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가, 에드워드 호퍼 [미술/전시]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6.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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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SeMA)는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휘트니 비엔날레로 유명한 휘트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다. 놀라운 점은 이번이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이라는 점이었다. 비교적 인지도가 있는 작가임에도, 그동안 국내에서 개인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현재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받는 전시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일대, 케이프코드 등 작가가 작업하며 머물렀던 장소를 중심으로 섹션을 구획하였다. 전시 제목 ‘길 위에서’는 그러한 장소로 향하는 길이자 우리가 호퍼를 마주하는 길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전시를 통해 호퍼와 그의 작품을 마주하며 느낀 바는 다음과 같았다.

 

 

 

추상적인 형태와 두려움



일반적으로 호퍼의 작품에 연결되는 개념으로 고독과 소외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삭막한 도시풍경과 홀로 있는 인간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전시에서 그의 그림을 직접 마주했을 때, 그림의 소재라는 내용적 측면을 넘어 호퍼만의 스타일이 가져오는 색다른 감각을 느끼기도 했다. 바로 기하학적으로 추상화된 형태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감이었다.

 

예로 〈뉴욕 실내〉(1921년경)를 들 수 있다. 관람자의 위치 쪽의 옷장(혹은 창틀)은 캔버스의 틀이 내부로 이어지며 평면적이고 사각형의 형태의 표면, 스크린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관람자의 반대쪽, 화면 속 가장 멀리 있는 곳 역시 직사각형의 나무문이 보인다.

 

그 사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하는, 혹은 공상에 빠진 사람이 있다.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기하학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이 사람이다.

 

 

뉴욕 실내, 1921년경, 캔버스에 유채(진).jpg

〈뉴욕 실내〉, 1921년경

 

 

캔버스의 표면(창틀)쪽과 그 너머 문의 납작한 평면성은 사람이 존재하는 방의 공간을 극도로 압축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압박감을 준다. 당장이라도 두 사각 틀 사이에서 형상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여인의 모습에서 숨막힐 듯한 두려움, 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느껴졌다.

 

사실 이와 같은 존재적인 두려움을 경험했던 다른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아라아트에서 진행중인 전시 《디지털 뷰티》의 미구엘 슈발리에 작품이었다. 전시장의 주요 작품들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으로, 관람자를 인식하여 화면에 기하학적인 형태로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신기함과 흥미가 먼저 느껴졌지만, 곧이어 알 수 없는 서늘함과 공포감이 몰려왔는데, 이는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고 가장 기초적인 형태로 환원되어버린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작품이 불러온 공포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추상적 형태로 환원되어 개인적인 주체가 소멸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는 효율적인 관료체계와 산업생산체계를 위해 모든 건을 특정 형태로 분류, 수치화하고 환원시키는 현대 사회의 속성을 닮아있다. 즉, 호퍼의 작품은 삭막한 도시풍경 속 외로워 보이는 인물로부터 느껴지는 고독과 함께(혹은 그 이전에) 기하학적 형태로의 환원으로 인한 존재적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문명과 자연의 대비



이번 전시 전까지 호퍼의 몇몇 도시 풍경 작품만을 보아왔기에 그의 작품에서 자연 풍경 역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특히, 자연과 도시 혹은 문명이 서로 대비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밝은 빛을 담고 있는, 기하학적으로 나타나는 수직적인 구조의 건축물과 달리 자연은 수평적이고 어두우며 자유분방한 형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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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집, 1935

 

 

〈계단〉(1949), 〈황혼의 집〉(1935) 속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계단〉에서는 열린 문을 넘어 안쪽으로, 〈황혼의 집〉에선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숲속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건축물 역시 그저 편안하기만 하진 않다.

 

두 공간의 차이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외부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의 차이일 뿐인 듯하다.

 

 

 

무대연출가로서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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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는 연극, 공연 보기를 좋아했다. 〈통로의 두 사람〉(1927)과 같이 연극 무대를 그린 작품도 있고, 실제로 그가 아내와 함께 부부가 함께 관람한 연극 티켓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역시 무대를 연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전 7시〉(1948)를 보면 마치 씬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무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호퍼(부부)가 기록한 장부에서도 이러한 무대 연출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 인종과 분위기까지 체계적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그림을 그려낸 호퍼는 일종의 감독과 같았다.

 

이러한 연출은 그의 작품이 사실적 풍경을 대상으로 자신의 상상을 덧붙여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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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부부가 관람한 연극 티켓 모음, 1925-36

 

 

호퍼의 사실적인 작품들은 침묵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관람자의 개인적인 서사가 들어갈 여지를 담고 있었다. 이번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전시는 그의 작품을 마주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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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사진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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