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범주를 벗어나서 마주하는 '우리' [도서/문학]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 입력 2023.06.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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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 국민 중의 ‘나’

VS

우리 가족 구성원 중의 ‘나’


각각의 특징은 무엇인가? 전자의 경우는 무수히 많은 인구 중 한 명이기에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하나의 점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가족 전체를 그리는 것과 더불어 그들의 표정까지도 표현해낼 수 있다. 이렇듯 어떻게 범주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나’도 다르게 표현된다. 

 

이 책은 주인공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알아가며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학급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우울증을 앓고 자살 시도까지 한 주인공은 우연히 조던이라는 과학자를 알게 된다. 그의 눈에 비친 조던은 여러 업적을 쌓으며 혼돈 속 질서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조던은 물고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물고기를 하나하나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다. 우주의 많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조던이 자신의 혼돈 속에 질서를 부여해줄 수 있다고 여겨 계속해서 그를 연구해나가지만, 그럴수록 밝혀지는 조던의 실체는 충격적이다. 그는 열렬한 우생학자이며 계층의 사다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도 허다했고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질서가 있다는 그의 법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조던이 선택한 방식은 열등한 존재를 거세시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열등한 유전자는 후대에 자손을 남길 수 없게 만든다. 주인공은 조던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을 찾아간다. 그녀의 이름은 ‘애나’로 19살 때 수용소에서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불임화를 당했다. 그녀가 불임화를 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의 가난, 낮은 지능검사 점수만으로 조던은 그녀를 세상의 부적합자로 간주해버렸다.


그럼 조던의 사고에 근거한다면 애나는 쓸모없는 사람에 불과한가? 몇 년 후 수용소에는 ‘메리’라는 어린 소녀가 들어오고 애나는 그 소녀를 잘 보살펴준다. 이후 그들은 수용소에서 나와 함께 산다. 이제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으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애나 역시 메리가 없었으면 삶의 희망을 잃었을 것이다. 


우생학자는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분류하고 나눈다.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확신해 눈에 보이는 수치나 지표로 누군가를 열등한 존재로 분리한다. 이는 마치 데이비드 조던이 물고기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일일이 분류했던 것과 같다. 조던은 물고기를 분류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분류를 해야만 삶의 질서가 생긴다고 믿었다.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사람이 단지 자신의 기준에서 열등하다고 여겨 불행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둔 것은 한 사람을 단면적, 평면적으로만 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조던이 분류한 물고기도 그가 정한 카테고리 속에 완벽히 분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관점에서 물에 사는 생물을 물고기라고 부르기만 했을 뿐, 그것들의 미묘한 차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상 물속을 살펴보면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숨어있다. 각자의 미세한 특징과 개성을 가진 생물 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며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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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물고기도 인간의 편의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없는 생명체다. 물고기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하다. 각각의 세세한 특징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중요한 존재도 아니라고 여겼을 테니까. 조던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인간에게까지 확장하여 적용했다. 인간 역시 단면적으로 바라보며 중요도에 따라 자신의 방식대로 분류하고 그것이 맞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연구를 계속 진행해온 것이다. 그는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가족 구성원의 ‘나’라는 존재는 많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누군가의 딸 혹은 위로를 주는 존재, 웃음의 근원 등. 범주는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존재는 무수히 많은 의미를 지닌다. 이는 전 국민 중의 ‘나’라는 다소 넓은 의미의 범주를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의 ‘나’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무한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점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범주를 점차 좁혀보면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직접 느껴보기를 바란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으로 이 지구에게, 사회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소중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책이 시사하는 것은 ‘범주는 족쇄’라는 것이다. 각자는 어떠한 카테고리 안에 분류될 수 없는 존재다.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이 있고 이러한 특성은 간소화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분류기준도 모두 다를뿐더러 인간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도 있는 입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 나오는 ‘민들레 법칙’을 기억했으면 한다. 민들레가 누군가에게는 잡초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약초나 물감처럼 널리 이롭게 쓰인다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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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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