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름이 뒤바뀌고 남은 것 [사람]

글 입력 2023.06.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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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화분 좋아하는 거로 생각할게."


 

여기 아이돌 앨범, 포토 카드, 인형을 뒤늦게 사 모으기 시작한 사람이 한 명 있다. 영락없는 아이돌 덕후의 모양새가 아닌가! 그저 귀여워서 샀던 인형이 포토 카드(흔히 포카라고 부른다) 여러 장과 함께 장식장에 놓일 줄이야.


사실 필자는 학창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아이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그런 필자를 꽤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화분 좋아하는 거로 생각할게."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화분, 베란다에 쪼르르 늘어서 있는 초록빛 애착 이파리들. 그때부터 우리 집에서 한동안 포토 카드는 화분이 되었고, 화분은 포토 카드라는 이름을 바꿔 달게 되었다.

 

 

 

"우리 딸 화분 가지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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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며칠 전에 주문했던 포토 카드가 도착했다. 편의점으로 갈 준비를 하던 중, 엄마는 화분 가지러 가냐며 괜히 너스레를 떠셨다. 아, 이것이 바로 원예용품을 사러 화원에 가시겠다던 엄마의 마음인가. 이때부터 필자는 애착 이파리들과 엄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화분은 늘 검은 봉지에 담겨 왔다. 무슨 화분을 데리고 오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필히 수수한 색의 작은 꽃이리라. 그리고 새로 사 온 화분에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으셨다. 한 손에 들린 것이 검은 봉지가 아니라면 그 정체는 화분 전용 흙이었다. 초코맛 시리얼 알갱이같이 생겼지만, 요거트 말고 화분에 양보해야만 하는 것.


화분을 관찰하다 보니 관찰은 어느새 관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즈마리에 물을 주는 주기가 어떠한지, 떡갈고무나무의 잎의 널따란 존재감에 익숙해졌다. 필자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엄마의 애착 화분을 '포토 카드'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화분과 포토 카드가 제 이름을 찾았지만 가끔 필자의 포토 카드를 보듯 화분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이름을 바꿔 불렀던 시간이 남긴 것


 

한동안 화분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포토 카드가 되었고, 포토 카드에서는 흙 내음이 났다. 그 시간은 필자가 아닌 다른 이의 취향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관찰했던 것은 화분을 사랑하는 엄마와 화분이었지만, 실은 가장 가까운 이의 취향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아끼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애정어린 시선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푹푹 찌는 더위와 파란 이파리가 공존하는 계절이 왔다. 이번 여름은 필자처럼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을 바꿔 부르지는 않아도, 서로 다른 취향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뮤지컬이든, 전시든, 무엇이든!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수많은 형용사와 비언어적 표현들은 꽤 정다운 추억이 될 테니까.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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