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액자 바깥의 고양이들 – 루이스 웨인 展

글 입력 2023.06.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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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전시를 보러 다니다 보면 새삼 지금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화가는 극소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는 살아생전 큰 인기를 누렸음에도 소위 ‘주류’ 미술계에서 활동하지 않아서 후대까지 알려지지 않은 화가도 많을 것이다. 액자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기보다 책에 들어가는 삽화나 제품 패키지 그림을 주로 그렸던 이들은 미술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 수많은 사람의 일상에 머물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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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고양이 그림을 그리며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루이스 웨인도 그런 화가에 속한다. 당대 영국인이 아닌 나의 경우, 희한하게도 조현병이 화가의 화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그의 그림을 처음 접했다. 수많은 패턴으로 구성된, 스스로 분열하는 듯한 고양이 그림.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그 그림은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했다. 루이스 웨인이라 하면 자연스레 조현병이 떠올랏던 것도 그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오래된 오해라고 한다. <루이스 웨인 展>에서 본 설명에 따르면 루이스 웨인이 정신병을 앓았던 것은 맞지만 병력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불확실하며, 소위 '조현병 그림'으로 알려진 그림은 태피스트리 및 직물 디자이너였던 어머니의 예술관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전시 초반에 그런 설명을 읽고 나니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총 6개 파트로 나누어진 전시는 루이스 웨인이 어떻게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는지부터 시작해 그의 말년까지를 다룬다. 평생 수백 수천 마리의 고양이를 그린 루이스에게도 첫 번째 고양이는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귀여움의 대명사로 통하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동물이지만, 당시 영국의 상황은 달랐다. 개에 비해 고양이는 보편적인 반려동물도 아니었고, 인기 있는 그림 소재는 더더욱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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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루이스가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는 아내 에밀리였다. 집안의 반대 끝에 결혼한 에밀리가 투병 중일 때 루이스는 우연히 집에 들인 고양이 피터를 그리기 시작했고, 아내의 권유로 그 그림을 편집자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고양이 화가가 된다. 이후 피터는 1898년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루이스와 함께하게 된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고양이 그림은 큰 인기를 끈다. 1895년부터 1905년까지 10년간 루이스가 삽화를 그린 책은 40여 종이었고, 생전 제작된 엽서는 천 종류가 넘었다는 설명에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고양이에 대한 영국인의 인식이 바뀔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그린 고양이가 얼마나 매력적이었을지 짐작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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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의 매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진득하게 관찰해야 하고,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좋아해야만 한다. 고양이의 다양한 표정과 움직임의 한순간을 포착해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에서 말로 하지 않아도 그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졌다. 수많은 고양이 중 똑같은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다는 것도 고양이에 대한 루이스의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초기에는 그의 반려 고양이었던 피터를 떠올리게 하는, 비교적 사실적인 고양이들이 주를 이루룬다. 그러다 후기로 가면 그림 속 고양이는 사람처럼 옷을 입고 모자도 쓰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이족보행을 한다. 더 나아가 학교에서 수업도 듣고 골프처럼 사람이 하는 스포츠를 하기도 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 시점에서 루이스의 고양이는 이미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사람들과 세상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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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그의 삶은 녹록지 못했다. 재능 있는 예술가가 종종 그러하듯 루이스도 자신의 능력에 비해 세상 물정을 깨치는 속도가 느린 탓에 그림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감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투자에 실패하며 파산 신청을 하기도 했다. 


중년의 루이스는 정신병까지 발병해 스프링필드의 극빈자 병동에 입원하기에 이른다. 내게는 가장 익숙한 시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우연히 병원에 방문한 정신병원 방문 관리 위원회 위원이자 서점의 주인, 홍보 담당자였던 맨 라이더(Dan Rider)가 루이스를 알아보고 그의 어려운 상황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윽고 ‘루이스 웨인 기금(Louis Wain Fund)’이 생겨났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루이스의 사연을 다뤘다. 


그 결과 루이스는 다시 한번 주목받으며 더 나은 병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을 즐겁게 해준 자신들의 고양이 화가를 잊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삶을 이어나가며 마지막까지 고양이를 길렀고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나를 비롯해 조현병이라는 키워드로만 루이스 웨인을 알게 된 사람들은 생각해본 적 없는 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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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로 시작해 고양이로 마무리된 루이스 웨인의 작품 세계는 어렵지 않다. 전시 역시 그림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이해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마음껏 귀여워하면 되는 고양이 그림으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수집품이었을 것 같은 엽서나 삽화도 눈에 띄었다. 지금은 비록 전시를 위해 모든 그림이 액자에 들어가 있지만,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액자에 넣을 용도가 아니라 엽서와 책, 제품 포장지에 들어가는 삽화 용도인 그림이 많았을 것이다.

 

그의 그림이 그러했듯이 그의 삶도 액자 바깥에 있었다. 특정한 화풍이나 조현병 같은 몇 가지 틀로는 루이스 웨인이라는 예술가를 다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삶에는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만큼 좋은 일도 있었다. 전시에서 비슷해 보여도 사실은 모두 다른 수많은 고양이들을 보며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섹션까지 감상하고 난 다음, 비로소 루이스 웨인이라는 화가는 내가 알고 있던 피상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자신만의 고양이를 그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국민화가'로 다가왔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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