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러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 -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글 입력 2023.07.0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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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살면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 기준의 교육 과정 안에 있는 영어를 제외하고 말이다. 나도 참 많은 단어에 대한 배움을 열망해 봤다. 한때는 스페인어가, 한때는 중국어가, 또 한때는 일본어가 그랬다. 어떤 언어를 배우기 전에 책을 먼저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언어 관련 책(입문서)이 아주 많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이러한 열망이 결과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해도 그 어려움에 얼마 안 가 공부를 놓아버린다. "내가 사는 나라 말 잘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하는 우스운 우쭐함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일본어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까지 외우다 포기했고, 중국어는 학교에서 시켜 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그만뒀고, 스페인어는 자음과 모음을 공부하다가 포기했다.(자음과 모음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이 정도면 프로준비러, 프로포기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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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런 나를 조금은 쇄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의해 읽게 되었다. 이 작가는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했을까,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따위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 동기로 보았을 때 이 책은 제법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비단 언어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한 외국 생활의 이야기나 언어라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다른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산다. 그것은 자신이 나고 자란 현재의 땅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자발적인 선택이 대개 그렇듯이, 마음에 품고 사는 다른 장소에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취향과 꿈, 이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구체적으로 예정된 가까운 미래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곳을 향한 열망과 그리움은, 역설적으로 현재를 더 잘 살기 위한 노력에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어떤 곳이 있다는 사실은, 때로 현재를 살아 내는 데 가장 큰 위로가 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언제 처음 외국어를 배우고 싶게 되었나를 돌이켜보았다.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 1학년 때인 것 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국어에 대한 생각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인접한 중국어나 일본어를 약간의 쓸모를 위해 배우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본격적으로 배워볼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독일어를 공부하는 친구였는데, 훗날 독일에 가서 살겠다는 꿈 아래 그것을 공부하고 있었다. 외국어를 할 줄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렇게 흔하지 않은 독일어라니. 그때의 나에게는 적잖이 멋있는 충격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왜 스페인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스페인이라는 국가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에스타라는 낮잠 시간이 있다는 것에서도 하나의 매력을 느꼈다.


외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그 친구를 보면서 처음 했다. 아마 그쯤 우리나라가 지겨워졌던 것 같다. 한국이 싫다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인 것이다. 더불어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듯 내 선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나의 선택에 의해 '외국'으로 간다는 것에서도 나도 설레임을 느꼈던 것 같다.


나와 너무도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서 개척하는 새로운 삶을 그때의 나는 참으로 동경했다. 물론 외국으로 가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고, 또 많은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 '언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결코 현지인들을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섣부른 절망감을 지우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을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즐거움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책임으로 란없이 무거웠던 한 주에서의 탈출이자, 온갖 쓸모로 무장한 프랑스어로부터의 도피가 되어 갔다. 이탈리아어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자유로운 해방의 외국어였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필요에 의해 외국어를 공부하곤 한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경험으로는 학교 다닐 때가 아닐까 싶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제2외국어를 공부하지 않는가. 그것은 선택이면서고 선택이 아니고, 그 애매한 선택은 내게 그리 즐거움을 안겨주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즐거움'이나 오롯이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면 어땠을까. 정말 쓸모에 의해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으로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면 작은 도피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절망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시험을 보지 않는, 정말 원해서 하는 공부 같았던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그 외국어가, 모르기에 답답할 수 있는 외국어가 해방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경험이 나에게는 작은 힘이 되어 주었다.


 

알베르 카뮈는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인간 삶의 부조리에 빗대며, 우리 삶이 헛되고 의미 없는 것이라도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고 받아들이면서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썼다.

 

여기에 빗대어 본다면, 외국어 공부도 매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만 의미가 생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다를 수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마음을 충족시켜야 하는 일. 언젠가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일상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삶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혼자 낑낑대며 오기를 부리고, 혹시라도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느낄까 봐 아무 일 없는 척하며 자신을 못살게 군다.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는 옵션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다. 솔직하게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음을, 내가 그렇듯이 사람들도 언제나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랑과 같은 사람들을 보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아, 저렇게 살면 되는 거구나, 자연스럽게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손을 내밀면 되는구나. 늘 빈틈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몸으로 빳빳하게 긴장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게 읽은 부분이다. 특히 아래가 그렇다. 나도 저럴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눠서 해도 되고, 주변에 얼마든지 도움을 요청해도 되는데, 그 생각은 안 하고 여러 일을 혼자 감당해 버린다. 할 수 있으리라는 마음과 혼자 해 버리는 게 낫지, 하는 오만함과 귀찮은 일을 맡기기 미안함이 그 원인이다. 게다가 어른이라면 그 정도 일은 혼자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작가가 랑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는 어떤 한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 어른스러운 것은 적절히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하나의 용기라는 것을 보고 난 뒤로는 주변에 유난을 떨기도 하고, 도움도 청하고, 더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들이 계속 나와서 때때로 당황스럽기도 했다. 공부를 할 때도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가며 이해해야 하는 편인데, 그런 나에게 이 책을 계속 읽을 수 없는 순간들이 몇 번 찾아오곤 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하기도 하고, 융통적으로 행동한다며 그냥 넘기기도 하고 읽어내려 갔다.


작가가 이탈리어 문화원에 다니면서 만난 장프랑수아 이야기나 배운 이탈리아를 써먹으려 했지만 실패했던 이야기, 아니면 성공했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한편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책이다. 나도 공부하기를 여러 번 포기했던 외국어를 뭐든 하나 다시 공부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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