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성공을 거둔 심리학 아이디어들, 그 이면을 논하다
글 입력 2023.07.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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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에 넣지 못한 것을 탐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욕구는 과하면 독이 되지만, 건강한 방향이라면 내적인 성장을 돕는 연료가 된다.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겨냥하는 이른바 ‘자기계발’ 열풍 역시 그저 한철바람이 아니었다. 한국형 자기계발서의 교과서격인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의지론은 열기가 식었지만, 논조를 달리한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힐링 에세이도 그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난 지금껏 그런 종류의 자기계발 서적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이론서보다는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독서 취향도 한몫했지만, 글 몇 줄 읽는다고 인생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이 세상에 어려울 거 하나 없겠네 싶은 삐딱한 마음이 가장 컸다. 그래도 제목이 눈에 띄는 책이면 서점 매대나 도서관 책꽂이에서 집어들어 몇 페이지를 넘겨 보곤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거기서 거기인 비슷비슷한 어휘와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스쳐지나간 책들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그러던 중 2020년 즈음에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한 구절이 하나 있다. ‘자존감은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작은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 이 문장을 통해 꽤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자존감 높이는 법’을 알아볼 게 아니라,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는 것. 또 나 스스로에게 이유 없는 사랑을 베푼다는 건 어찌 보면 비약이라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

 

그렇게 흔해빠진 자기계발서들을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로 멀리하던 중, 이번 문화초대로 ‘손쉬운 해결책(메멘토, 2023)’을 읽게 됐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제시 싱걸의 저서로, 3년 전 읽었던 그 책처럼 교과서적인 자기계발 심리학에서 느끼는 피로를 해소해 줄 듯 싶어서 마음이 이끌렸다. 책의 부제에서도 도발적으로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고 묻고 있었다. 나처럼 흔한 자기계발서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반길 만한 책 같았다. 인터넷을 봐도 서점에 가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온갖 솔루션이 넘쳐나는데, 왜 시대가 흐를수록 사람들은 병들어 가고 세상은 혼탁해져 갈까.

 

저자는 이 물음표를 무기 삼아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심리학 아이디어들을 공격한다. 무분별한 비난이 아니라 저널리즘다운 비판적인 시각을 펼쳐보이며 대중심리학의 허점을 예리하게 찌른다. 자존감, 그릿, 넛지, 긍정심리학, 무의식의 힘, 파워 포즈 등은 심리학계를 넘어서서 교육계, 나아가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정설로 굳어진 사상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참’으로 둔갑했던 것이라면 어떨까.

 

이 책은 미국 사회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낯선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몰입이 어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기금을 따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구의 결론을 왜곡하는 학자들, 명문대 연구소에서 고안한 이론이라면 의심 없이 도입하는 행정가들, 그리고 여론과 유행에 너무도 쉽게 휩쓸리는 대중들. 우리나라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일부의 데이터가 의도적으로 조작됐고, 재현 성공률이 낮았고, 심지어는 연구자가 주장을 번복했던 다양한 이론들을 살핀다. 허술한 이론들이 특정한 이해관계에 부합되거나 대중들의 선택을 받아 유행의 급물살을 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편의’와 ‘명목’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첫 번째, 학술적인 배경지식 없이도 쉽게 이해될 것. 두 번째, 보여주기식의 해결책을 제시할 때 용이할 것.

 

가장 인상적이었던 ‘3. 전장으로 간 긍정심리학’ 챕터를 소개해 보려 한다. 펜실베이니아대의 연구자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며, 그로써 정신건강이나 수명 등에서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서는 인간 행복의 편차에서 40%는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로 설명된다고 본다. 즉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인 행위로 행복해질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주장의 증거가 아주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긍정심리학은 학계 안팎에서 크고 작은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긍정심리학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수백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펜실베이니아대학 긍정심리학 센터까지 유치한다.

 

문제는 이들이 2008년 미 육군과 거액의 수의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었다. 군인들의 PTSD와 자살 위기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선금만 무려 3100만 달러였고, 10년간 미 육군은 무려 5억 달러를 지불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포괄적 군인 건강(포괄적 군인 건강Comprehensive Soldier Fitness, CSF) 프로그램’이다. 이는 셀리그먼의 ‘펜실베이니아대 회복탄력성 프로그램(Penn Resilience Program, PRP)’의 방법론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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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P의 궁극적인 목표는 청소년들의 우울증과 불안을 예방할 수 있는 인지 습관과 기술을 심어주는 것으로,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들에게 최악의 설명에 최선의 설명을 의식적으로 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정신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돕는다. 그러나 연구의 메타 분석 결과, 이 프로그램은 긍정심리학 센터의 히트작이었음에도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우울증이 감소세를 보이긴 했지만 유의미한 규모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아닌 청소년을 위해 고안된, 심지어는 효능도 불분명했던 PRP의 논리가 미 육군의 PTSD라는 심각한 문제 앞에서는 과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답은 명백하다. 물론 육군은 CSF가 군인들의 회복탄력성을 도와 추후에 발생할 정신적 문제나 자살의 충동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저자는 PRP와 CSF의 연결고리 자체가 논리적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PRP는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고, PTSD는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을 예방하면 PTSD를 예방할 수 있는가? 미 육군은 CSF가 효과가 있다는 어떤 실질적인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이해하는 많은 이들은 PTSD를 사후에 치료하는 대신 예방할 수 있다는 전망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PTSD를 예방한다’라는 주장은 거부하기에는 너무 좋은 약속이었다. 약속이 지켜진다면, 막대한 인간의 고통이 미리 방지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포괄적 군인 건강CSF 프로그램은 한편으로 자기 조절과 자기 효능감을 중시하는 미 육군의 신념과 아주 잘 맞았는데, 이는 CSF가 미 육군에게 익숙한 언어로 군 고위 장성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p.150)

 

 
“실제로 PTSD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군대에 대한 신념 자체를 해체해야 할 때가 많다. 자신에겐 혼란스럽고 폭력적이고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실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p.159)
 

 

사실 PTSD의 본질은 전쟁의 경험 그 자체에 있다. PTSD의 발병을 부정하려면 군대의 존재이유인 전쟁 그 자체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을 무릅쓰고 전쟁의 자기파괴적인 특성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육군 내부적으로 군인들의 멘탈 케어를 돕는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모순에 직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장 시급한 솔루션 역시 그러한 자기모순에 정면으로 돌파함으로써 이미 PTSD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군인들의 회복을 돕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개인의 잔혹한 기억을 소환해내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쓰라린 상처 위로 새살이 돋아나기까지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조직의 입장에서는 그런 현실을 눈감아 버리는 것이 더 유혹적인 선택지다. 그 쪽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참전 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군대라는 조직, 나아가 전쟁이라는 사건의 본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번거롭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진실과 직면해야 하고, CSF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PTSD의 예방’에 비해서는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결국 군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고, 충분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다른 문제들보다도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는 이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수 있느냐의 문제보다도 선순위에 말이다.

 

*

 

많은 것들의 본질은 돈이나 행정, 정치의 문제와 결부될 때 쉽게 흐려진다. 이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허황된 심리학 아이디어들, 즉 '손쉬운 해결책'들의 심각성이 유독 무거운 이유는 뭘까. 그 편향된 연구 결과가 심리학의 본질을 흐리는 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말 그대로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 학문이지만, 그 시야각이 뒤틀리는 순간 인간 심리뿐만 아니라 사회의 거시적 문제까지도 왜곡시키기 쉽다.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개개인의 문제로 떠넘길 수 있게 되고,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고찰하지 않게끔 한다. 그저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입에 잘 붙는하나의 심리학 키워드로 납작하고 손쉽게 설명할 뿐이다.

 

갖가지 심리학 아이디어들이 해결하려는 우리 삶의 문제들은 결코 단순하지 못하다. 명확한 해결책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선 진작에 해소됐을 문제들이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사회 현상이라면 더더욱, 그것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저자가 책에서 제안하는 다른 대안들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미 굳어진 정답을 의심할 수 있는 자세다.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옳다고 믿어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거침없이 파고들어가 비판의 논거를 캐내는 저자의 집념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우리 또한 문제의 핵심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 가지 솔루션만으로는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으며, 거리와 각도를 달리해 가며 문제의 원인을 통찰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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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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