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언제나 결핍 있는 사람을 사랑했다 [도서/문학]

책 ‘오색찬란 실패담’을 읽고..
글 입력 2023.07.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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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 때문에 그런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되셨나요?’

 

시사 예능 프로그램<알쓸인잡>의 진행자, RM이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해당 작품 속 캐릭터를 너무 사랑해 꿈속에서도 안고 지낸다는 정서경 작가에게 건넨 질문이다.

 

이에 정서경 작가는 ‘결점’을 언급했다. 캐릭터를 만들 때 그 캐릭터가 가지는 결점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장점이 아닌 결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지닌 결점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랑이 비로소 이뤄진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 우리가 부끄럽게 여기는 자신의 결점은 누군가에게는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 ‘오색찬란 실패담’을 읽고 책의 저자인 정지음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ADHD(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이었다. 평소 무언가 진득이 하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해 내가 ADHD인가? 의심이 들곤 했다. 그러던 중 성인 ADHD 이야기를 담은, 정지음 작가의 책 ‘젊은 ADHD의 슬픔’을 알게 됐다. 워낙 인기 도서라 도서관 대출이 쉽지 않았다.

 

대출 예약 순서를 마냥 기다리기에 아쉬워 우선 작가의 다른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시트콤 소설을 비롯해 2권의 에세이가 있었다. 그중 ‘실패담’이라는 키워드가 흥미로워 이 책을 선택했다.

 

만사의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이라는 부제를 지녔는데, 나와 비슷해 보이는 수식어에 친근감을 느꼈다. 에세이는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세계와 같다. 그래서인지 에세이는 쉬우면서도 진입 장벽이 있는데, 나와 비슷해 보이는 저자의 캐릭터를 마주하며 프롤로그를 채 다 읽기도 전에 마음속 장벽이 모두 허물어졌다.  

 

‘오색찬란 실패담’은 크게 4장으로 나뉘어져, 실패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야기가 30개가 넘는 꼭지로 구성돼 있다.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솔직함, 유쾌함, 사랑스러움을 들 수 있다.

 

주식 투자 실패로 여행을 포기하게 된 이야기를 담은 ‘개미는 여행하지 않는다’, 비싼 PT 비용은 어쩌면 비만세가 아닐까 하는 웃픈 후회를 하는 ‘음식 채무자의 지목’, 비호감 상사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꿈꾸는 ‘팀장님 죽이기’ 등. 당사자에게는 진지한 현실 내용이었겠지만 읽는 내내 킥킥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다리 운동 기구니까 ‘레그 헬’, ‘레그 지저스 크라이스트’, ‘레그 엑소시즘’ 뭐 이런 이름들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라는 대목에서 느껴지듯이, 작가는 쉬지 않고 찰진 비유와 해학적인 표현으로 일상 이야기를 전개한다.

 

학창 시절 PC 게임이 중독됐던 이야기부터 회사가 너무 힘들어 퇴사한 이야기까지. 인생곡선 속 하락 점들을 모아 숨김없이 설명했다. ‘와 나도 이런 경험 있는데!’ 공감한 적도 많았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한다니’ 놀란 빈도가 더 높았다.

 

도입 부분에서 퇴사를 결심한 이유와 프리랜서 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프리랜서 생활의 장점에 대한 꼭지, 새로 발견한 단점이 나왔고 후반부에는 결국 다시 취업하게 된 이유를 모두 담았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며 정말 이 책을 ‘닉값, 제목값’ 한다고 느꼈다.

 

누구나 이 선택만이 정답이라고 호언장담하다가 다음에 생각이 바뀌어 번복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번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정하는 법과 실패가 오히려 배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려는 억지를 버리고 나니, 내게는 나의 실패가 모두 다른 빛을 가진 형형색색의 경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의 실패담을 하나둘 읽어 내려가면서 점점 저자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다. 나도 저자만큼이나 덜렁거리는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는 하도 많이 넘어져 팔다리에 멍이 없는 날이 더 적었다. 회피 습관도 있어 가끔 내가 한심해 못 견딜 정도였다.

 

인생에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고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 20대의 흑역사가 너무 길어진다고 좌절하던 차에 이 책을 보고 느꼈다. 빈틈이 많으면 그만큼 채울 곳도 많다. 완벽한 사람은 다른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겠지만 빈틈이 많은 사람은 빈 곳만큼 다양한 경험이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왜 지금껏 내가 아픈 서사를 지닌 캐릭터, 결핍이 큰 캐릭터를 애정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체감했다. 우리는 언제나 결핍이 있는 사람을 사랑해 왔다.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커지는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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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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