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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신데렐라는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프랑스 동화 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에 그의 동화집<옛날이야기>에 수록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후 디즈니는 <신데렐라>와 <신데렐라>의 후속 이야기<신데렐라 2>까지 영화로 제작하였다. 2015년에는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올해 타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도 이처럼 신데렐라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는 고전 동화이다.


<신데렐라>의 줄거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재로 뒤집어 쓰여있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신데렐라는 부엌 아궁이 앞에서 일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데렐라는 아버지가 재혼한 뒤 새엄마와 새언니 사이에서 구박받고, 혼자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지내다가 요정의 도움을 받아 파티에 가게 되고 왕자를 만나서 결혼하여 신분이 상승하게 된 이야기이다.


유명한 고전인 만큼 많은 판본이 존재한다. 판본에 따라 신데렐라가 원래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는 등 신데렐라의 신분이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새언니들의 구박 속에서 지냈다는 서사는 동일하여 신데렐라가 설사 신분이 높았다고 하더라도 신데렐라와 왕자가 향유한 문화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주로 아이들이 신데렐라를 접하는 시기는 개인의 이데올로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아기이며, 신데렐라 서사는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콩쥐팥쥐>, 중국에서는 <섭한>, 베트남 <카종과 할록>, 필리핀의 <마리아> 등으로 신데렐라의 서사를 따르는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신데렐라 서사가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데렐라 서사는 남성 지배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남성 우월적 권력의 서사이다. 남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남성을 상대로 여성 스스로가 자기실현을 이루어야 하는 현시점에서 문학, 더 나아가 아동문학에서는 이 서사에 갇힌 여성을 해방해야 한다. 


부르디외는 재벌 2세의 ‘아비투스’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아비투스는 확연히 다르며 그 간격은 쉽사리 메워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경제적 자본을 얻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하지만, 계급을 결정하는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은 장기간 축적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결말인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2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영화 <신데렐라 2>에서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함께 왕궁에서의 삶을 위해 이전 생활 방식을 버리고 선택한 새로운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위의 영화 장면과 같이 신데렐라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까지 재교육받게 되는데 교육받는 신데렐라의 모습을 지켜본 오랜 친구였던 쥐 자크는 왕궁에서 살아가는 신데렐라를 보고 신데렐라가 더 신데렐라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파티를 여는 법, 식사 메뉴, 커튼 색깔, 걸음걸이 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일들까지 신데렐라에는 모두 낯설기만 하고 신데렐라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신데렐라가 왕실의 예법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로 여성에게 나타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억압된 태도와 불안이 뒤얽혀서 여성이 창의성과 의욕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미개발의 상태로 묶어두는 심리 상태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진 여성은 어릴 때는 부모에게, 성인이 되어서는 애인이나 남편에게 의지하여 삶을 살아간다. 특히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생을 책임져 줄 남편을 갈구하게 된다. 이 콤플렉스는 현재 ‘취집’으로 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취집은 ‘취업 대신 시집’의 줄임말로 자립에 대해 여성이 가지는 공포와 불안의 심리, 그리고 여성의 남성 의존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의존성은 곧 여성의 수동성으로 귀결된다. 아래의 설문조사 결과는 과반수의 여성이 취업의 어려움을 겪을 때 취집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능력 계발을 남성을 핑계로 회피하고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다.


‘취집’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을 때 결혼정보업체의 광고와 함께 무수히 뜨는 글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글들이 ‘취집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잘못된 사회 현상 같다’라는 글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거의 모든 글이 취집을 옹호하고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질문을 남긴 한 여성은 ‘취집 하는 것 남자와 여자한테 둘 다 좋은 것 아닌가요? 취집하고 싶어요’ 하고 질문을 남겼다. 이에 대한 답변이 더욱더 충격적이다. 한 네티즌은 ‘남자가 여자가 집에서 자신을 예쁘게 가꾸는 데에만 신경 쓸 수 있게 뒷받침해 주고, 여자도 남자 말 잘 들으면 서로윈윈이죠.’라고 답글을 달았다. 또 ‘자신의 학력과 재력 등을 일부 공개한 뒤 ‘이 정도 스펙이면 괜찮은 여자들이 취집 올 만한가요?’라고 글을 올린 남성도 있었다.


사회학자 제시 버나드에 따르면 기혼 여성은 기혼남성보다 정신 건강의 위험을 훨씬 더 크게 받는다. 기혼 남성보다는 기혼 여성이 심리적, 육체적 불안을 경험하고 이들은 자신의 결혼을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혼 여성과 기혼 남성의 비교뿐만 아니라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을 비교했을 때도 연구 결과는 같다. 기혼 여성이 미혼 여성보다 우울감과 공포, 불안감을 더 많이 느낀다. 반면 미혼 남성의 경우 기혼 여성이 겪는 우울감과 공포, 삶에서의 수동적인 자세 등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은 주체성을 잃고 살아간다. 반면에 남성은 자신의 편의와 안정을 위해 여성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또한 결혼한 여성은 ‘경력 단절’을 피해 갈 수 없다. 결혼하면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여성이 전담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결혼이 남성에게만 유리하고 여성에게는 불리하다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경력 단절”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필수적으로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답하고는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한 이후에 이 대답들은 모두 사라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여성은 육아뿐만 아니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혹자는 육아 휴직을 거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기사를 보면 더 이상 육아 휴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최근 한 어린이집 교사가 임신하여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어린이집 원장이 왜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윽박지른 것이 이슈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데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엄마”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를 인간 개개인의 삶이 개별적이고 특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개별성과 특수성은 우월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젠더는 그 우월성을 명확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이 우월성을 가진 남성에게 의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수동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여성은 자신 기댈 수 있고 쉽게 바꿀 수 없는 아비투스와는 달리, 자신의 성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에 신데렐라 콤플렉스, 취집과 같이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뿐 아니라 그 구분 내의 수직 구조를 인정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올바른 성을 스스로가 주체성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문학은 사회를 반영하고, 더 나아가 현실에 대한 욕망의 담론이다. 결국 현대의 신데렐라 서사는 남성 선망의 서사가 아니라 남녀 상호주체적인 페미니즘 혹은 휴머니즘의 서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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