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좀 가볍고 과장스러워도 편하고 썩 괜찮은 이별 상담사 - 도서 '안전 이별'

글 입력 2023.07.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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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히 내가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모두 끝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남거나 미련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누구든지 이런 감정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했다. 반 정도는 삐뚤어진 웃음을 걸고 이 책을 골랐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한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안전한 이별이라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어떤 식으로든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을 안전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붕대를 감고 자르거나, 마약을 맞고 잘라도, 설령 바로 자라나는 손가락이라 하더라도 누구든 그걸 안전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을 모두 읽은 후에도 이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제아무리 완벽하게 포장해봐라, 불현듯 사랑했음을 인지한 순간, 그것이 잘려나갈 순간 자신을 투영시킨 만큼 피가 솟구칠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손가락, 누군가에게는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경험이겠지.

 

하지만 이 책이 전반적으로 안전하게 이별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오히려 유년시절부터 이어져 온 깊은 개인의 심리상태가 이별 때문에 위협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의 원제는 이렇다. Stay or Leave: How to remain in, or end, your relationship. 사람들이 겪는 국내의 시류와 브랜딩을 목적으로 이 책의 제목이 '안전이별'로 번역된 맥락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면이 있다.

 

사랑은 개인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통해 발생하고 유지되고, 끝나고, 어떤 선택을 해도 미련이 남는 것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와 개인적인 경험을 고려해볼 때, 안전하고 깔끔한 이별이 정말 가능하기나 할까 싶다. 그런데 하물며 성숙한 이별? 그걸 믿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마지막 꼭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완벽한 사랑보다 더 큰 판타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안전이별'이 적절하지 않은 네이밍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안전하게 이별'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끌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이 사랑에 빠지면 그렇게 된다. 내가 사랑한 상대에게 내 안에 있는 너무 많은 것을 투영시킨 탓이다. 내가 손가락을 잘린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나고 당신이 손가락이 덜렁거리는 몸 그 자체라니까?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안전이별'을 원하는 사람으로 이 책을 들게 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유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제목에 관해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것을 멈추고 다시 책 얘기를 하자면, 알랭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찰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인생학교 시리즈를 출판했다. 그는 이미 사랑에 관한 글을 쓴 대중철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고, <안전이별>에도 대중을 위한 통찰적 글쓰기라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렵지 않은 현실적인 주제인 '이별할 것인가'를 중심으로,24개의 꼭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할 수 있도록 전개해나간다.

 

책은 우선 제목을 통해 이별을 고민하는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생각을 뻗어 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써내려간다. 글은 매우 쉽게 쓰였지만,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투영했을 때는 좀 더 무겁고 통찰 적으로 읽힐 수 있다. 독자들의 통찰을 돕기 위해서, 저자는 사례와 복잡한 이론을 들이밀지 않는다.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내용을 전개하면서, 저자는 따뜻하고 관대한 태도를 유지한다. 책은 머리를 싸맬만한 논의나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공백을 남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별을 앞둔 사람에게는 정말 필요한 태도처럼 느껴진다. 그토록 취약한 상태에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완전한 대안이 되어줄 수는 없어도 따뜻한 담요나 반창고가 되어줄 것이다.

 

글쎄, 내가 이렇게 입이 툭 튀어나온 상태로 글을 쓰는 이유는 이미 내가 잃어버린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심술을 접어두고 이야기하자면, 그래서 이 책은 참 괜찮은 책이다. 최대한 가볍게 다루고, 어떤 부분은 너무 과장해서 말하지만, 사실 위로받고 내 생각을 결정짓고 싶을 때 이런 친구가 제일 편하고 든든하지 않은가.

 

책은 최소한 좀 과장하더라도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과장해서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의 예절을 지킨다. 젠장, 만약 또 이별하면 나도 이 책을 들면서 나의 심술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훌쩍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버리지 말고 책상 한 쪽에 박아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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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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