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밀을 벗겨내는 응시

글 입력 2023.07.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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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비밀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숨길 것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수와 무게를 지녔을 시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문장이다. 다시 한번 떠올랐을 땐 무엇이 드러날 수 있고 감춰져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가 되어 있던 참이었다. 본인도 알 수 없는 겹겹에 가려져 어떤 것이 비밀이어야 하고 비밀이어선 안 되는지 알지 못하는 일종의 허황 상태.


이제 보니 저 문장은 비밀과 비非비밀의 사이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서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초월한 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말을 바꿔본다. 비밀은 기어이 사람을 작고 무겁게 만든다. 거짓과 진실의 콜라주 앞에 작고 초라해지면서도 그 모든 것들을 껴안아 감당 못하게 팽창하고야 마는 요상한 연금술 같은 작업. 이 표현이 나에게 훨씬 맞는 옷처럼 느껴진다.


나만 이러고 사는 건가 하는 절망에 갇혀 항상 먼 길을 돌아갔다. 나 아닌 것들과 이야기 나누며 어쩌면 적시에 알아갈 수 있는 것을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느리고 안전하게 되묻고 쌓아갔다. 내공이라 칭해도 될지 모르겠는 회피적인 시간의 두께가 늘어가니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를 가둔 절망이 내리고 있는 무수한 손을. 역시 거기에 갇혀 있는 무수한 얼굴을. 


아무래도 제각기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무엇이 초라하고 남루하고 찬란한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판단을 희뿌연 안개 속에 제쳐두고 확고한 것처럼 보이는 이상 앞에 불안에 떨면서. 오히려 모순적이게. 불안 속에 묶인 존재로서 그것과 완전히 떨어질 수 없다는 패배감과 피로와 기이함, 출처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자기혐오와 자기부정과 자기 구원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이니 별 수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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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정으로 비밀을 적절히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자주 고프다. 그 시간은 해방적이고 유쾌하다. 멋있다고만 추앙했던 누군가를 측은하고도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는 찰나이기도 하다. 이는 곧 초라한 나에 대한 입체적 이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존재를 만나고 바라보고 서로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는 건 신비한 일임에 틀림없음을 문득 떠올린다. 그런 동료가 곁에 있다고 믿을 수 있기에 가능한 감각이다. ‘당니 패밀리’라고 스스로 칭하는 나와 다섯 명의 친구들이 이 단단한 감각을 자주 일깨워준다.


우리는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무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조합이다. 철저히 숨겨야할 것 같은 비밀스런 속내를 듣고는 어떻게든 매력적인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는 이들이기에 그렇다. 이들 앞에선 무엇이 됐든 털어놓지 않는 것이 어렵다.

 

기어이 해묵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나 사랑해. 아니 좋아한다고 해야 하니. 무엇을. 같은 것을. 당연하지 않니. 같은데 그래서 참 달라. 난 다른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우린 같아, 좋아할 수 있잖아. 더 들려줘. 낯설고도 같은 마음을.


좁은 방에 모여 앉아 무한한 세상을 만드는 우리의 대화는 당사자들도 쉽게 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선 한껏 긴장하고 있는 정신과 몸에 숨 돌릴 틈을 주는 견고한 응시가 느껴진다. 멋나 보이는 것들을 무장해제하고 기꺼이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은 눈짓이다. 이것은 어떤 원초적인 모양의 사랑. 날 것의 사랑. 나체의 부끄러움을 잊게 하는 사랑. 


소유자를 철저히 짓누르던 비밀에 날개를 달아주니 어느 것보다 가볍고 아름답게 비상하는 새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서툴게, 아프게 떨어지면서도 언젠간 하늘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비행연습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른 이의 살갗을 느껴본 자는 기어코 사랑을 멈출 수 없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의 가벼운 날 것을 보고 싶다. 긴장과 으스댐과 불안과 필연적으로 함께 자리하는 여린 본질을. 


비밀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을 한번 더 바꿀 수 있겠다. 사람이 - 존재가 - 비밀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고. 비밀 뒤에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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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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