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느 금요일 밤의 소묘 - 강재훈 트리오 Gershwin Songbook

어느 금요일 밤의 재즈 곁으로
글 입력 2023.07.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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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훈 예당 포스터 작업-Master.jpg



어김없이 오늘도, 공연장에는 1분 전에 도착한다. 때는 금요일 저녁 무렵, 퇴근길 버스는 내내 막히었고, 앉을 자리마저 없어 내내 서 있는 동안 발은 아프고 무더웠다. 버스가 한강 위를 지나 잠수교를 통과하는 동안, 여름의 한중간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즈음이 아마 7시가 되기 전이었을 텐데, 강 변에 비치는 햇살은 퇴근 시간을 무색하니 타오르고 있었거든. 달리 말하여, 이 시간 즈음하여 기세가 꺾이고는 저물어볼 법함에도, 태양은 여전한 여름처럼 무성하였다는 것이다.


도착한 곳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곳, 예술의전당이다. 비록 자주 찾지는 않지만, 오페라홀과 음악당이 마주 보는 곳 광장에는 아름드리 몇 기억들이 송송이 매달려 있다. 그마저 씹어볼 틈 없이 내달리듯 티켓을 수령하고 박차듯 들어선 리사이틀 홀, 그리 크지 않다. 무대에 곧바로 이어진 정면으로 1개 섹션 정도의 좌석군이 있고 그 외에는 2·3층 가변으로 벽을 둘러치듯 1개에서 2개 줄 가량의 객석이 있을 뿐이었다. 내 앉은 꼭대기 층 정면은 이 조그마한 곳을 한눈에 굽어볼만한 곳이었고 곧 재즈가 흐른다. 나는 콘서트홀이 좋다. 어느 곳이건 간에, 거기엔 곧 음악이 흐르리라는 예감이 기대처럼 서린 까닭에 물론이거니와는, 우드로 가득 찬 이유에서이다. 살포시 어둠 밑으로 은근한 무대광이 비치는 때의, 이 짙은 우드의 브라운이 좋다. 나는 평안을 느낌에, 아직 음악이 시작되기 한참 전으로부터.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재즈가 흐른다. 그러고 보면 재즈도 내게 브라운인 듯하다. 이 공연장 구석구석, 모서리와 벽면, 저기 우드에 잔뜩 머금이고 증폭되고 공간을 가득 메운 이윽고는 나무처럼 풍성히 향기로워지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야. 빳빳한 솔이 드럼의 북을 간지럽힐 때의 서늘함과 심벌즈를 쓰다듬을 때의 아련함. 콘트라베이스는 기억의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한 유년의 아련함과 그리움을 끄집어낸다. 외국산 무성 만화영화에 깔리는, 어느 재즈풍 멜로디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그 감정, 뭐랄까, 그래, 너무나 밝고도 달콤한 고독 같다고 해볼까. 또한 피아노는 언제나처럼 그 보드라운 양털이 자아내는 훌륭한 촉촉함으로 내내 노나들며 미끄러진다.


금번 'Gershwin SongBook' 프로그램은 동명의 앨범을 주제로 한다. 'George Gershwin'의 음악을 재즈 거장인 'Oscar Peterson'이 편곡하여 정립한 앨범으로, 본 공연에서는 강재훈 트리오만의 해석이 가미되어 있다. 리뷰를 위해 원본 앨범을 듣자하니,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사운드의 부재와 속도감의 차이가 가장 먼저 다가온다. 그리하여 이하 첨부한 Oscar Peterson의 연주에는 드럼 비트가 없어 본 공연의 감흥을 전달하기 어려워지지만, 그건 이 글을 접한 여러분이 강재훈 트리오의 연주를 들어야 할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



강재훈 트리오 (2).jpg



재즈는 신기하다. 사운드가 퍽 미니멀한데 반해, 주제가 튼튼하다는 느낌. 우렁차고 강인하고 웅장하거나 장엄하다기보다는, 아주 속 깊이 매듭지어진 끈처럼 끊길 걱정일랑 없다. 시끄럽거나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그러니까 음량의 대소에 상관없이 그 음률과 무드가 꾸준하다고 할까. 일순 드럼과 베이스가 멈추어 텅 빈 소리의 공간 한가운데에, 간주하는 왼손마저 없이 오른손 끄트머리, 약지와 새끼손가락의 연약한 움직임만으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수 있다니.


드럼 비트에 맞추어 옆 사람이 조그마니 발을 구른다. 그런 느낌, 신에 겨운 몸 끝으로 발해지는 흥이란 것은 아무래도 그의 몸이 느끼고 있는 아주 작은 티끌 단편일 것이려니, 산뜻한 속삭임처럼 전해지는 한편으로는 발에서 발로, 발이 서로 닿아있는 바닥으로 전해오는 이 진동이 은근하고도 깊숙이 다가오는 듯하였다.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방해받지는 않았다. 재즈가 아무래도 품 넓고 여유로운 음악인 까닭이다. 이 뭉툭한 발 박자까지 안에 품기는, 그런 자유로움과 넉넉함, 그건 이 음악당에 흐르는 것과 한가지였다.

 

 

강재훈 트리오의 연주는 이것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표현되었다. 



초당 3~4번의 박자가 통통 튀며 시간과 줄다리기를 한다. 밀고 늘리고 훌쩍 당겨버리는 새침함, 이 간지러운 긴장감이 재즈의 사랑스러움이 살아나 또 숨 쉬는 곳인가. 한편으로는 초당 1~1.5박의 느릿한 무드에서는, 늦봄의 게으름이 상기되기도 하지. 산적했던 일과를 벼루다간 한꺼번에 해치워버리곤, 얼마든지 늘어져도 좋을, 그런 게으름의 복된 순간 말이야. 이럴 때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레모네이드가 떠오르는, 그런 느긋함이야. 잠을 깰 수는 없거든.

 

박자감과 속도감이 그 어떻든, 그 안에 담긴 소리는 참으로 뭉근하다. 재즈에서 음은 언제나 이렇듯 나긋하다. 속삭임은 아닐 거야, 그보단 천성이 느긋한 어느 사람이 힘껏 발성하지 아니한 채로, 그러나 꾸준히 풀어내는 이야기에 가깝지.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바, 사람들은 제 각 고개를 까딱이고, 손가락으로 박자를 따라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곁눈으로 보매, 귀로는 들으매, 글을 쓰지. 드럼이 인도하는 박자대로, 게으르고 느긋하게, 또 달리듯이 빠르게.


드럼이 쪼개놓은 사이 박자의 빠르기만큼 내 손은 백지를 달린다. 그러나 이렇게나 마음은 여유로울 수 있을까. 이건 마치, 어린 벗들과 즐거운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벅찬 행복의 빠르기이다. 내 발은 느려, 점점 너희를 따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하기만 한 까닭은, 그러므로 이 순간이 온전함으로 남아, 또 내가 그를 온전히 누리게 될 수 있는 까닭은, 조금 앞서게 된 너희가 우뚝하고 멈춰서는 뒤를 돌아다 보며, 날 기다려 손짓해주리라는 그런 믿음에 닮았다. 이 음악 속에서 나는 그러한 것들을 느낀다. 사랑에 빠졌다는, 기나긴 묘사이다.

 

 

 

 

오늘 하루가 음파로 된 바람에 아주 씻기어 버리는구나. 청명한 바람이 온몸을 구석구석 촉촉하니 씻기어주는 듯이 틈 없이 상쾌해지다. 아무래도 날이 무덥거니와 회사에서는 유독 피로한 오늘이었거든. 그 모든 것이 마치 두 밤을 재워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버리는 듯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뜬 두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감각이란 공감각적이다. 물론 머리 바로 위로 아주 기분 좋은 정도의 에어컨 바람이 불어주는 까닭도 그 까닭이겠지만, 귀로 그 촉각을 느끼는 것이 퍽 행복하다.


이 하루는 음률이 그러하듯, 시간의 저편으로 빠르게 가고 있다. 제법 매서운 바람의 급류를 탄 채로, 아득한 절벽을 향해 날아가는 손수건과 같이, 하염없음으로 멀어만 간다. 거슈윈을 들은 까닭인가, 재즈의 덕분인가, 또 아니면 훌륭한 이 트리오가 내게로 주는 것들인가. 음악은 늘 무언가 표현하지만, 그 아무것도 묘연하다. 그러니까 하필 거슈윈이라서 내가 상기한 것들을 느꼈노라고, 똑바로 가리켜 보일 수도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슈윈이거나, 재즈이거나, 이 훌륭한 트리오에 의함이고, 아마 그 모두에 의함이라고는 바꾸어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한없이 어질어지고, 하냥 없이 기쁜 여유로움 속을 누리는 이 기분. 하룻밤 꿈과 함께 나는 원래의 자리로 아마 돌아가리라마는, 어떠한가. 나는 지금 기쁘고 여유롭고, 또한 느긋하니 어질어지고, 오늘은 금요일 밤이고, 내일은 아무런 약속도 일정도 없는 토요일이니, 나는 아마 여느 때와 같이 글을 쓰리다. 이처럼 행복한 일련의 한중간에 있음이니, 다만 벌써 아쉬움은 곧 주말이 반드시 가리라는 것처럼, 그보다는 빨리 공연은 끝날 것이고 나는 아주 오랜 습관이 그러하듯, 아쉬워 그리워하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환희로운 아이들의 뜀박질처럼, 숨 가쁘고 또 기쁘게 쓴다. 오늘이 어제가 되면 이 글만이 남아, 나는 지금 소리의 기억들마저 모조리 잃어버리고서는 여전히 그리워할 나를 속 깊이 아는 까닭이다.


마치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올 한 해의 절반, 이번 달, 달리듯 지나는 이번 주, 그리고 오늘… 어딘가 벅차고 지치는 하루가 씻기어간다. 금요일 밤의 재즈는, 정말이지 행복하기만 한 것이구나. 공연이 끝마치기도 전에 이 리뷰의 초고를 마친다. 이제는 눈으로 들어야지. 그럼 이만, 가을이 오기 전 한 번쯤은 돌아와야지. 절기는 기다리던 처서에 이르러, 그러나 아직 가을바람이 채 여름밤을 씻어버리기 전, 어느 금요일 밤의 재즈 곁으로.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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