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흑백 세계의 아름다움 [문화 전반]

흑백 필름,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
글 입력 2023.06.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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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일 년 전, 필름 사진을 주로 다루는 사진 동아리에서 기획한 전시회에 참여하기 위해 나는 여름 내내 출사를 다녀야 했다.

 

여름방학에 열리는 전시회는 동아리의 정식 회원이 되기 위한 관문이었기에 당연한 마음으로 신청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초짜’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모 연예인의 사진 취미가 영향을 주었는지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카메라에 꽂혔다. 카메라가 너무 가지고 싶어서 아빠와 성적 내기를 했고, 나는 반에서 1등을 하는 쾌거를 이루어 결국 아빠에게서 DSLR 카메라 한 대를 얻어냈다.

 

그동안 그 카메라 한 대로 어찌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아직 멀쩡하긴 해도 지금은 벌써 구닥다리가 된 나의 카메라는 나와 정말 많은 곳을 동행하며 지금껏 수만, 아니 수십 만의 장면들을 포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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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던 나에게 필름 사진이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러나 예전부터 현대적인 디지털 기술에 기대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사진을 다루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처음에는 전시회의 컨셉이 컬러가 아닌 흑백 사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컬러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흑백만 취급하는 동아리의 지침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있어서 여름의 풍경을 흑백으로 담는 것은 거의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첫 주의 출사를 마치고 현상소에서 그 결과물을 받은 뒤, 흑백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흑백이면 당연히 모든 것이 단조로워 보이고, 재미없어 보일 줄만 알았는데, 무채색만 남겨놓은 이 세상의 모습은 생각보다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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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물의 질감이나 햇빛의 움직임은 흑백 사진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사람이 피사체로 등장하는 경우, 다양한 색깔로 인해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던 시선이 해당 피사체를 향해 집중된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흑백 사진을 촬영하며 항상 컬러 사진만을 취급했던 나는 그동안 한 가지 방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내가 보는 세상은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지만, 수많은 색깔에 뒤덮여 세상의 여러 장면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매 순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시각을 아주 조금만 바꿨는데도 사진을 찍을 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세상의 미묘한 부분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되었고, 절제된 감정 속에서 피어나는 호기심은 인물의 사연을 더욱 풍성하게 담을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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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 2개월간 흑백 필름으로 세상의 여러 모습을 담아낸 나는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컬러 사진을 전시회에 걸 수 없다는 것을 못마땅히 여겼던 과거의 시간은 그렇게 흑백 사진을 향한 애정으로 깔끔히 정리되었다.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 지금도 종종 카메라를 잡고, 흑백 필름 위에 이 세상의 미묘한 움직임들을 그려내고 싶을 때가 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만큼 화려하고 다채롭지는 않더라도, 흑백의 그 잔잔하고도 담담한 정서가 일으키는 마음의 울렁임은 정말 헤어 나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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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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