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로 또 같이'의 경험 -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5

글 입력 2023.07.19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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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장사진.jpg


 

혼자 문화생활을 즐기는 게 익숙했다.

 

전시나 공연에도 혼자,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카페나 팝업스토어에 갈 때에도 그 흔한 ‘덕질 메이트’ 없이 ‘혼자’를 전제로 한 계획을 우선으로 세웠다. 혼자여서 편했고 또 충분히 즐거웠지만, 함께 와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고 시끄럽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무리 또는 둘셋 사이에서 종종 혼자만의 적막을 느끼고는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변화를 주고 싶은 충동이 드는 요즘의 마음을 빌려, ‘그림 그리는 걸 꽤 좋아했던 것 같지’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동행을 제안해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V.15에 함께 다녀왔다.

 

혼자가 아니었던 덕분에, 넓은 코엑스 전시장을 빼곡히 가득 채운 약 1000여 개의 부스, 들어찬 인파 사이에 구겨지고 치이며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부스를 구경해야했던 혼잡함 가운데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좋아하는 힘으로 똘똘 뭉친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와 팬들과 그들의 열기 속에 제3자 같았던 나도 함께 녹아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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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의 범주는 넓겠지만, 캐릭터 일러스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페어에서도 부스 뒤 현수막에 크게 걸린 캐릭터들이 시선을 끄는 데에나 부스를 구분하는 확실한 안내판 역할을 하는 데나 그 인기값을 톡톡히 했다.

 

요즘 대세의 캐릭터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인, 동글동글하고 단추구멍 같이 작고 귀여운 이목구비에 어딘가 허술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동물 캐릭터들이 가장 많았다. 대강 보면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부스를 돌며 수많은 동물 캐릭터들이 제각각의 사연과 이야기를 갖고 있고 작가의 표현에 따라 눈의 모양이나 표정이 조금씩 다른 것뿐인데도 전혀 다른 인상의 강아지와 고양이와 토끼가 된다고 느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데, 그 사실을 캐릭터들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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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림에는 쉽게 눈길이 가지 않아 지나칠 뻔했지만, 친구의 눈에 들어 멈춰서 알게 된 훌륭한 작가님 한 분도 소개한다. 전시장의 가장 끝에서 ‘내티어’ 작가님의 부스를 만나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팔로우한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계정 소개란에는 ‘삐뚤빼뚤 마음대로 그리는 수수께끼 세상으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매대 위에 놓인 엽서와 스티커, 책을 훑고, 친구가 손에 든 엽서 한 장을 들여다보니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유행하는 ‘하이틴’과 ‘레트로’, 그로부터 오는 ‘힙함’의 요소가 곳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것이 트렌드여서라기보다 그리는 사람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 느껴지는 개성 있는 그림이었다.

 

특히 그림들의 어딘가 덜 자란 티가 나는 사람들이 마음에 닿았다.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딘가 뚱해보이고 불만스러워보이면서도 생각과 감정이 알쏭달쏭한 표정이 이 세계를 내게 힘 있게 밀고 들어왔다.

 

내가 고른 엽서에는 셔츠를 차려입은 회사원 추정의 인물과 기린이 함께 그려져있다. 사무실 속의 반듯한 각과 선, 무채색의 사물들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식물들은 제멋대로 둥글게 움직이고 자라난다. 기린은 풀줄기를 씹으며 전화를 하고 또는 받고 있고, 인물은 그게 신경이 쓰이는 듯 눈동자를 먼 데 두고 있다.

 

이곳이 차라리 정글이었으면 좋겠다, 거나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이라도 이 업무 전화를 받아줬으면, 하는 철이 덜 든 회사원의 상상일 수도 있겠고, 또 현실일 수도 있다. 어리숙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자꾸 마음이 가는 건 왜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무튼 이야기를 붙이고 해석하고 싶게 만드는 이 그림들과 내가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쭉 이어져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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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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