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HANEL, 장소의 정신②

글 입력 2014.09.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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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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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말을 타고 있는 가브리엘 샤넬을 담은 사진입니다. 샤넬은 물랭에서 부유한 마주(馬主)였던 에티엔 발장을 만나 파리 근교의 도시 르와얄리유로 가게 됩니다. 샤넬은 그 곳에서 승마를 즐기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상류 사회의 인사들과 어울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녀가 만들어 입은 승마복은 넥타이, 바지, 밀짚모자 등의 남성적인 요소들을 차용한 것이었습니다. 사교계의 스포츠 행사인 경마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모자를 쓰는 상류층 여인들과 달리, 둥글고 납작한 밀짚모자, 남성적인 실루엣의 넉넉한 외투, 멜빵에 매단 쌍안경의 옷차림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 모습은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 코코 샤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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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코 샤넬의 오드리 토투. 가브리엘 샤넬의 승마복 차림을 그대로 재연>

 

샤넬은 경마장에서 퀼팅에 대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로부터 퀼팅은 소년 마부들의 조끼나 안장 밑에 까는 매트, 추운 겨울 말들에게 입혀주는 방한용 옷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샤넬은 192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퀼팅을 활용합니다. 흔히들 아는 샤넬 2.55백도 바로 퀼팅백이지요. 퀼팅은 칼 라거페트까지 쭉 이어져 1986 F/W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 스팽글 장식으로 퀼팅 효과를 연출한 드레스를 선보였으며, 2013 F/W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도 퀼팅 소재를 차용한 수트를 선보여 패션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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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퀼팅 가죽과 메탈로 구성된 샤넬 2.5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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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W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의 투피스, 작업시간만 1,100시간이 걸림>

 

이 시기 샤넬과 그녀의 친구인 콜렉트와 미시아는 남성복을 즐겨 입었습니다. 남성복을 입는다는 것은 옷차림의 변화를 넘어 사고방식과 행동의 자유, 독립적인 정신을 표방하는 것이었습니다. 1800년대는 여성의 바지 착용이 금지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남성복 착장은 특히나 도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 때의 옷차림들이 1920년대 유행했던 톰보이 스타일의 원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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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샤넬, 콜레트, 미시아>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순간순간을 즐기고, 매일매일 말을 타는 일상이 지겨워진 샤넬은 다시 일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국 신사 아서 카펠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카펠은 그녀가 모자 디자이너로 데뷔하는 것을 도왔고, 파리에 첫 가게를 열 수 있도록 재정적 후원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실력과 아서 카펠의 후원으로 가브리엘 샤넬은 파리에서 모자 디자이너로 데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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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샤넬과 그녀의 연인 아서 카펠>

 



파리에서의 독립

 

그녀들은 인근 저택들을 방문하고, 폴로 클럽에서 차를 마시며, 도도하게 경마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긴긴 오후 시간을 보내고 했다. 경마장에 갈 때는 하얀 리넨 드레스를 입었는데, 도톰하게 자수를 놓은 데다 발랑시엔 레이스 띠로 이어진 직물로 만들어진 이 드레스는 하녀들에게는 악몽 같은 옷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유행에 따르려면 단추 끼우개를 가지고 애를 써야 겨우 잠기는, 스트랩이 네 개나 되는 뾰족한 구두를 신어야 했고, 상의에는 진주 목걸이를 세 줄로 길게 늘어뜨리고 손에는 양산을 들어야 했다. 또한, 우아한 여성이라면 브뤼셀 레이스로 된 모자에 타조 깃털이나 모슬린으로 만든 장미를 장식해야 격에 어울리는 차림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패션이 유행하던 1913년 당시, 가브리엘 샤넬은 아서 카펠의 독려와 후원에 힘입어 도빌 중심가에 매장을 열게 되었다. 매장이 위치했던 공토-비롱가는 대표적인 번화가로 지금도 최고급 호화 휴양지인 노르망디와 엄청난 판돈이 오가는 카지노의 경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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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몽드 샤를-루의 저서 『자유분방한 샤넬의 인생』에서는 1910년대 파리의 여성들을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사진은 1913 8월에 발표된 셈의 최신 삽화집 바다 위의 탱고빌을 읽고 있는 도빌의 우아한 여성들을 담은 사진입니다.


1900년 열린 만국박람회로 파리는 ‘빛의 도시’라는 명성을 각인시켰습니다. 인상파 화가들로 시작된 파리 예술의 움직임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의 태동으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예술가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로 몰려들었고, 몽마르트르 가의 예술가촌 바토 라부아르에서는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하는 등 예술 혁명이 일어납니다. 1900년 만국박람회의 전시관이었던 라 뤼쉬에는 모딜리아니, 아폴리네르, 브랑쿠시와 같은 젊은 예술가들이 집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에서 샤넬은 연인 아서 카펠의 후원으로 깡봉 가 21번지에 모자 가게를 열었습니다. 샤넬이 만든 극도로 단순한 모자는 유행을 선도하면서, 베일과 온갖 꽃, 과일 장식들은 유행의 뒤켠으로 물러났습니다. 샤넬의 가게에는 여배우들과 사교계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은 샤넬 모자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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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빌 매장 앞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


1913년 가브리엘 샤넬은 인기 휴양지인 도빌에 자신의 첫 의상실을 개업합니다. 그 때까지 속옷이나 남성복에만 사용되었던 저지 소재의 옷들을 처음으로 선보이면서 유행을 선도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도빌은 거대한 야전병원이 됩니다. 로얄 노르망디 등 호텔들은 부상병들의 수용소가 되었고, 자원봉사 간호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요란한 장식의 시대가 지나고 편안함의 시대가 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편안하면서도 세련됨과 우아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베니스의 보물


샤넬은 사랑과 부, 명성을 모두 누리는 행복을 만끽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919년 그녀의 일생 일대의 연인 아서 카펠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샤넬은 큰 슬픔에 잠겼고, 그런 샤넬에게 미시아와 그의 남편 조세 마리아 세르가 함께 베니스로 떠나자고 제안을 합니다. 1920년 여름, 샤넬은 베니스로 떠났고, 그 곳에서 샤넬의 영감의 원천이 된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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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리도 해변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


그녀는 성당들의 궁륭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들과, 온통 황금과 보석들로 조각된 산 마르코 대성당의 제단 장식벽인 팔라 도로에 넋을 빼앗깁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습은 어린 시절 오바진 수도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또한 베니스 유리세공 장인들의 솜씨는 샤넬의 커스텀 주얼리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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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양식 장정>


베니스는 사자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베니스의 수호 성인은 성 마르코의 사자입니다. 그리고 운명적이게도 샤넬의 별자리는 사자자리였습니다. 샤넬은 사자를 자신만의 상징으로 삼아 50년대 말부터 주얼리 컬렉션과 단추의 문양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깡봉 가 자신의 아파트 곳곳에 사자의 조각상들과 작은 그림들을 놓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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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파리-마치’ 잡지에 실린 샤넬의 초상 사진>


칼 라거펠트는 11/12 파리/비잔틴 공방 컬렉션에서 베니스에서 얻은 영감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검푸른 벨벳 외투의 보석장식과 비잔틴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주얼리와 자수들 모두 베니스에서의 영감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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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스텔라시옹 뒤 리옹 목걸이, 2012년 파리 샤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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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파리/비잔틴 공방 컬렉션 쇼>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예술작품들은 행복에서 탄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극과 슬픔에서 탄생하는 경우들이 더 많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가브리엘 샤넬의 가늠할 수 없는 암흑과도 같은 슬픔에서 탄생한 디자인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브랜드 샤넬의 시그니처로 남아 패션계의 찬사를 받는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샤넬의 장소로 떠나는 여정이 벌써 절반을 달려 왔습니다. 다음 시간은 러시안 패러독스, 블루 트레인, 새로운 세계, 샤넬 정신으로 여정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전시회는 10월 5일까지입니다. 아직 관람하지 못한 분들은 어서 서두르세요! 

그럼 See you again!


<출처 : 서나래, 영화 '코코 샤넬' 네이버 이미지, 문화샤넬전 홈페이지, 『CULTURE CHANEL 장소의 정신』

, 문화샤넬전 모바일 페이지> 

[서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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