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음료수 '갈아만든 배'를 마시다가 캔의 디자인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음료수의 캔을 자세히 본적이 없었으나 이번에 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이길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상당히 촌스러운 디자인이지만 정겨운 느낌의 디자인이다. 싱싱한 배가 생동감있게 놓여진 배경. 그 위에 이목을 끄는 빨간색 뾰족한 말풍선 안에 유쾌한 글씨체로 '갈아만든 배'가 쓰여있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음료수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마침내 무엇가 비슷한지 생각해냈다. 유명한 인터넷 짤 <마참내>, <즐겁다> 짤과 유사하다. 인터넷 상에서 특유의 기괴하면서 유쾌한 느낌의 사진으로 잘 사용되고 있다. '갈아만든 배'와 비교하자면 빨간 말풍선에 글자를 집어넣어 강렬하고 주목을 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일지라도 사람들은 이런 디자인을 때때로 선호한다.

B급 감성
정석적인 디자인이 아님에도 주목받는다는 점은 B급 예술 혹은 작품에서 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다.
B급 감성은 꾸준한 수요가 있는 분야이다. 디자인이나 책, 영화 등에서 사용되며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아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B급의 근원은 완벽한 성취를 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예산이나 부족한 시간에 의해 규모나 퀄리티가 떨어짐에 있다. 그러니 B급 자체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다.
B급 감성을 좋아한다 해서 이를 쉽게 따라하긴 어렵다. 자칫하다가 C급이 되는 수 있다. 일례로 크게 망한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디워, 클레멘타인 등 영화가 전달하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혹은 B급으로 만드려는 의도가 심하게 드러난다면 대중을 농락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B급 감성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수작을 만드려는 높은 목표와 다르게 최종 완성작이 대중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C급에 머물게 된다.
전형적인 양식을 잘 지어진 건물에 비유하자면, B급 감성까지는 피사의 사탑으로 볼 수 있다. 일정한 기울기로 기울어져 일관성 있는 하자를 보인다. 이러한 패턴으로 전형적인 틀을 부수면서도 안정감을 준다. 반면 C급 감성에 이르면 곧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작위적으로 망가진 기둥이 건물을 받치는 느낌이다. 완벽함은 물론이고, 안정감이나 새로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하다면 불안감이나 불쾌함까지 느끼게 만든다.
그만큼 B급 감성을 살리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공식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면서도 완성도가 느껴져야 한다. 갈아먹는 배와 유사한 디자인의 <마참내> 또한 특유의 B급 느낌이 물씬 풍긴다. 과거 문구점에서나 볼 듯한 허접한 디자인에 미묘하게 어색한 감탄사까지 한방향으로 기울어진 느낌을 준다. 이런 특별함에 사람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갈아만든 배' 나 <마참내> 등과 같은 느낌이 과연 B급인가? 그다지 치밀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B급 말고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겠다.
과거의 향기
다시 갈아먹는 배로 돌아가보자면, B급 감성이면서도 오래된 디자인으로 보인다. 아마 이런 디자인이 한창 유행하던 과거가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디자인이나 형식이 지금와서 촌스러워 보인다는 평이 많다. 시골집에 가면 보인다는 체리몰딩, 옥색 변기, 프로게이머들이 입던 세기말 사이버펑크스러운 복장, 아이돌 헤어스타일 등 셀수 없이 많다.
신기하게도 이 디자인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지금와서 위의 디자인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큰 반발을 사게 되리라 예상된다. 지금의 트렌드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의 유행이었던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았던 과거에는 딱히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자주 노출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고풍스럽고 과도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기 때문임이 아닐까. 그러나 이 디자인이 별로였기에 우리나라가 디자인 문화 수준이 열등했다 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저 과거의 유행으로 기억할 뿐이다.
결국 갈아먹는 배에서 느껴지는 디자인에서 우리는 과거의 향기를 맡는다. 신제품에 들어가는 디자인으로는 적합하지 않아보여도, 과거에서 이어져 온 제품의 정통성을 느끼는데 적절하다. 노스텔지어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향기는 그 세대를 직접 살아오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아주 먼 과거가 아니더라도 1900년대 초 서구의 감성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한다. 이 외에도 특정 시대의 특정 나라의 문화가 주는 느낌은 다양한 취향을 낳게 된다.

두 가지를 모두 잡으며 새로운 감성을 얻다
앞서 잠깐 언급한 문구점과 같은 과거의 요소가 우리로 하여금 <마참내>를 친숙하고 우습게 바라보게 한다. 문구점에서 볼 수 있었던 값싼 제품의 디자인은 크게 공들이지 않는다. 몇 가지 정보만을 담은 후 설명이나 정보를 잘 보이게 써놓아야 한다. 그런 느낌이 전문적인 디자인보다 '야매'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여기에 우리는 끌리게 된다.
이와 동시에 B급 감성도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혼란스럽다면 이것이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적은 요소만으로도 이목을 끄는 디자인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다. 정석과 방향은 다르지만 이런 점을 만족했기에 B급 디자인의 완성도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결국 촌스러운 디자인으로 보일지라도, 눈길을 사로잡은 촌스러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소가 산만하게 나열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디자인을 생각해보자면 위 사례들이 얼마나 훌륭한 예시가 되어주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사소한 디테일은 일상생활 속에 자주 드러난다. 각자의 집 인테리어를 꾸밀 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데 이목을 끌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다. 주로 디자인으로 설명했지만, 음악에서도 적용할 수 있고, 말투나 사고 방식 등 촌스러움이 적용될 부분이 많다.
주목을 끌기 위해 주변과 차별화를 해야한다면, 약간의 촌스러움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부터 흥미를 끌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