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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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같이 보러 다니는 친구 덕분에 63빌딩도 사진전도 처음 접했다. 평범한 사진전은 아니었다. 직접 촬영한 사진에 포토샵을 더하여 새롭게 탄생시킨 작품들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을 현실에 투영해 정말로 만들어 낸다. 그의 이름은 에릭 요한슨이다. 스웨덴 출신의 초현실주의사진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철학을 담아낸다. 한 예시로 Give Me Time이 있다. 한 남성이 벌판에서 몸집만 한 거대한 시계들에 이어진 밧줄에 묶여 달아나지 못하는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마치 타이어를 매달고 훈련하는 전사 같기도 하다. 작품 속 남성은 고통스럽다. ‘시간’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을 살아야 하는 인간을,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일삼는다. 이만큼 둘러대기 좋은 변명이 없다. ‘외국어 공부해야 하는데, 운동해야 하는데, 취미생활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돈이 없어서, 비가 와서, 날이 추워서, 알아보기 귀찮아서, 실패가 두려워서, 등 진짜 이유를 외면하고 시간이 없다는 말로 퉁 쳐버리고 방패 삼는 것이다. 그러한 현대인의 역설적인 모습을 시간을 달라고 풍자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관람하다 보면 앤설 애덤스의 '진정한 사진은 설명할 필요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라는 문구가 꼭 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의도와 메시지가 드러난다. 현실과 사회에서 그는 무언가를 포착하고 새로운 시각과 발상으로 재해석한다. 디자인적 감각까지 더해져 눈도 즐거워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한때 이러한 상상을 자주 했었는데. 세상을 요리조리 바꾸어 보고, 뒤집어 보고, 편집하곤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게 되는 눈이 되었구나. 점점 사회에 적응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을 돌아보고서는 요한슨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기질이 죽지 않았다는 점, 상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실현해 냈다는 점이 존경할 만하다. 이에 영감을 받아 다시 조금씩 상상의 눈을 열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빛나는 달에 닿음
거대한 빛 앞에 서면
어김없이 그림자진 실루엣으로 변하는구나
예외 없는 평등이 이루어지는 순간
복잡하게 들어선 무늬들이 지워지고 까맣게 채워지는 형태
커다란 달이 빛나고 있길래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집에서 사진을 보다가, 역광으로 까맣게 변한 내 모습에서 떠올린 생각을 적어봤다. 옷을 어떤 색깔을 입었고 어떤 무늬인지에 상관없이 거대한 빛 앞에서 균일하게 사라져 버리는 현상은 사회로 의미를 확장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환경과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똑같다는 것, 아무리 경쟁하고 격차가 있어도 같은 인간이라는 것.
에릭 요한슨 사진전은 많은 면에서 충격을 안겨준 전시였다. 정통 사진이 아니라 현대적 기술을 결합하여 새로운 장르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작가의 근본 관점과 철학, 깊은 사유가 깔려 있다는 것. 현실을 보면서도 동시에 그 이면의 세계를 생각하는 그의 세계를 여행하고 왔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어 의미를 재탄생시킨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정담이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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