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3년 하반기를 준비하는 마음 [도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읽고
글 입력 2023.08.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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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멀리스트의 올해 목표


  

물건으로 잔뜩 둘러싸인 방 안에 사는 사람의 마음 한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정리하겠다는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태생이 맥시멀리스트인 필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너저분한 일상이 디폴트가 되어 있지 않은가!

 

한평생 무얼 사는 것보다도 버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 삶에서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버리고 나서 생긴 빈자리에 비로소 새 물건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림의 미학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물건을 사 모았다. 있던 물건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각자마다 사연이 있었으므로, 쉽게 내칠 수가 없었다. 덕분에 방안은 언제나 포화상태였다. 가끔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면, 방안을 엎었다가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끝내 정리에서 손을 놓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는 쪽이었다.

 

꾸준하게 사 모으다 보니,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놓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속상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다짐했다. 이번엔 진짜로 정리를 하겠다고.

 

한 해의 키워드를 정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4년째다. 워낙에 목적이 없이 사는 편이라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큰 키워드를 삶 중심에 두고서 이런저런 일들을 진행하고, 그간에 한 일들을 하나로 다시 엮어내는 일.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정했던 키워드는 "정리"였다. 해묵은 서랍 속에 있던 것을 해결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리하지 못하면 정말 실망적일 거야'하고 생각하면서 키워드를 설정했다.

 

올해 초, 망원역 근처에 있는 한 서점에 갔다. 딱히 살 책을 골라놓고 간 것은 아니었고, 그저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나 구경해 볼 겸 들른 것이다. 서점에 가면 언제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에 잔뜩 둘러싸인 채로 여기저기 눈길을 주기 바쁘다. '세상에 이렇게나 재밌는 책들이 많은데, 이걸 언제 다 읽지?'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는 한다.

 

그러던 중, 계속 눈에 밟히는 책을 발견했다. 사지 않으면 자꾸만 생각나서, 어차피 늦게라도 구입할 것만 같은 책. 바로 서윤후 작가의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눈길이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올해의 키워드랑 맞닿아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사지 않을 수 없지! 그 길로 책을 집어 들었고, 귀갓길에 곧장 책을 펼쳤다.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서윤후 지음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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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에세이 형식이다. 작가는 20대를 꼬박 자신을 채우는 데에 쓰고, 30대가 되고 나서는 그것들을 떠나보내는 작업 이후 남은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지금 그만두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 보니, 사실 예전에 사랑하던 것들의 목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고독의 몸부림부터 깨지지 않기로 한 약속까지, 다양한 글감을 가지고 써 내려간 문장에서 우리는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그만의 시적 언어들을 만날 수 있다. 그가 들려주는 '섬세한 맥시멀리스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서윤후 작가는 1990년생으로 시인으로 활동 중인 문학인이다. 스무 살인 2009년 월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총 4권의 시집과 산문집들을 발간했다. 이따금 자신의 블로그와 공책에 일기를 쓰며 흘러가는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

 

무릇 책이란 작가에게서 나와의 유사성을 찾는 순간, 한층 더 몰입하여 읽게 된다. 맥시멀리스트라는 것과 올해 나의 과업인 '정리'를 먼저 한 사람이라는 점, 이 밖에도 많은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다.

 

아래는 사자마자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했던 대목들이다.

 

 

내가 모자란다고 느끼는 날이면 어김없이 물건을 샀다.

 

<헛헛한 마음을 위한 소비>, p.30,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어떤 결핍을 채울 때, 우리는 때때로 그 결핍과는 무관한 것들로 빈자리를 메우곤 한다. 그것이 임시방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헛헛한 마음을 위한 소비는 더 큰 공허함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자람보다는 차고 넘치는 게 좋은 것이라고 믿은 지난날의 과오. 작가가 물건을 사들인 것처럼 나도 그랬고, 사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언제나 치우는 것보다 더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치우는 건 마이너스이고, 사들이는 것은 플러스니까. 좋은 거라고 위안했다. 생각해 보니, 글 쓸 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덜어내는 편이 정갈하면서도 훨씬 완성도 높은 글임에도 쓸데없는 내용까지, 쓸데없는 욕심에 살려두기 일쑤였다.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방을 청소하는 일은 늘 어려웠다. 자세히 보면 버릴 것 천지였음에도, 눈 가리고 아웅 했다. 사실 숙원사업은 손대기 어렵지 않은가. 솔직히 이게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물건들이 혼돈 속의 질서처럼, 제 자리에 잘 있다고 말했다. 그것들은 언제나 내 기억 속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지저분해질 뿐이지 결코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문제를 물리적으로 치환하여 해결 보겠다는 것 자체가 틀린 가설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라, 내 여분을 나의 모자람에 정확하게 두는 일이라는 것을.

 

<헛헛한 마음을 위한 소비>, p.33,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중요한 지점을 깨달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 그 모자람을 엉뚱한 것으로 대치하지 않고 꼿꼿한 태도로 자신을 인정한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작년에 내가 쓴 일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마음 속 헛헛함을 간식 같은 대체재로 채우지 말자는 말이 작가의 생각과 닮아 있다.

 

하지만 깨닫고 난 후에도, 그렇게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는 것, 그리고 채워질 때를 기다리는 것. 인생에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다. 그걸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가.


 

무언가를 방지하는 입장에 서서 오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삶의 방지턱 놓기>, p.61,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오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이미 경험한 뒤에 다짐하게 된 일들'일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언젠가부터 걱정이 너무 많아져서 매일 불안과 싸우게 된 시점부터, 오지도 않은 것들을 자주 떠올렸다.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진다는 영화 <올드보이>의 대사처럼, 상상력이 많은 것이 독이었을까 하며 걱정의 근원지를 찾으려 애를 썼다.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했던 20대의 일기와 다르게 30대의 일기는 무언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삶의 방지턱 놓기>, p.62,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자신의 구멍에 대한 관찰이었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다 보니, 아마도 30대의 일기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매일 새로운 것으로 더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아닌,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쓰는 방식으로 채우는 것이다.


 

사람을 가져본 적도 없으면서 잃었다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사랑이나 우정이 끝난 자리에서.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일>, p.139,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원래 인간은 갖지 못하는 것을 더 갈망한다고 했던가. 나 역시도 한때 작가처럼 생각했다. 사람은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침전되었다. 가까울수록 심연에 잠기는 정도가 심했다.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사용했다. 억지로 거리감을 두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서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차표의 행선지로 가는 기차가 먼저 온 것일 뿐이다.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일>, p.142,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사람에게서 영원함을 기대하지 않게 된 작가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줄 수 있는 온기를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머무른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는 문장을 뚫어지게 보다가 깨달았다.

 

모래사장에 쓴 글씨들이 파도에 쓸려나간다고 해서 그것들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모래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며, 새긴 이들의 가슴 한편에 사진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멀어지거나 기억의 흔적이 옅어지다고 해도, 영영 이별한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

 

좋은 책의 특징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톺아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읽는 동안에, 나의 역사를 돌아보며 올해 정리해야 할 어떤 것들을 선명히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러나 상반기가 끝나고 진정으로 하반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다시 읽으며 다짐을 곱씹으니, 이번 목표를 잘 이뤄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에 적당히 열중하며 달려온 것 같지만, 실상 해낸 것도 정리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보았더니, 지금부터 다시 가져야 할 마음이 무엇일지를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 그만두어야 할 것들로부터 얼른 벗어나 새로이 가져야할 목록을 쓰는 날이 오기를!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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