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슬픔은 달래져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당신 [음악]

노래하는 시인, 심규선
글 입력 2023.07.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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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는 노래는 흔하다. 그 이유도 천차만별일 만큼 많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눈물 날 것 같은 목소리를 들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수백 명의 아티스트가 있을 테지만 수천, 수만 가지의 취향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할 확률만큼 희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러한 아티스트를 찾은 것에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단순히 취향을 넘어서 이제는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아티스트, 노래하는 시인 ‘심규선’을 소개한다.


수년 전, 내가 아직은 교복이라는 것을 입을 때. 심규선의 첫인상이 그리 또렷하지만도 않다. 어떤 계기로 그의 노래를 듣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 됐든 그를 알게 된 계기는 ‘달과 6펜스’였다. 그 노래가 좋을 뿐이었다. 가끔 찾아 들었어도 신보에는 관심 두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는가 싶었다.


또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가 ‘파탈리테’를 들려주었다. 심규선의 노래를 다시 만났다. 해당 앨범 수록곡을 모두 찾아들었다. [환상소곡집 op.1], 여섯 곡이 주는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전곡을 반복 재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로 ‘환상소곡집 op.2’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의 새로운 앨범이 나오는 대로 들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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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겨울,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한다고 생각한 극적인 효과를 경험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 끝났고 일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 끝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뻗어 누운 채 들었던 첫 곡은 ‘소로 小路’였다. 당시 기준 발매된 지 2개월은 지난 노래였다. [소로 小路] 앨범 속 동명의 수록곡 ‘소로 小路’. 힘들었던 기간이었지만 성공적이었고 모든 일이 끝나 행복했다. 하지만 눈물이 흘렀다. 기쁜데 눈물이 나는 순간이었다.

 

‘남들처럼 빠르게 달리진 못 해도 / 터벅터벅 걸어온 날들이 쌓였소’

 

절대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스트레스가 이어지던 나날이 흐르며 종국에는 힘에 부쳐 완성한 일들이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 기쁘지만 슬펐다. 모순된 감정, 양가적 감정이었다. 날아갈 듯 기뻤지만 슬픈 눈물이 흘렀다. 평생 경험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극적인 효과가 펼쳐졌다. 심장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막에 점차 균열이 일었다. 힘들 때마다 한 겹씩 쳤던 얇은 막은 어느새 두꺼운 장벽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답답해졌고 무덤덤해졌다. 모든 일에 무뎌져야 버틸 수 있었다. 그 두꺼운 벽을 고작 15초쯤 되는 ‘소로’의 첫 소절이 허물기 시작했다.

 

‘지름길과 복잡한 대로를 피해서 / 누군가가 밟아서 난 굽고 좁은 길’

‘나도 뒤에 올 외로운 그 누구 위해서 / 한 발 한 발 더 보태어 다지듯 걸었소’

 

단순한 허탈감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둑을 부수고 흘러나온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좋은 성적, 훌륭한 활동, 부지런한 삶. 보편적인 성공을 향해 달렸다. 많은 이들이 달리는 복잡한 대로도, 빠른 성공을 위한 지름길도 열심히 찾으며 달렸다.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주위에 남은 진정한 행복은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하물며 꿈조차도. 어떠한 의미도, 행복도 남지 못했다. 그렇게 메말라갔고 외로워졌다.


짐은 나누면 반이 되지 않는다. 짐은 나누면 배가 될 뿐이었다. 딱히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나 자신을 망치는 행동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갔다. 쉽게 웃고 쉽게 울던 명랑한 학생은 사라지고 모든 일에 무뎌졌다. 그리고 그게 외로움이라는 것을 인제야 깨닫게 되었다. 꿈을 꾸고 이상을 좇는다는 것은 외로움과 직면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외롭게 꿈을 향해 가는 길 앞에 사실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안 듯한 느낌. 안도했고 마침내 잠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평소 절절하다고만 생각한 심규선의 목소리가 그 누구의 것보다 단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의 명예는 독주라오 /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고’

‘휘청댈 뿐 고요히 숨어 솟는 샘물 찾아 / 조금은 목마른 듯이 그렇게 가시게’

 

성공을 향한 욕구, 욕망, 조급함. 어쩌면 그게 독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앞서 따뜻한 위로를 받은 뒤 따끔하게 혼이 났다.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는 독주는 버려야 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했다. 그를 버림으로써 잠시 중심을 잃은 듯해도 나아갈 수 있다. 그저 휘청댈 뿐이었다. 설령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진정한 목표를 향해서, 누군가와의 타협도 없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 길에서 조금 목이 말라도 나의 샘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여 외로워 마시오 / 모든 길들은 결국 다 이어져 있소’

‘막다른 길 끊어진 길도 밟아가다 보면 / 먼 훗날 뒤돌아볼 때 / 그대의 소로가 될 테니’


4분이 되는 시간 동안 차차 허물어진 마음에 다시금 막이 하나 생긴다. 이제는 딱딱하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유연한 막 하나가. 결국에는 나의 모든 행보가 틀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믿음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힘겹지만 그동안 밟아온 길과 앞으로 향할 길은 결국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나의 작은 길이지만 온전한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나조차도 자신에게 주지 못하는 강한 믿음을 심규선이 건네고 있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미래를 타인이 믿어주고 있다.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희망을 만들어냈고 마음을 보호하며 천천히 나아갈 용기를 선물했다. 마음의 장벽이 다시 단단해져 아파지려거든 다시금 찾아오면 된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음악은 항상 제자리에 있을 테니까.

 

*

 

이것이 지난날 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 이유였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심규선은 애절함을 전하는 가수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극적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단단한 목소리를 가졌다. 듣는 이의 벽을 허물 정도의 단단함. 기꺼이 부서져 내리고 싶은 위로를 담은 아티스트였다. 그때부터였다. 심규선은 내게 ‘절절하게 노래하는 가수’이자 ‘눈물 날 것 같은 위로를 전하는 가수’가 되었다.


그의 목소리가 이제는 범상치 않게 들린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큰 감흥 없이 지나온 곡들마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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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질 때면 ‘생존약속 生存約束’을 듣는다. 이는 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곡이다. 가사에 특정한 주어는 없다. 특별한 상황도 없다.


‘그건 내가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 어쩌면 유일한 것이었어’

 

언뜻 본인의 이야기를 풀 듯 가사를 이어간다.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아팠던 것은 / 그만큼 살고 싶다는 증거’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건 그만큼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심과 궤를 같이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 끝에는 항상 살고 싶다는 마음에 다다르니.


심규선이 본인의 이야기를 풀고 나는 그것에 공감하며 듣는다. 하지만 ‘생존약속 生存約束’은 단순히 공감을 바라는 노래가 아니었다. 그는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종국에 말을 걸어온다.

 

‘하나만 약속해 줄래 내게 /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아플 때마다 / 싸워보겠다고’


노래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듯 감상하던 것이 삽시간에 빨려 들어간다. 모든 걸 놓을 듯 텅 빈 눈은 어느새 그렁한 눈물로 가득 찬다. 죽을 만큼 힘들고 관두고 싶을 만큼 아플 때 의지할 버팀목이 생긴다. 그녀의 노래로 위로받고 그것이 삶의 기둥이 된다.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그의 진가다. 그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 힘을 다해 전한다. ‘아라리’와 ‘화조도’는 그 옛날 사랑하는 임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상황을 그리고, ‘음악가의 연인’은 나를 응원하는 사람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환상소곡집]을 통해 심규선이 그리는 그림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노래 한 곡이라기에는 긴 편인 6분. 그 시간 동안 나는 환상적인 체험을 한다. 6분의 연극의 주인공이 된 듯, 6분간 노래하는 화자의 삶을 사는 듯하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노래하는 심규선의 목소리에 빠져 겪어보지도 못한 절절한 사랑을 경험한다. 그 감정을 그려보며 특별한 하루를 살아간다.


“환상을 소재로 삼은 것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의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밤을 내일로 이어 붙여 준 것은 늘 현실보다 아름다운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모든 슬픔은 달래 져야만 하고, 우리는 다친 곳을 스스로 치료하지 못하기에 서로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 [환상소곡집 op.2] 앨범 소개 중 일부 발췌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그가 왜 환상을 노래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다짐이 섞인 노래이기에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예쁜 말보다는 솔직한 말이 마음에 맺힐 때가 있다. 예쁘기보다는 깔끔하고, 그보다는 더 솔직한 심규선의 언어가 나에게 아로새겨졌다. 대수롭지 않게 감상했던 시간이 아득하다. 그의 언어가 언제고 나를 울리고 부술지라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덕분에 나의 치열하고 답답한 밤은 안온한 내일로 이어 붙여진다. 그 덕에 알 수 있었던 많은 것을 소중히 간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현실은 매 순간 아름다울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스스로 꾸밀 수 있다. 심규선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은 어떠한가? 근래 내린 비 때문에 흙냄새가 난다. 습하고 찝찝한 이곳이 아닌 청량하고 산뜻한 곳에 다녀와야겠다. 오늘 들을 노래는 ‘수피 樹皮’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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