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K-pop [문화 전반]

음반 100만 장? 이제는 1억 장!
글 입력 2023.07.0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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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쏟아지는 기사들. 새로운 소식이 이전 소식을 죽이고, 없던 이슈 거리를 생성해 내는 작은 화면은 매일 바쁘게 돌아간다. 초록색 띠로 둘러진 몇 가지의 카테고리 중 ‘연예’를 자주 클릭한 사람들은 아마 ‘커리어 하이’라는 문구가 굉장히 낯익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이 팀이 커리어 하이를 찍었는데, 이번엔 또 저 팀이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누군가 세운 신기록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누군가가 갈아치운다.

 

날로 커지는 K-pop의 위상 덕분이다. 복귀했다 하면 음반 몇백 만장, 스트리밍 몇억, 뮤직비디오 조회 수 몇억 회 돌파 등 몇 년 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수치가 이제는 너무 당연해졌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 보자. 사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달로 국내 음반시장은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였다. 그나마 남자 가수가 여자 가수보다 음반 판매량이 많긴 했지만, 아무리 탑급의 인기 있는 가수라도 몇십 만장이 끝이었다.

 

그러다 2013년, 엑소의 으르렁이 초대박이 나면서 ‘12년 만의 밀리언 셀러’라는 타이틀이 생겨났다. 당시에만 해도 뉴스와 교과서 등 여기저기 안 나오는 데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화제를 몰았다. 이때를 기점으로 201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점차 음반 판매량이 늘어났고, 소수의 탑급 남자 아이돌이 100만 장이라는 판매 수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르세라핌의 Unforgiven이 125만 장, 에스파의 My World가 169만 장, 그리고 작년에 이미 Born Pink로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블랙핑크까지. 걸그룹의 음반 판매량도 100만 장을 넘기는 추세로 보이그룹의 경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세가 막강하다. 세븐틴의 FML이 455만 장을 팔며 K-pop 신기록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트레이키즈가 461만 장을 판매하며 또 한 번 기록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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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수치가 증가한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해외시장의 파이가 급격히 커진 것이다. 음반보다 음원이 더 앞서나갈 때도 K-pop은 해외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규모가 차이 난다. 절대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미국 시장도 뚫리고, 유럽권을 더불어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K-pop은 존재한다.

 

둘째,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다. 과거 음원 스트리밍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과 현재 음원과 음반 모두 활발한 지금의 음반 판매 양상은 다르다. 과거에는 단일 앨범을 출시하면 대중은 노래를 듣기 위해 음반을 구입했다면, 지금은 여러 종의 앨범을 출시하면 앨범마다 랜덤으로 들어있는 사진과 혜택을 누리기 위해 구입한다. 즉, 앨범 구매의 목적이 바뀐 것이다. 한 앨범에 4가지 버전이 있으면 버전별로 들은 포토 카드의 종류도 다른 데다 들어있는 포토카드도 랜덤이다. 거기다 판매처 별로 상이한 특전, 팬 사인회를 가기 위한 지정된 구매처, 멤버별로 디자인된 앨범 등 회사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앨범 구입량을 늘리게 했다.

 

셋째, 팬덤 경쟁이다. 점점 과열되는 팬덤 경쟁은 ‘저 가수보다 성적이 잘 나와야 해’ 또는 ‘이전보다 성적이 잘 나와서 커리어 하이를 찍어야 해’ 등으로 시작된다. 좋은 것만 주고픈 팬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회사 측에선 이를 적극 활용하여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선보이고, 팬들은 그 모든 걸 알면서도 기꺼이 이용당해 준다. 일부는 코로나 이후 공연이 잠정적으로 사라지면서 수요가 음반 구매로 향하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코로나 영향도 아예 없었다고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위 3가지 요소가 전부 합쳐져 죽었던 음반시장이 매서운 기세로 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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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이 고공행진 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 이면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그들만의 리그’라 일컫기도 한다. 매일매일 신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K-pop인데, 어째서 ‘그들만의 리그’라는 단어가 붙는 것일까?

 

나는 이 이유를 앞서 말한 앨범 판매 증가 원인의 3가지에서 찾았다. 해외시장이 커지고, 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팬들의 구매가 늘어가면서 팬덤 중심의 문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날이 갈수록 인기는 높아지는데, 이상하게 대중성은 점차 줄어든다. 이 현상은 상대적으로 팬덤이 강력하게 구축된 보이그룹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대중성의 척도라는 음원 사이트에서도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팬덤은 탄탄해지고 범위가 확장되는데, 반대로 대중성은 약해지고 범위가 좁아지니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록을 세우는 K-pop이 이제는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10년 넘게 K-pop을 사랑하며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판도가 휙휙 바뀌는 모습을 보며 늘 재밌었고 신기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중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유례없는 일이 지속되는 걸 바라보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는 TV 예능보다는 유튜브 자체 컨텐츠가 더 우세하고, 국내보다 해외시장의 매출이 더 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한국 가수인 만큼 국내에서의 입지도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멀어진 이 간극이 언젠간 좁혀지길 바라며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모두의 K-pop’으로 탈환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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