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추상적인 숫자는 각 개인의 얼굴이기에 -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도서]

글 입력 2023.07.1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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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은 다양하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견문을 쌓으려고 하는 이, 휴양지에서 마음껏 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 혹은 여러 유물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배움을 쌓으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이때 이 여행의 공통점은 ‘즐거움’이다.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며 재미를 얻는 것은 대다수 사람이 여행을 원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만약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타인의 고통과 연관이 있다면, 그 여행은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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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은 저자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속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 현장을 찾아보고, 그 사건의 발생원인과 더불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여행의 주된 목적은 추상적이기만 했던 숫자와 이름들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사건을 책이나 교과서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은 있으나 그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사망자 수는 잘 와닿지 않는다. 이미 먼 역사 속 사건이기도 할뿐더러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에서 언급된 여러 제노사이드 현장은 대부분이 몰랐던 사건도 존재한다. 너무나 유명해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관련된 독일 나치 학살은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아르메니아 학살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제주 4.3 사건 역시 여러 역사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사건은 아니기에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한 이름만 알 뿐 정확한 원인과 전개 과정을 알기는 어렵다.

이렇게 우리가 잘 모르는 사건일수록 사망자 수와 희생자 수는 그저 숫자로만 기억된다. 아무리 많은 사망자 수가 적혀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아보고 제노사이드 현장을 방문해서 그 당시의 현장을 직접 보면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깊이 있게 아로새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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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평가이자 <타인의 고통>을 집필한 저자 수전 손택은 ‘설사 그 상황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한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역설한다. 또한 이러한 장소를 경험한 후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내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라는 표현과 선 긋기는 최악의 반응들이다.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사건은 그 나라만의 특이점이나 징조가 있었던 것이 아닌, 환경이나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언제든 어느 곳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惡)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평범하다. 악행을 저지르며 제노사이드와 관련된 사람 역시 선천적으로 악하거나 특정인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희대의 만행을 저지른 사람은 대개 임무에 충실한 관료적 인물이었다. 이는 아우슈비츠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의 회고록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헤스의 고백록>에는 이러한 말이 쓰여있다.
 
“나는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3제국의 거대한 학살기계의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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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숙고해보아야 할 것은 ‘희생자 수와 관련한 추상적인 숫자를 어떻게 사람으로 기억할 것인가’이다.
 
먼저 우리는 배워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건을 책이나 시각적 자료를 통해 배우며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직접 겪지 않았기에 그 사건 속 희생자의 고통과 감정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학습을 통해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현재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듯싶다.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학살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운 후에 책으로 출간해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도록 한 것은, 작가 한 사람의 경험과 배움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에게 사건을 알림으로써 더욱 발전된 사회를 기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사건이 진부한 사건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닌 것은 수많은 매체나 책에서 다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저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의 일, 지루한 글씨들의 향연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일은 결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상황과 환경이 맞아떨어지면 언제든지 우리 곁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인지하고 관심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을 읽은 이상 이제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들을 덤덤한 표정으로만 접하며 지나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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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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