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랑은 천국이 아니다

여름에 왜곡된 것들
글 입력 2023.07.17 14: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230716_230908363_01.jpg
어느 카페에 누가 옮겨적은 허연 시인의 시

 

 

나는 내 사랑은 천국이 아니라던 어느 시인*의 말을 늘 마음에 품고 산다. 아마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시인의 말을 품고 산다니 낭만적인가...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랑이 너무 검고 깊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이 있는데 그건 전혀 아름답지도 애틋하지도 않아... 해에 걸쳐 여러 형태의 사랑을 해놓고도 늘 새로운 것들이 닥치면 어쩜 좋냐며 울상인 이 기특한 모습은 달갑지도 않다. 나는 그런고로 사랑을 하기 싫다는 말에는 한 번도 거짓인 적이 없었다.


*허연 시인


이맘때가 되면 내 여름에 짙은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기억난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 애매한 감정이든 대부분이 왜곡된 기억일 테지만 기대어 살기엔 아주 좋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아낌없이 감정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던 나를 다시 기다리면서.


언니한테는 몇 개의 표정이 있어. 아주 특징적이야.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표정도 있는데, 난 그건 생각 안 할래. 무섭단 말이야.


어색한 단어 조합으로도 제 의견은 기가 막히게 피력할 줄 아는 미카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스러워 우리 미카. 미카가 늘 내 옆에 있었음 좋겠어. 


미카 나 너 정말 정말 사랑해. 알지?

응. 


미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만 문장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난, 널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 가끔은 내 지갑이랑 노트북을 통째로 맡기고 놀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노트북을 맡긴다는 건 널 정말 많이 믿는다는 이야기야. 알겠니 내 깊은 마음을?? 


이 정도로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때에도 나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 라는 말로 와락 껴안고 그걸로 끝. 한국어론 마음을 숨기고 돌리고 어중간하게나마 표현하게 되는 그런 마음을 외국어로는 벼락같이 그렇게. 사랑하는 나의 미카.

 

 

KakaoTalk_20230716_230908363_02.jpg

 

 

더워서 붉어진 건지 소리를 지르느라 붉어진 건지 모를 얼굴이 빗속에서 식어간다. 모모의 얼굴은 늘 그렇게 기억난다. 싸우고 화내고 우느라 온통 불그죽죽해진 얼굴이, 나를 가장 잘 아는 얼굴이 정확히 내가 상처가 될 말을 골라서 쏟아내기 시작한 시점에서 나는 사랑이 천국이 아님을 몹시 잘 알게 됐다. 아, 타인은 지옥이다. 정말로. 


나를 제일 잘 아는 타인이 벼른 말은 그 무엇보다 아팠다. 나는 빗속에서 그 말에 찔린 이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고 모모는 그런 나를 뒤로하고 걸어갔다. 나쁜 년...나는 이름도 모르는 동네에 버려져서 울었고, 영화처럼 모모가 다시 돌아오거나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주며 우는 이유를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묵묵하게 집으로 돌아갔고 그게 끝이었다. 아주 황당하고 아픈 이별. 그해는 장마가 길어서 비가 오는 내내 찔린 부위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그리고 너. 너의 이야기를 끝내 하게 된다.

 

우리는 같이 있던 대부분의 날에 취해 있었다. 술이든 더운 날씨든...뭐든...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앞세워서 사랑을 말하는 방식은 정말이지 유치하고도 직관적이다. 나는 원래 이러지 않아. 내가 너에게 특별하게 구는 이유는 내가 너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가 특별한 사이임을 나와 너에게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 같은 그런 유치한 행위. 나는 내가 말하는 '나 원래 이러지 않는데' 라는 말에 종종 진저리를 치면서도 끊임없이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우리의 마지막 날 나는 자꾸 잠이 들 것 같아서 너를 흔들어 깨우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물었다. 잠을 참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답을 해주는 너의 품을 파고 들어 일정하게 떨어지는 네 숨소리를 베고 잠들었다. 7월의 처음이나 7월의 마지막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떠한 부분도 특별한 날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 날마다 널 돌이키지 않아도 되니까...아니야 생각해보니까 이쪽이 더 나쁜 상황인 것 같기도 하다. 

 

7월 곳곳에 숨어버린 초대하지 않은 여름 손님아...


사람 하나로 다른 모든 게 싫어지는 감각이란 언제 겪어도 익숙하지 않다. 고맙게도 나는 이번에 다시 또 배우게 된 거야... 너랑 끝이 난 다음엔 다시는 오사카를 가지 않을 테니까. 지도에서 이름을 지우는 마음은 어떤 깊이일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내내 지도에 오사카라는 이름이 살아있기를. 그 마음이 우스워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KakaoTalk_20230601_234945647.jpg

 

 

[조수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