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글 입력 2023.08.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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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시작을 이 영화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8월의 크리스마스'를 꺼내 보았다.


영화는 정원의 일상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에 가고, 운동장에 앉아 철봉에 매달리기도 한다. 또 자신이 일하는 사진관 문을 열고 일을 하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장례식장에도 다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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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 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죽음을 앞두었다고 그의 일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관의 문을 열었고,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무더운 저녁 날, 동생과 이야기하며 마당을 향해 수박씨를 뱉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차단속 요원 다림이, 그의 일상에 등장한다.

 

 


추억이 되지 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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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단속원인 다림과 정원의 첫 만남은 정원이 지인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후였다. 그의 사진관에 찾아온 다림은 급하니 바로 사진을 인화해 달라고 재촉한다.


주차 단속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여름이라는 계절은 다림을 힘들게 만든다. 계속해서 밖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하고, 손님의 차를 단속한다는 이유로 식당에서도 문전 박대당해서 더운 밖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사진기가 고장 나서 혹은 사진을 인화해야 해서 방문한 초원 사진관은 그녀에게 휴식처처럼 보인다.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선풍기 바람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고 쉴 수 있다.


정원과 다림의 만남은 계속된다. 정원의 스쿠터를 타기도 하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남긴다. 정원을 만나기 전에 스쿠터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확인하고 난생처음으로 립스틱을 사서 화장도 해본다. 사진관뿐만이 아니라 함께 놀이공원을 가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이 시작될 것만 같을 때, 정원의 병은 더 악화되어 그는 급하게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정원을 만나기 위해 다림은 매일 사진관을 찾아 오지만 입원해 있는 정원으로 인해 사진관은 열리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적어 내린 다림은 사진관 문틈 사이에 꽂아 둔다. 그러나 열리지 않는 사진관에서 그 편지를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자신의 마음을 회수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잘되지 않아 편지는 사진관 안, 바닥으로 떨어진다.


시간이 흐르고, 퇴원한 정원은 오랜만에 사진관 문을 연다. 그리고 쌓여있는 편지들 속에서 다림의 편지를 발견하고 읽게 된다. 그는 다림을 찾아가고, 편지도 적지만 직접 마주하지도 않고 편지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죽음 앞에서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정원의 일상과 다림과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가도 영화는 계속해서 죽음을 상기시킨다.

 

병원에 있는 정원의 모습, 방안에서 우는 정원의 모습, 살아있는 생선을 칼로 죽이는 모습 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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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농담처럼 녀석에게 말해 버렸다

 

이렇게 술에 취해 녀석에게 응석 부리며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내게 얼마나 남아 있을지



정원이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친구인 철구 앞에서이다. 술에 취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내뱉는다. 정원은 술김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 본심을 보인다.


그 후로, 철구는 친구들을 불러 오랜만에 다 함께 놀기도 하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게 정원은 살아있는 동안에 추억을 남기고 사진을 남긴다.


죽음을 보여주는 것은 정원을 통해서만은 아니다. 가족사진을 찍으러 초원사진관에 온 할머니는 아들의 권유로 급하게 독사진을 찍게 된다. 카메라 앞에 홀로 앉은 할머니. 가족 사진을 찍을 때와는 다르게 할머니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독사진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영정사진이라는 것을 할머니도 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영정 사진은 가장 예쁜 순간에 촬영하고 싶다고. 오래오래 기억되어 사람들에게 보일 사진이니깐.


할머니는 그 날 저녁 다시 사진관에 방문한다. 아까와는 다른 분홍색 한복을 입고 안경도 벗었다.

 

환하게 웃으며 찍히는 사진.

 

시간이 흐르고 겨울, 정원이 죽고 다시 열린 초원 사진관의 주인은 정원의 아버지가 되었다. 사진관에는 활짝 웃는 다림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관 앞에선 다림은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는다.

 

그리고 깔리는 정원의 독백.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과거가 되었기에 우리는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정원과 다림의 사랑은 시작되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다.


슬픈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계속해서 보여주지만, 이 사랑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사실 '죽음을 앞둔 남자주인공'이라는 설정을 앞에서 보여주어서 이는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설정을 반전이라는 요소로 활용하지 않았기에 영화는 더 담백하게 오래오래 나의 기억에 남는다.


시작된 8월, 이 영화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김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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