력, 양심, 죄책감이 크게 결여됐다고 밝혀졌다.

 

그의 동료들은 분명히 위화감을 느꼈다. 페테르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러고 보니 그때...'하며 상기했다. 살해 협박에 가까운 문자나, 스너프 필름에 대한 암시가 그랬다. 당장의 의심보다는 열정적이고 추진력 있는 발명가에 대한 존경이 더 컸던 탓이다.


하지만 페테르 마센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은 주변 지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증언은 법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연구소의 인턴, 자원봉사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망할 문자까지 받고도 몰랐다니 부끄러워요. 내가 온 세상에 알려야 해요. 내 두 눈으로 전부 봤다고."

 

"이제 저는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예요. 킴 발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도우려고요."

 

"여기 다신 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바라건대 저와 여기 사람들 모두 앞으로 잘되면 좋겠어요."

 

이미 죽은 사람인데 뭐가 문제냐며 웃던 페테르 마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신도 피해자가 될 뻔했으면서 오히려 미리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사라의 태도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25명 중의 1명꼴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큰 비율에 걱정이 들긴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이렇다. 한 명의 사이코패스가 있다면 스물다섯 명의 정상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기꺼이 법정에 서서 증언한 연구소의 사람들처럼.

 

최근 칼부림 사건이 유행하며 사회 분위기가 많이 뒤숭숭해졌다. 무자비하게 남을 해치는 사람들을 보며 부정적인 감정이 들기 쉽지만,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현역에서도 한 고등학생이 칼에 찔린 피해자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니 기억하자. 1명의 나쁜 사람 뒤에는 25명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페테르 마센과 같은 사이코패스가 발견되었을 때 남은 사람들마저 와해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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