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부산, 제주도, 강릉, 통영...... 가리지 않고, 방파제가 있는 풍경이든, 항구가 있는 풍경이든, 섬마을이든. 바다라면 다 좋아한다.
내가 가진 꿈 중 하나는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난 편리한 것들이 모여 있는 도시나 자연을 머금은 숲보다도 유달리 물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물가에 가면 필연적으로 보게 되는 벌레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데(...실은 벌레라면 질색이다) 그마저 감수하고 보러 가고 싶으니 이건 사랑에 가까운 감정 같다.
화가가 사랑한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 기대감을 안고 책의 첫 장을 폈다.

무언가 읽기 전, 장편 소설이 아닌 이상 꼭 목차를 먼저 살피는 편이다.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그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펴 보는 행위에 가깝다.
이 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클로드 모네, 에드바르 뭉크, 피에트 몬드리안,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한 거장 화가들을 비롯하여 총 18 명의 작품 속 바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림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다. 전부 축약하여 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풍이라 일컫는 붓 사용, 색감 사용, 인물이나 사물의 배치 등을 통해 우리는 그림을 창으로 여기어 화가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사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이별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종교였고, 누군가에겐 자신의 유년을 담은 회상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해 주는 배경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평소 본 적 없는 그림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건 카스파르 다비치 프리드리히의 바다 위의 월출이었다.
우리는 낭만적이라고 표현할 때 굉장히 아름답거나 섬세하거나, 또는 감정적으로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 즉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거나, 목격한 장면이 마치 한 폭의 그림, 영화 같을 때 그것 참 낭만적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낭만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바쁜 일상 속에도 꽃을 사 화병에 꽂아 둘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시에 베풀어 줄 수 있고, 그들과 함께 바다를 보거나 별을 보는 삶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나는 낭만이라는 글자를 꽤 좋아하고, 그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낭만주의 미술을 몹시 좋아한다.
프리드리히는 낭만주의 작가다. 그는 자연의 영적, 종교적 의미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거대한 폭포를 마주하면 자연에 대한, 어떠한 감정. 지금의 나로서 상상하기를 경외심과 같은 감정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자연이 위대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지 않은가?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질 때, 햇살 아래 심어 둔 묘목이 거대한 나무가 되었을 때, 생명이 싹을 틔울 때, 썰물이나 밀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질 때. 나는 그럴 때 자연의 대단함을 느낀다.

프리드리히는 이러한 자연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항구도시 출신으로, 늘 죽음이 곁에 있는 삶을 살았다고 책의 글쓴이는 전한다. 천연두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두 누이, 자신을 지키려다 죽은 동생까지. 생과 사의 문턱에서 늘 프리드리히는 바다를 눈에 담았을 것이다.
아주 넓은 바다를 애틋하게, 혹은 망연하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 존재가 남기는 족적에는 얼마만큼의 쓸쓸함이 묻어날지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는 해안선 뒤로 넘어가는 노을을 보며 고백했을 테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걸으며 사랑을 속삭였을 테다. 또 누군가는 바다를 마지막 침대로 여기어 몸을 담구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파도에 맞서 항해했을 것이다.
바다는 얼마나 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까? 그들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의 102번째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되도록이면 나에게 호의적인 바다를,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고 그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덮어 줄 수 있을 만큼 상냥한 바다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