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를 N회차 관람하는 이유 [영화]

마음이 통하는 영화를 찾는 재미
글 입력 2023.07.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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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2회차 관람이라는 걸 했다.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찾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여러 번 감상하러 가는 N회차 관람 문화. 열풍이 인지 꽤 오래됐건만, 나는 얼마 전까지 그런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옛날에 극장에서 보고 좋았던 영화를 OTT 서비스에서 다시금 찾아본 적은 많아도, 개봉한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에 또 감상하러 가는 일은 없었다. 개봉 후 한두 달 새에 두 번 이상 보고 싶어진다는 건 얼마나 그 영화가 감상자의 마음을 꿰뚫기에 가능한 걸까 싶었는데.


알음알음 알려지다가 대박이 난 그 영화, <엘리멘탈>이 내게는 첫 2회차 관람 영화가 되었다.

 

처음 감상했을 때는 분명, 말로만 “우와, 또 보고 싶다.”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는데도 머릿속에서 <엘리멘탈>의 주인공 엠버와 웨이드가 이상하게 떠나가질 않았다. 밥을 먹다가도, 씻다가도 그들의 꽁냥거림이, 분노와 슬픔이 자꾸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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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래픽과 적당한 교훈을 얻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영화가, 내게 부러움을 안겨줘서였을까? <엘리멘탈>을 처음 보고 느낀 나의 순수한 감상은, “예쁘고 아름다워 부럽다.”였다.


부모님에 대한 무거운 사랑에 짓눌리던 엠버는 따뜻하고 유쾌하게 삶을 살아가는 웨이드의 만나 점차 변한다. 화를 내고, 이유 없이 역정을 내도 차분히 들어주고 무조건 응원해 주는 대상을 만나 불같은 엠버는 자신의 화력을, 원하는 곳에 쓸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를 딸에게 물려주고 은퇴하는 것이 꿈이라고 누누이 말했던 엠버의 아빠 버니는 “가게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는 딸의 한마디에 쉽게 물러선다. 무슨 소리냐고, 나의 꿈은 가게를 너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 자체가 꿈이었다고.


분명 많은 장면마다 가슴 깊이 울컥하며 감상했지만, 씁쓸한 기분도 마음 한구석에 피어올랐다. 세상과 사람에게 다정할 줄 아는 친구를 만나는 것. 나의 바람을 그대로 이해해 주는 부모님. 너무나 동화 속 한 장면같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엠버와 웨이드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관계라기보다는, 웨이드가 엠버를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아 조금 치우친 형태의 관계처럼 느껴졌었다. 그래도 웨이드에게는 강렬한 색과 특별한 존재인 엠버를 만난 것 자체가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겠구나. 하고 첫 감상의 여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될 뻔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일렁이는 불길과 물살에 못 이겨 두 번째 관람을 마친 나는,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각종 SNS에서 남자 주인공 ‘웨이드’의 다정함에 주목하며 일종의 신격화(?) 현상이 반농담 반진담으로 이뤄질 때, 나 역시 그 물결에 같이 휩쓸렸다. 사랑을 하고, 애정을 나누기에 너무나 이상적인 캐릭터라는 생각. 엘리멘탈 시티에서 기득권층으로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편협하지 않은 시야와 포용력이 높은 마음. 일종의 사기캐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로 감상한 <엘리멘탈>의 웨이드는 마냥 반짝거리고 멋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흘리는 모든 눈물과 울상은 ‘다정함’에서만 비롯된 감정이 아니었다.


영화 초반에 웨이드는 다정한 엠버네 가족사진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다. ‘아빠’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그는 얼마 전에 아빠를 일찍 여의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시청에서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웨이드는 전 직장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워한다.


인상을 찌푸리는 엠버 앞에서 늘 환하게 웃던 웨이드는, 원래 해맑은 사람이 아니라 ‘엠버’ 덕에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웨이드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구김살 없고 바른 청년인 웨이드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투영한 결과였다.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그 물덩어리는 실은 몹시 유약하고, 겁이 많으며, 자신의 감정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존재였다.

 

반대로 엠버는 화를 참지 못해 매번 일을 그르치다 타인의 조력으로 성장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낯선 도시에서 차별과 소외를 어린 시절부터 겪어왔음에도, 그녀는 위축되지 않고 버텨내 엄마 아빠가 기댈 수 있는 강인함을 가졌다.


무례한 손님들을 대응하다 분노를 참지 못했을 때도, 그녀의 화는 손님을 향해 있지 않았다. 이해하고 잘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있었다.


물 원소가 가득한 웨이드네 집안 식사 자리에서도, 자신을 낯설게 보는 어린 타 원소들 앞에서도 그녀는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담담하게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마음껏 선보이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다.


엠버는 강하게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뜨겁고 눈부신 성정을 가진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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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엠버와 웨이드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음을 찬찬히 이해하게 되었다. 물과 불이라는 정반대의 원소가 서로 다른 특성에 끌렸다는 것으로 그들의 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


꼭 물과 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너와 내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될 수 있다. 물이나 불이나 사람이나, 숨기고픈 모난 면도 있고, 누군가를 반하게 할 좋은 면도 있음을.


서로의 그 다양한 모습이 하나가 될 때 걱정과 다르게 그들만이 공유하는 같은 성질로 변하는 놀라운 마법이 일어난다는 걸, 아주 아름답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픽사 표 영상으로 표현한 영화였다.


*


요즘 영화들은 스크린에 걸려있는 시간이 몹시 짧다. 인기가 없으면 한 달 미만, 길어야 두 달. 그 새 같은 영화를 또 감상한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복기하는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내용을 잊어버려서 다시 보는 게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극장을 다시 찾아가는 걸까 고민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알았다. 두 번째로 볼 때는,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볼 때는 기승전결을 따라가며 내용에 몰입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영화 안에서 ‘나’의 감상이 깊게, 깊게 짙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걸 알았다.


다음에 누군가 영화를 n회차 관람했다고 하면 눈을 반짝이며 물어볼 것 같다.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인지, 나도 볼만 한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그 사람의 마음을 깊이 울렸는지 알고 싶기에.

 

 

 

이채원_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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