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화가 필요할 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7.0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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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파브리스, 그리고 아들 시몬은 20년 동안 가족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카린은 집안일에 국한되어 있고 파브리스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 공간에서 그들의 시선은 마주 보기는커녕 멀어지기 시작한다.

 

클리어 시셰즈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Plans for Love는 갈등하는 가족 관계에 관한 주제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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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색감에 눈길이 간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가득 찬 애니메이션 속 그리고 한 가족이 등장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카린은 문을 열자마자 무거운 장바구니를 힘겹게 들어 올린다. 그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으며, 카린은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간다. 가족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로 이동한다.

 

시몬은 방으로, 카린은 부엌으로 그리고 파브리스는 티브이 앞 소파로 향한다. 티브이에 완전히 몰입한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가족끼리 식탁에 모여 식사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파브리스 시선은 오직 티브이에 향해있다. 아무런 대화가 오고 가지 않는 상황은 이들에게 매우 익숙해 보인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듯이, 어떠한 말도 없이 식사한다.

 

평소와 같이 티브이를 보던 파브리스는 배고픔을 느껴 부엌에 있던 식사 재료를 마음대로 가져와 먹기 시작한다. 결국 부엌까지 들어와 만들어진 음식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결국 참지 못한 카린은 소파에 앉아있던 그를 향해 샐러드를 던진다. 참지 못한 카린은 집을 나서기로 결심했고, 짐을 싸고 나가는 순간까지 파브리스는 티브이 시청하는 데 집중한다.

 

2층 창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몬이 눈에 아른거려 카린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건 티브이에 빨려 들어가거나 음식을 멋대로 먹는 남편의 환영이 보인다. 카린은 무언가를 결정한 듯 벽돌을 나르기 시작하고 파브리스가 앉아있는 공간을 분리한다. 더 이상 남편의 게으름을 볼 수 없다는 견고한 의지를 보인다.

 

결국 한 집에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문이 생긴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풀지 못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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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시셰즈는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이자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독특하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든 그녀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시셰즈의 작품은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2021에 선정되었다.

 

참고로 매년 6월 프랑스 안시에서 개최하는 애니메이션 국제 영화제이다. 또한 한국의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아르헨티나의 Bit Bang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다. 그의 영화는 많은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중이다.

 

시셰즈는 아마 프랑스의 가사 노동 분담 문제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2015년, 프랑스 여성 가사 노동 비중이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리고 작년 프랑스 여론 연구소에서 국민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47퍼센트가 가사 노동을 게을리하는 배우자를 범죄자로 규정한다는 아이디어에 동의했다.

 

약 절반의 사람이 이 문제에 고충을 지니고 있다는 현실이다. 꽤 오래전부터 이야기 나왔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다. 가사 노동 분담 문제는 팬데믹 이후로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유행 기간 재택 근무하는 여성들이 육아 부담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는 결과를 내었다.

 

재택근무의 전환은 개인에게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일과 가족 간의 경계 문제가 발생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맞벌이 부부의 가사 노동 분업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우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대화가 단절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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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족들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함께할 때는 아침에 자가용을 타고 이동하거나 식사할 때뿐이다. 함께 모여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면, 서로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주말 아침 가족 모두가 늦잠에서 깨어나 식사했던 때를 회상한다. 가족 모두가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티브이를 시청했던 날.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

 

깊숙이 저장된 기억 일기장을 다시 들춰본다. 일요일 오전 티브이를 보는 건 일상이었다. 위태로운 생명을 바라보고 같이 울고 화내며 모두가 감정에 충실했던 때.  밥상 앞에서 동물 인권에 관한 작은 토론이 이어졌고, 남아있던 국이 차가워진 게 느껴지고 나서야 대화는 끝이 났다.

 

일요일 저녁 해가 저물어갈 때쯤 모두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저녁 예능을 시청하며 밥상 앞에서 같이 떠들고 웃던 날들. 함께 공유했던 추억 점점 사라져가는 걸 몰랐던 때, 이때가 많은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인해 가족의 대화 빈도는 줄었다. 좋아하는 예능 시청은 밥상 앞이 아닌, 이젠 각자 방에서 영상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시대가 되었다. 주말마다 갔던 여행의 기억은 점차 흐려지고, 함께 공유할 거리는 아득해졌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추천해 주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가족 간의 공통 관심사는 느슨한 상태다.

 

감독 클리어 시셰즈는 대화가 단절된 우리의 현실을 애니메이션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집에 같이 거주하고 있지만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모습. 가족의 정의가 모호해져 간다. 이제는 동거의 개념으로 옮겨져 가고 있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예전만큼 우리의 공유 거리가 적어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시간의 빈칸만큼 서로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의 시작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공감하는 자세다. 가족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간다면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제들이 서서히 해결되지 않을까.

 

결국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대화’의 중요성이라고 본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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